대기업을 탈출한 사람들
회사를 나올때 여러가지 생각을 했다.
나는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고, 회사를 떠난 걸 후회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 예전보다 작아진 수입으로 가족과 갈등이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 안 좋은 생각들이 일단 회사 문을 나오면서 머릿속을 스쳐지나갔었다.
그래도 한편으로 회사를 나와서 집 부엌에서 글을 쓸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되었으니까 나쁘지 않을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생각해보니 글을 쓰는 것 외에도 다른 걸 이것저것 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요즘 직장인들은 회식하면서 마지막에 이렇게 얘기한다고 하지 않는가
"나 회사 때려치고 유튜버 할 거야"
나는 유튜브를 하지는 않았다.
얼굴을 내놓는다는 것이 조금 무서웠고, 여행 영상을 편집해보면서 동영상 편집이라는 것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알 수 있었으니까. 대신 꾸준히 글을 쓰고 혼자만의 팟캐스트도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었다.
팟캐스트라는 세계는 신기했다. 직접 만들어보니 이것저것 생각할 거리도 많았고, 내 방송을 들어주는 구독자가 생긴다는게 신기했다. 100명을 넘지 않는 방송이었지만 그래도 나만의 방송을 해나가고 있을 때 예전 직장동료인 K에게서 연락이 왔다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다고. 나와 비슷한 시기에 대기업을 탈출했던 사람이다.
나는 탈출하자마자 벤쿠버에 있었고, K는 가족과 함께 아일랜드로 갔었다. 그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도중 K가 본론을 꺼냈다
"과장님, 저랑 뭐 한 번 해보시지 않을래요?"
K는 가족을 따라서 아일랜드에 가서 정착하고 이미 일자리까지 구한 상황이었다. 다시 일자리를 구해서 회사에 들어가기 전에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뭔가 해보면 좋을 거 같아 찾아보는 와중 내가 하는 팟캐스트를 들어봤고, 같이 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라는 이야기였다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혼자하는 팟캐스트와 두 명 이상이 하는 팟캐스트는 완전 다르니까. 혼자서 뭔가를 이야기 하면서 30분 동안 듣는 사람을 계속 재미있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스탠드업 코메디언 정도 밖에 없을 것이다.
인기있는 팟캐스트를 관찰해보면 두 명 이상이 뭔가에 대해 이야기 하는 구조이다. 누가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는데 먼저 제안을 해줘서 너무 감사할 따름이었고 금새 뭐가될 거 같은 좋은 느낌이 찾아오다가
K와 나는 곧 어려운 문제를 만났다.
"그런데 우리 무슨 이야기 할까요?"
"흠, 과장님이랑 저랑 둘 다 대기업 잘 다니다가 나와서 새로운 거 하니까 대기업 이야기 해보면 어떨까요?"
"괜찮을 거 같은데요. 대기업에 대해 사람들이 궁금해할 것도 있고, 대기업이라서 좋았던 점, 안 좋았던 점 등 내부의 이야기에 관해 얘기해보면 좋을 거 같아요"
그렇게 우리는 그 날 아무렇게 주제까지 정해버렸다.
주제만 정하면 끝날 줄 알았는데 어떻게 팟캐스트를 녹음할 것인가 역시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아일랜드와 한국이다보니 온라인으로 해야하는데 페이스타임이 나을까 구글 행아웃이 나을까 그런 얘기를 하고 있었다.
이것저것 테스트해보다 결국 컴퓨터로 줌으로 이야기하면서 핸드폰 마이크에 녹음하고, 녹음 파일을 구글 드라이브에 올려서 한 명이 다운받아 편집하기로 했다. 둘 다 회사에 있을 땐 보안 때문에 구글 드라이브나 줌 같은 건 사용할 수 없었던 환경이라 둘 다 신기했다.
어젠다 정리는 트렐로에서 각자 생각한 아이디어를 올리고 리뷰하기로 했다
"과장님 우리 나오니까 더 첨단을 달리는 거 같은데요? 회사 다닐때 이런 거 쓸 수가 없었고 혼자 일하니까 쓸 일이 없었거든요"
"그러니까요. 그 때는 아웃룩을 잘해야 했었는데, 나오니까 아웃룩을 쓸 일이 없네요"
"맞아요. 아웃룩에 정말 별 희한한 기능 다 알고 있었는데 이젠 다 까먹은 거 같아요"
그렇게 예전 직장동료였던 K와 나는 새로운 팟캐스트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