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학연수 준비를 마치고 결국 내가 원하는 곳에 도착했다. 일단 도착하고 나면 적응 못 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과 오자마자 영어를 너무 잘하면 어떡하지 라는 기대감 등 이런저런 상상이 뒤섞인 하루 이틀 보내게 된다.
그 초기 며칠이 지나고 나서 어떤 어학연수를 보낼 지 어떤 고민을 할 지, 어떤 상황을 맞닥뜨릴 지 궁금하지 않는가? 여기 어학연수를 떠난 남학생 1명이 있다고 하자. 그 친구는 군대를 올 해 4월에 재대하고 8월에 어학연수지로 도착했다. 그 4개월 동안 남들이 많이 보는 ‘Grammar in Use’ 라는 책도 한 번 다 보고 캐나다 벤쿠버의 유명한 사설 어학원도 등록했었다. 이제 이 남학생 앞에 1년동안 일어날 수 있는 기간 별 특징을 시간대 순으로 정리해볼 수 있다. 이 남학생 뿐이 아니라 남학생 주위의 어학연수생들이 일어나는 다른 친구들의 상황도 같이 곁들여 보면 더 재밌을 수 있다.
1~2달(초기 정착기)
1년 간의 어학연수 기간 동안 가장 재미있는 시기이다.
처음 온 만큼 의욕도 가득차있고 학원에서 가르쳐주는 내용도 금방금방 받아들인다. 그리고 더 재밌을 수 밖에 없는 건 그 날 그 날 학원에서 배운 표현을 현지에서 써먹어보면 통한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로 온 만큼 일상에서 만나는 순간은 처음에는 다 새로울 수 밖에 없다. 교통카드를 사거나,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주문하는 등 한국에서 아무 거리낌없이 했던 일상적인 일을 이제 학원에서 배운 영어를 써먹으면 말이 통하는 걸 발견할 것이다.
물론 이 때 발음이 비약적으로 향상이 된다던 지, 매끄러운 표현으로 전달하지는 않아도 핵심적인 단어나 단발적인 커뮤니케이션 위주로 소통하기 때문에 나의 영어가 통하는 건 당연한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진짜 그의 영어가 늘었을까? 하는 질문인데 사람마다 다르긴 하지만 이 친구는 영어가 늘었다기 보다는 영어를 써야하는 상황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고 보면 더 정확할 수 있다.
3달(첫번째 슬럼프)
많은 어학연수생들이 첫번째 슬럼프를 겪는 시기이다.
학원에서 진행하는 레벨테스트를 통과 못 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여기 온 지 60~80일이 지나가는데 처음 와서 배운 표현만 반복해서 여전히 쓰고 있을 수도 있다. 가끔은 학원에서 내가 말한 부분을 선생님이 이해를 못 해서 “Pardon me?”라고 외칠 수도 있다. 이 상황에서 앞서 언급한 A라는 친구는 “나의 영어 공부법에 문제가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는 벤쿠버에 도착한 후 학원에서 매일매일 배운 표현과 단어들을 복습하고 암기하는 것을 게을리 했다는 걸 발견한다. 어떤 사람들은 어학연수는 말하러 오는 곳인데 말을 해야지 틀어박혀서 단어를 외우는게 말이 되느냐 하는 주장도 한다.
또, 첫 두달 동안 좋다구나 하고 잘 놀았는데 이제 적응하고 친구도 생기고 보니 뭔가 이뻐 보이기 시작하는 분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어떤 로맨티스트들은 이 때부터 영어는 2순위로 돌려놓는다. 그들의 외침은 “지금 운명의 상대를 만났다능”, “빨리 사겨서 학교 졸업하고 취업하면서 결혼해야겠다능!” 이런 빠른 결심을 하는 분들도 가끔 계신다. 물론 알고보니 그 이쁜 분들은 한국에 남자친구가 있어서 고통이 배가 될 수도 있다.
아니면 이 때부터 피티 피플(party people)들도 등장한다. 영어로 왕게임을 다른 나라 친구와 할 수 있다니! 완전 재밌다! 매일 파티하자! 이런 분들도 가끔 등장한다.
4~5달(회복기)
이제 A는 슬럼프에서 멘탈을 좀 회복한 상황이다. 어떻게 영어 공부를 계속 해나가야 꾸준히 실력을 키울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인터넷을 뒤져보기도 하고, 학원 선생님들에게 조언을 구해보고 그만의 결론을 내렸다. 일단 지금 공부 활동의 대부분이 학원에서 일어나니 학원 수업을 충실히 하는 걸 기본으로 하고, 그 동안 소홀히 했던 단어와 표현을 복습하는 것으로. 거기에 덧붙여 시간 날 때마다 영어로 된 가벼운 소설 읽는 걸 도전해보기로. (사실 어학연수 학원들은 빠른 곳은 2시반 좀 늦은 곳은 3시 반, 파트타임으로 들으면 1시에 끝나기 때문에 오후의 시간은 정말 자유롭다.)
반면 여기 A와 다른 생각을 가진 다른 두 명의 B, C, D라는 친구들이 있다.
B의 경우, 동아리의 선배와 동기가 어학연수를 갔다온 걸 보고 나도 가야겠다라고 생각해서 일단 온 친구이다. 이 친구도 1~2달은 재밌게 보냈는데 그 뒤부터는 영어가 늘지 않고 한국처럼 밤에 놀 곳도 많지 않아 재미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결국 B는 1가지만 잘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영어 시험을 준비해야겠다라고 생각한다. 토익,토플, IELTS등 다양한 영어 시험이 있지만 그냥 무난하게 돌아가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토익을 선택하기로 했다.
C는 B와 달리 ‘리스닝’을 파보기로 마음 먹었다. 예전 시청각실에서 영어 뉴스를 자막없이 보는 어떤 여학생의 멋진 모습을 떠올리며 일단 듣는 것에 주력하며 학원 수업을 따라가는 방식을 택했다.
D는 앞에 설명했던 회화 외주의 전략을 고수하는 걸로 결론 내렸다. 여기서 만큼 영어 쓰는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가지기는 어렵기 때문에 벤쿠버에서 잘 나가는 legendary(전설적인) 튜터를 수소문 하기로 했다. 그/그녀와 계속 말을 하면 영어가 늘꺼야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6달(휴식기)
보통 6번째 달에는 많은 사람들이 Break Time을 가진다. 학원에서 진행하는 Break Time 스케쥴이 있을 수도 있고 한국에서 등록한 학원의 스케쥴을 조절해서 자신만의 휴식기를 가질 수도 있다. 패키지 여행을 가거나 친구들끼리 road trip을 간다거나 아니면 여유가 생겨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악기나 운동, 스시 만들기 등 다양한 취미를 도전해보기도 한다.
아 그리고 위에 언급한 로맨티스트 중 몇 명은 진짜 연애를 시작하거나 뜨거운 연애모드일 수도 있다.(그들을 잊지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