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글을 써본 건 꽤 오래되었다.
네이버 블로그에 처음으로 쓴 글은 대학시절인 2004년 아니면 2003년 그랬던 것 같다. 첫 포스팅은 지금 생각해도 꽤 유치했다. '와 첫번째 글이다' 아마 이런 식의 내용이었을 것이다.
그 뒤로 회사를 가고 다시 미국에 공부하러 가기 전까지 블로그에는 꼬박꼬박 글을 썼었다. 영화를 보고나서 감상평을 쓰고, 책을 읽고 독서평을 쓰고, 신변잡기의 글도 썼었다.
블로그를 시작했던 이유는 MBTI가 I인지라 소위 인싸들이 가는 싸이월드에 당최 적응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온라인 상에 뭔가 끄적이고는 싶어서 시작했던게 네이버 블로그 였는데 결론적으로 이야기 하면 이 블로그 글쓰기는 큰 도움이 되었다. 자기 소개서를 쓸 때도 나름 조리있게 쓸 수 있었고,
MBA를 준비할 때 필요한 Essay 때에도 대학 시절, 회사원 시절에 써놓은 순간 순간, 아니 기간의 생각의 조각들과 감정의 잔재들을 잘 갈무리해서 녹여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미국을 가고 부터는 능력부족의 나는 하루하루 살아내기가 힘들어 거의 블로그를 폐업한 상태로 두었고, 공부를 끝마치고 회사로 다시 돌아와도 처음엔 정신없이 사느라 온라인이라는 공간에 글쓰기를 할 수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접했었다. 사실 브런치가 생기자 마자 신청했기 때문에 꽤 빠른 편이었는데, 당시에 브런치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내가 어떤 글을 쓰는지 아니면 어떤 글을 썼었는지 자기 블로그 주소를 적었어야 했다.
난 네이버 블로그에 다른 사람의 포스팅을 퍼온게 없었고 거의 내가 쓴 500개의 포스팅이 있기 때문에 당연히 될 거라 생각했고, 실제로 합격을 하긴 했지만 생각보다 합격의 문이 높다 라는 걸 최근에 알게 되었다. 한 번에 합격시켜주셔서 감사해요.
브런치에 글을 쓸 때는 네이버와 약간 다른 방향으로 글을 써봐야겠다라고 생각했었다. 블로그에는 영화 리뷰, 북리뷰, 영어 이야기, 내 일상이 담긴 수필 등 온갖 글을 다 올리다 보니 잡탕스러웠고 테마가 없어 보였다. 나라는 인간이 셀렙도 아닌데 무슨 사람들이 내 일상에 담긴 이야기를 봐주러 들어오겠는가.
그래서 브런치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영어' 관한 글을 많이 쓰리라 마음먹었고 그렇게 글을 써내려 갔다. 다행히 초반에 쓴 글들은 다른 사람들이 들어보지 못한 나만의 노하우가 담긴 글들을 쓰며 구독자도 늘고 조회 수도 올라갔다. 아마 3개 정도의 글이 브런치 편집자 분들에 의해 선택되서 하루만에 어마어마한 조회 수도 기록하면서 와 나도 '브런치'의 '파워블로거'가 될 수 있겠구나 라는 서툰 희망도 가졌지만, 영어에 관한 테마로 올릴 수 있는 아이디어는 금방 고갈되었다.
그렇지만 꾸준히 브런치에 영어 관련 이것저것 글을 썼던 것 같았다. AI를 이용한 영어공부 자료 만들기, 토플에 관한 공부방법 등 분명히 차별화 되는 글도 썼고, 이전에 회사를 나오면서 내가 겪었던 경험들을 모아서 브런치 북으로도 발행했지만 내 글이 뭐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으니까. 그 때 당시 퇴사하고 1년 동안 세계일주 등 퇴사 후 경험이 유행이라 퇴사 후 2달 외국 살기는 경쟁력이 없...
사실 브런치에서 가장 도전해보고 싶은 건 창작 글쓰기였다. Creative Writing.
네이버 블로그 닉네임이 아마 '작가지망생' 이었을 것 같고, 예전 하이텔 채팅할 때도 아마 닉네임이 작가 뭐시기 였을 것이다. 그만큼 내가 가장 동경하는 직업 중 하나는 '작가' 였다.
그래서 신년계획을 마인드맵으로 그릴 때에도 언제나 '단편소설 써보기' 라는 도전목표가 들어가 있었다.
문피아, 네이버 에서도 공모전이 있었다. 그런데 거기서는 웹소설 같은 글을 써야할 것 같았고, 글의 분량도 내가 도전해보기에는 버거웠다.
문학동네, 창비 등 유수한 출판사에서도 공모전이 있지만 거기 도전하기에는 나같이 진지하지 않은 비문학도가 접근하기에도 좀 분수 넘치는 행동 같기도 했고.
그 와중에 내가 둥지를 트고 있는 브런치에 처음으로 소설에 관한 공모전이 열린다는 게시글을 보고 말았다.
어쩌면 몇 년 동안 아니 앞으로도 마음 속에 담아두고만 있을 숙제를 해보기로
결심 했다.
아이디어를 담아놓은 여러가지 노트 프로그램들을 실행시켜 보았다. 옵시디언, 마인드노드 등. 이런 저런 생각을 담은 것들을 연결시켜봐도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질만한 이야기 줄기가 보이지 않았다.
단편적인 생각들, 내 나름대로 재미있어 보이는 재료는 있는데 이걸 감칠맛 나게 버무릴 방법도 모르겠고, 그래서 이야기 하고싶은 게 뭐지? 이 캐릭터들이 이 안에서 뭘 하고 있는 걸까로 생각을 해보면 더더욱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운동하고 자전거 타고 집으로 오면서 불현듯 생각이 들었다.
요즘 내가 가장 많이 에너지를 쏟고 있는 데가 어디지?
테니스였다. 최근 2년 동안은 테니스에 시간을 많이 할애했다.
레슨도 받고, 대회도 나가보고, 클럽에도 가입해서 운동하고. 가족을 설득해서 다른 클럽에서도 같이 운동하러 가고.
테니스를 통해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고. 테니스 때문에 기쁠 때도 있고 마음 상할 때도 많고.
테니스에 대한 이야기를 마인드맵으로 정리를 해보았다. 캐릭터를 만드는 것도 진도가 쑥쑥 나갔고, 어떻게 스토리를 이끌어 나가야 할 지도 금방금방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리고 나만의 소설을 써보겠다고 사놓은 프로그램을 활용해보는 것도 성공했다.
물론 이런 식으로 Scene 을 그리면서 해봤지만 한 번에 모든 이야기가 떠오른 건 아니였고 Scene #7 부터는 산발적으로 다시 스토리를 떠올려야 했었고, 후반부를 그 중 결론 부분을 어떻게 해야할 지 미리 만들어놓은 게 아니라 3개 에피소드를 쓰는데 시간이 걸렸었다.
힘들었던 건 글을 쓰면서 처음 아이디어 스케치 한 것과 다르게 저절로 움직이는 손가락이었다. 설정해놓은 캐릭터들이 자기가 알아서 내 머릿속에 말을 하기 시작했고, 그 방향이 처음과 달라져서 어떻게 수정을 해야할 지 고민되는 부분이 컸었다. 언제 이 캐릭터들을 따라가야 하는지, 언제 기존 방향 대로 가야하는지.
창작글쓰기를 처음 해보니 이게 맞는지 저게 맞는 지 뒤죽박죽이었고, 가장 힘든 건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어보면 얼굴이 화끈거리다는 것이었다.
솔직한 심정은 연재 브런치에 올리고 싶지 않았고, 제출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런 글을 누가 읽어줄까. 끝까지 읽어줄 사람이 없을 거라는 게 스스로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 하드디스크에만 남겨두고 싶었다. 남겨뒀었어야 했던 것 같다.
그래도 처음부터 끝까지 나만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고, 미천한 실력으로 만든 이야기지만 보여도 주고 싶기도 했다. 아직까지 난 브런치 알림을 확인하지 않았다. 이걸 쓰고도 아마 한 달간은 확인 안할 것 같다. 무서워서...
다시 나만의 이야기를 쓰는 작업을 할 지 모르겠지만(하고 싶다. 단. 잘 쓴다는 가정하에), 하루에 1,000 단어 이상의 글을 쓸 때마다 머리에 쥐가 나고 허기가 졌지만 소중한 경험이었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쌓아가는 많은 분들이 새삼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다음 글은 영어에 관한 짧은 내용으로 찾아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