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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과장 Oct 24. 2024

에필로그

테린이 대회가 지나고 나서 나는 다시 바쁜 일상으로 돌아갔다. 쉴새없이 울리는 사무실 전화, 팀장님의 독촉, 그리고 그녀의 메일과 독촉 전화


'Subject: 손익계산서 백업자료 보완 요청의 건'


안녕하세요 정희성 대리입니다.

지난 주 공유받았던 추정 손익계산서 기초 자료에 보완점이 발견되었습니다.


아래 사항 확인하시고, 조속히 답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역시 내 파트너. 맺고 끊는게 무슨 발리 포칭하는 것처럼 확실하네. 여유있으니까 일단 필요한 것부터 하고 세세한 건 나중에 해도 된다고 하더니만 이 메일은 뭐지.


"준경아~~ "


"예 팀장님. "


"너 제대로 안하냐? 왜 본사에서 이런 메일이 오는 거냐? "


"열심히 하겠습니다. "


"아니다. 뭐 아무 것도 모르는 널 TF에 밀어넣은 내가 죄인이지. 너 희성 대리에게 미움받고 그러는 거 아니지? 내가 본사 동기에게 들었는데 정대리가 한 번 물어버리면 장난 아니래. 찍히지 않게 조심해. "


대답할려고 하는 차,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팀장님 말씀대로 정대리는 호락호락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바로 전화왔습니다. "


"역시. 너 찍힌 것 같다. 쯧쯧. 열심히 해라. "


"네. "


그리고 나는 전화기와 컴퓨터를 챙겨서 회의실에 들어갔다. 보통 업무 전화로 통화가 길어지면 회의실에 들어가 전화를 받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물론 나는 다른 이유에서였지만.


"메일을 보내자 마자 전화를 주시는 건 너무 하시는 거 아닙니까? 파트너를 이렇게 쪼으시면 경기력에 영향을 끼칩니다. "


"뭐래. 지금 바이스가 에이스에게 대드는 거에요? "


테니스 복식에서 에이스(Ace)는 그 페어에서 실력이 출중한 사람, 그리고 바이스(Vice)는 에이스와 짝을 지어 참가하는 사람을 뜻한다고 나중에 들었다. 약간 회사 식으로 이야기 해보면 이 업무의 정이 Ace 이고, 부가 Vice, 비행기에도 기장이 있고 부기장이 있는 것처럼.


"아니 주말에 분명히 혼복 전략 짜는게 중요하다고, 손익계산서는 일단 대충해도 된다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햇는데 억울합니다. "


"아이고. 그래서 삐지셨어요? "


"아니 그렇다고 삐진 건 아니구요...  "


정성 대리와 나는 만나는 중이다. 테린이 대회 뒷풀이가 끝나고 대리님을 택시타는데 까지 바래다 주러 걸어가는 와중에 그녀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너 나한테 할 말 있지 않느냐는 듯이.


"저기 왜 그러세요? 제 얼굴에 뭐 묻었나요? "


"저한테 할 말 없으세요? "


"아 오늘 와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그 팀도 이길 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역시 대리님은 전략가. "


"흐음. 그게 다인가? 다른 말도 있을 거 같은데... "


뭐지. 자료 보내는 걸 빼먹었나. 아니면 아까 시합할 때 내 로브가 부족했는데 그걸 더 개선해야겠다고 말해야 하나.


"제가 오늘 여기 왜 왔을까요? 이 귀중한 주말에 바쁜 시간을 쪼개서. "


".... "


".... "


"혹시 대리님 제가 어떻게 치는지. "


"역시 준경씨는 파트너의 리드가 필요한 타입이군요. 저는 준경씨에게 관심이 있어서 오늘 온 거에요. "


어? 어? 이 쿨하고 멋있고 일도 잘하고 테니스도 겁나 잘 치는 이 사람이 나에게 관심이 있어서라니. 그제야 왜 나랑 같이 혼복대회 나가자고 했는지.


"그럼 바이브 클럽 게스트도... "


"됐고. 이제 할 말 없나요? "


사실 나도 이 사람에게 관심이 없었던 건 아니다. 제대로 말하면 겁나 관심이 많았다. 재무팀에는 남자만 득시글득시글 했고, 클럽에서 진아 누나는 카리스마가 너무 강렬했고, 수진이랑 친해지고 싶은 게 있었지만 재민이가 어찌나 견제를 하던지.


이게 현실인지 믿기지 않았다.


"사실 저도 대리님을 좋아.. "


"어머. 무슨 소리에요. 난 관심있다고 얘기했지. 아직 좋아한다는 얘기는 안 했는데. "


"네? 그건 또 뭐에요? "


"혼복대회 또 나가요. 입상하면 제가 생각해볼께요. 적어도 입상한 남자는 되야 나랑 만나지. "


"그럼 저희는 지금 뭐에요? "


"파트너? 대회 파트너 보다는 훨씬 친밀한 파트너? "


그날 밤 이후로 우리는 파트너로 서로를 호칭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사귀는 중이다. 그녀는 혼복 입상할때 까지 사귀는 건 아니라고 여전히 주장하지만 뭐 남녀가 주말에 만나서 데이트 하고 같이 시간 보내면 사귀는 거지.


"내가 메일을 미리 보내놔야 TF의 다른 시어머니들이 뭐라고 안 하죠. 이번에 그 자료 아슬아슬했어요. 내가 그래서 선수친거니까 마음 상하지 말고. 알았죠? "


아. 그렇구나. 역시 한 수 아니 두 수 앞을 내다보는 나의 여자친. 아니 파트너.


팡팡, 펑펑. 주말 서울 근교의 테니스 코트에서 공이 엄청난 템포로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


"잘 쳤습니다. "


"이야 수진이는 이제 엄청 잘 치네. 역시 파트너랑 합이 잘 맞아. "


"하하 아닙니다. 저는 그냥 뒤에 있었고 앞에서 수진이가 다 했죠 하하. "


"오빠 조용히 좀 해. "


"어? 알았어 하하. "


"준경아. 재네 정말 꼴볼견이지 않냐? 재민이 재는 언제 지가 저렇게 나이스 했다고. 하하 웃고만 있어. 눈꼴시려 죽겠네. "


"누나 놔둬요. 재네도 연애 이제 시작했는데. 재민이도 얼마나 좋겠어요. "


"너는 안 좋냐? 너도 연애하잖아. "


"저는 혼복입상해야 공식으로 연애하는 건데요. "


"됐어. 나도 연애해야지. 참 재현 오빠 소식은 들은 거 없어? "


"모르겠어요. 그 대회 이후로 클럽 휴회한다고만 하셔서. "


"그 오빠 뭐하는지 알게 되면 나중에 알려줘. 클럽 사람들 다 궁금해 하니까. "


"알았어요. 누나. 아 누나 부르네. 어서 다음 게임 들어가요. "


재현이 형은 지금 클럽을 잠깐 쉬고 있다. 테린이 대회가 끝난 다음 날 재현이 형이 커피나 한 잔 하자면서 불렀었다.


"준경아. 나 당분간 테니스 쉴 거 같애. ""


클럽 회장님보다 더 개근하던 사람이 갑자기 테니스를 쉰다니. 지금 테린이 대회에서도 본선도 넘어서고 우승팀도 이기고 실력이 물이 올랐는데 이 사람이 무슨 소리하는거지.


"형 그게 무슨 말이에요? 다음 대회 안 나가요? 나는 누구랑? "


"내가 테니스로 어디까지 실력이 늘 지 대충 이제 그림이 보이는 거 같애. 너는 아직 어리고 키도 크고 하니까 계속 실력이 더 올라서 전국대회도 나가지 않을까? 내가 전국대회 나간다. 본선을 간다? 테린이 대회도 이 난리를 치는데 전국대회? 꿈같은 소리 같애. "


"형 그래도 열심히 하면 되지 않을까요? 클럽에 10년 넘어서 꽃을 피운 재헌이 형도 있잖아요. "


"내가 그 동안 테니스에 들인 에너지, 비용. 이걸 똑같이 다른데 써보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이 갑자기 들었어. "


"예를 들면요? "


"뭔지 모르겠지만 테니스 때문에 답답하고 좀 기분이 별로일때 이 에너지를 다른데 써보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어. 테니스 때문에 기분도 왔다갔다 하고, 그 때문에 여자친구랑도 안 좋아지고. 


내가 테니스를 짝사랑한 거 같애. 너무 좋아해서 계속 같이 있고 싶고, 더 잘 지내고 싶은데 그게 마음대로 안 되니 테니스에게도 짜증내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속이 상하고. 


이제 짝사랑 끝내야지."


"형, 그럼 이제 테니스 안 치시는 거에요? "


"야. 짝사랑했다가 마음 접는다고 다 남남 되는 거 아니잖아. 좋은 친구가 되겠지. 시간이 좀 지난 후에 이제 짝사랑이 아니라 우정을 쌓겠지 테니스랑. 더 마음 편하게. 당분간은 좀 거리를 둘려고. 너랑 거리를 두는 건 아니다 준경아. "


"알았어요. 형. 잘 지내고 이제 뭐하실 거에요? "


"지원이한테 테니스와의 짝사랑 끝내고 다시 취업 준비 제대로 한다고 얘기했어. 내일 만나서 다시 얘기해보기로 했어. 취업도 이제 꼭 해야하고. "


"네 형 그럼 취업되면 연락 주시고 나중에 뵈요. "


"그래. 너는 짝사랑이 아니겠구나. 너는 운동과 사랑을 모두 쟁취했으니. "


"아 뭐에요. 들어갈께요. "


"그래. "


이 이야기는 클럽 사람들에게는 하지 않았다. 희성 대리님, 아니 내 파트너에게만 재현이 형이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고 설명을 해줬다.


"그 분 금방 돌아오실 거 같아요. 그러니까. "


"그러니까 뭡니까 파트너님? "


"우리도 연습을 게을리 하지 마시고 코트 잡아 연습하시지요. 혼복 입상 안 할 겁니까? "


"아 저 스트레스 받아요. 입상 이야기 좀 그만하세요. "


"준경씨.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겁니다. 물릴 수가 없어요. "


역시 팀장님 말이 맞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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