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10년 차 이야기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나가 가끔 이런 생각을 품고는 한다. 난왜 아침마다 일어나서 씻고 옷을 챙겨 입고 출근하는 걸까? 각자의 이유는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다. 누구는 가족의 생계를 꾸리기 위해. 누군가는 대출을 갚기 위해. 굉장히 비슷해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저마다의 다른 이유로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아침에 나가면서 고민에 빠지게 된다. 왜 일을 하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10년 전 신입사원 시절이 생각났다. 그때 같이 연수를 받았던 동기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아니면 아침에 무슨 생각으로 집을 나서고 있는 걸까? 그래서 그 동기들을 만나서 그들의 회사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술자리에서 만나서 하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우리의 짧은 일상이 투영된 소중한 이야기이지만 10년이 지나서 친구들이 바라보는 일이라는 것에 대한 의미와 그들이 하는 일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서 먼저 자주 보는 동기를 만나서 인터뷰를 해봤다.
첫 번째는 홍보 업무를 하고 있는 동기와의 인터뷰이다.
C) Interviewer, L) Interviewee(홍보업무 담당)
C) 먼저 이렇게 뜬금없는 인터뷰에 응해줘서 고맙다. 신입사원 연수원에서 만난 날이 엊그제 같은데 아직 연락하는 것이 반가우면서 고맙기도 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편하게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거 같다.
L) 괜찮다. 덕분에 하는 일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기도 하고 거창하지 않지만 이렇게 개인과 개인이 하는 인터뷰도 재미있을 거 같은 생각이 든다.
C) 익명으로 진행하는 거니 솔직하게 얘기해주시면 좋을 거 같다. 홍보 일을 한 지 이제 10년 차가 되어간다. 10년 정도의 직장생활을 바탕으로 홍보 이야기 좀 해줬으면 좋겠다.
L) 먼저 홍보라는 직무는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회사에 있다는 걸 아셨으면 좋겠다. 규모가 작은 회사는 매출과 직결되는 기능 위주로 조직을 꾸리다 보니 스탭 부서의 성격인홍보팀이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아니면 소규모의 스탭 직원이 홍보 업무도 겸임하면서 진행할 것이다.
C) 그렇겠다. 작은 회사 같은 경우는 일단 매출과 직결되는 영업 관련 인원수 확보에 힘을 들이지 홍보에 신경 쓸 겨를이 없을 듯하다.
C) 홍보팀의 R&R(Role & Responsibility)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줄 수 있나? 실제로 회사에 들어와서 일을 하다 보면 팀의 R&R이라는 게 중요하다는 걸 느낀다, R&R이 명확하지 않으면 특정 팀에 업무가 집중되거나 의사결정 상 충돌이 발생하는 경우를 봤다. 그만큼 R&R이라는 게 그 팀을 규정하는 도구가 된다고 볼 수 있는데 이야기해줄 수 있는가?
L) 내 경험상 홍보업무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언론홍보, 사내 홍보, 홍보물 제작/관리정도라 할 수 있겠다. 언론 홍보는 보도자료를 작성해서 미디어에게 배포를 하는 흔히 떠올리는 홍보 업무이고, 사내 홍보는 사내에서 일어난 내용을 회사 내에 알리는 일을 뜻한다. 홍보물 관리는 홍보활동을 통해 제작된 여러 홍보매체나 웹사이트 같은 채널을 관리하는 걸 뜻한다.
C) 마케팅과 홍보는 어떻게 다른 것인가? 마케팅도 홍보를 하지 않나?
L) 정확한 차이를 말하기는 애매하다. 내가 마케팅을 해본 사람은 아니니까. 아는 한 설명하면 마케팅은 알리는 방법과 목적에 대해 러프하게 돈을 들여서 알리는 거다. 홍보는 돈을 들이지 않고도 회사를 알릴 수 있다.
예를 들어 요즘 SSG(쓱) 광고가 핫하다. SSG(쓱)이라는 표현을 만들어서 회사의 서비스를 광고하는 것인데 SSG라는 영어의 알파벳과 쓱이라는 한글의 모음을 조합시켜 재미있는 메시지를 만들어내서 반응이 좋은 편이다, 하지만이 SSG 광고가 기업의 홍보활동이라기보다는 기업의 마케팅 팀이 예산을 들여 집행한 광고 캠페인이다. 신세계의 홍보팀이 하는 일은 한글의 모음을 가지고 발음하기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요즘 마케팅 트렌드 다라는 것을 사례로 보도자료로 소개하면서 하고 있다는 걸을 알리는 것이 홍보라고 보면 된다.
C) 그렇다면 보도자료가 홍보팀의 가장 중요한 Output이나 KPI가 될 수 있는 것인가?
L) 매출 규모가 작을수록 언론홍보의 비중이 높기는 하다.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에. 하지만 언론홍보 외 사내 홍보도 있고, 관리해야 하는 채널도 예전보다 많아져서 홍보팀의 R&R이 다양해지기 때문에 보도자료가 꼭 KPI라고 보기는 애매하다.
C) 매출 규모가 커질수록 핸들링 해야하는 채널의 수가 많아지면서 홍보팀의 R&R도 확장되는 거라고 봐도 되는 건가?
L)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우리 회사는 좋은 서비스가 있어요. 이런 사회공헌 활동을 해요.'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회사의 이미지를 제고해야 하는 것이 홍보 업무이다. 우리 회사는 성장 가능성도 있고 현재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알리는 건 채용 브랜드 이미지와도 관련이 있는 것이다. 좋은 잠재인력들이 회사에 지원할 수 있게끔 하는 것도 홍보의 입장에서는 중요한 Role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C) 나는 홍보와 채용을 크게 관련시키지 못했는데 그 말을 듣고 보니 채용과도 큰 연관성이 있는 거 같다
L) 유한양행 같은 경우를 보라. 유한양행은 매출 볼륨으로 보면 그렇게 크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동안의 홍보로 인해 좋은 기업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좋은 기업 이미지를 통해 좋은 탤런트들이 지속적으로 지원을 하고 그런 인력들을 바탕으로 회사는 성장을 할 수 있고 선순환이 일어나고 있다. 비슷한 매출 규모의 회사보다는 아마 더 좋은 인력들이 지원할 것이다.
C) 홍보팀에서 신입사원이 하는 하루 일과는 어떠한가? 예를 들어 당신이 신입사원이었을 때 아침마다 신문을 챙겨서 선배들 자리에 놔뒀어야 했다고 했다. 그 외 어떤 업무를 했었는가?
L) 신입사원은 네이버나 다음이나 포탈에서 회사 모니터링을 한다. 회사 관련 기사를 읽어보고 팩트 기반의 기사인지 아니면 가십성으로 조회수를 끌어내기 위해 팩트를 반영하지 않은 기사를 내보는 건지 수시로 확인이 필요한데 이런 기사를 찾아내는 업무를 담당한다. 요즘은 구글 알리미도 업무에 활용을 많이 한다.
C) 신입사원으로 오는 친구가 이건 잘해줬으면 좋겠다 하는 게 있나? 흔히 말하는 스펙 같은 거 말고
L) 글을 잘 쓰면 홍보 업무를 하는데 좋다. 경영학과에서 하는 PT나 보고서 작성이 아니라 블로그에 차분하면서도 조리 있게 자기 생각을 글로 표현할 수 있는 정도면 좋을 거 같다.
C) 사내 홍보에 관련 업무를 많이 담당했었는데, 그동안 일을 하면서 겪었던 감동적인 에피소드나 기억에 남는 경우가 있을 거 같다. 왜냐면 일반 회사원들은 소수의 사람들과 반복적인 대화를 나누게 된다. 지원업무를 하는 사람들일수록 그런 경향이 있는데 사내 홍보 업무를 하면서 여러 사업장의 현장에서 일하시는 분들과도 소통할 기회도 많았을 듯한데 기억에 남는 사내 홍보 취재 이야기 같은 것이 있는가?
L) 혹시 사내 식당의 배식대의 높이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C) 흠. 생각해본 적이 없다.
L) 사업장마다 배식대의 높이가 다른 경우가 왕왕 있다. 사무직 직원들이 많은 서울 내 사내식당의 배식대 높이와 현장 근무자들이 많은 지방 사업장의 배식대의 높낮이는 다르다. 다른 회사의 경우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우리 회사의 경우는 그렇다. 사무직 직원들은 구두를 많이 신고 출퇴근 및 근무를 하고, 현장 근무자들이 많은 사업장은 편하게 신발을 신고 근무하는 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사소하지만 내부 구성원에게 신경을 쓴 이런 디테일의 차이는 사내 식당의 레이아웃을 디자인하시는 분이 식당 사용자들 인터뷰를 진행해서 잡아내는 부분이다. 이 분을 내가 인터뷰하고 관련 내용을 사내 홍보 내용에 올리게 되자 여러 피드백들이 올라왔었다.
특히 사내 식당 관리를 하는 영양사 분들의 피드백이 많았었다. 식당 오픈 준비로 바쁜데 그분들이 오셔서 왜 그러는지 몰랐는데 사내 인터뷰를 보고 이런 일을 하고 계신다는 것을 깨달아서 좋았다는 피드백들이 회사 인트라넷 게시판에 많이 올라왔었다.
나중에 배식대를 디자인한 분에게 따로 메일이 왔었다. 영양사 분들의 피드백을 보고 나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는 내용이었다. 하는 일에 대해 사람들이 인정해주고 고맙다고 얘기해주는구나. 덕분에 다시 일을 할 수 있는 동기부여도 되고 하는 업무에 대해서도 자부심이 생겼다. 고맙다. 이런 내용이었다.
그분의 메일 덕분에 사실 내가 담당하는 사내 홍보라는 일에 대해서도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기회였다. 이런 일 덕분에 지금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하는 거 같고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어 하는 거 같다.
C) 이런 경우가 자주 있는가?
L) 몇 년에 한 두 번 있다(웃음)
C) 이런 경우는 아까 말한 조직의 내부 구성원들에게 자긍심을 높여주는 좋은 계기가 되는 거 같다.
L) 이런 긍정적 효과로 인해 고용지속 효과도 어느 정도 있을 거 같다.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가 이러이러한 사람들이 다니고 있고, 이런 업무를 하는 것까지 다 알고 있구나 라는 느낌을 주고 있기 때문에 어떤 업무를 하던 내가 조직에 필요한 사람이다라는 걸 느끼게 해주는 긍정적 효과를 가져다준다고 생각한다.
C) 홍보를 계속했던 선배들은 중간에 다른 곳으로 이직을 자주 하거나 홍보와 관련된 다른 업무를 하는 곳으로 많이 옮기는가?
L) 사실 나는 한 회사에서 계속 이 업무를 담당하고 있고, 그때 같은 일을 했던 선배들도 계속 회사에 남아 같은 업무를 하고 있다. 나의 경우로 봐서는 내 선배들이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경우나 다른 업무를 하는 것을 많이 보지는 못 했다. 관련 계열사로 가서 홍보 업무를 하는 경우는 있어도.
C) 본인이 하는 업무를 좋아하고, 자부심을 가지고 일을 하는 모습이 부럽고 참 좋아 보인다. 그렇다면 직장인 이후의 삶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홍보대행사를 해보고 싶거나 그런 생각은 없는가?
L) 가능하면 난 이 회사를 최대한 오래 다니고 싶다(하하). 홍보 대행사를 해보겠다는 생각은 아직 안 해봤다. 이건 개인의 성향 같은데 회사 입사하고 사내 홍보 업무를 주로 해왔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홍보팀을 가진 회사 자체가 많지 않고, 사내 홍보만을 담당하는 인력이 있는 회사는 더 적을 거라 생각한다. 현재 회사에서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는 게 일단 첫 번째 목표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면 인디 음악을 틀어놓는 펍을 차리는 게 목표긴 한데 가능할지 모르겠다. 2층짜리 건물을 지어서 1층은 펍으로 2층은 집으로 하고 싶은데 땅도 사야 하고 건축비도 드니 정년까지 다닌다고 해도 가능할지는 잘 모르겠다.
그게 안되면 개인택시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야근하고 택시 타고 퇴근하다 보면 매너 있게 이런저런 말씀을 건네는 기사님들이 있다. 같이 얘기를 나누면서 야근의 피로가 날아가는 걸 느끼는데 나도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인지라 개인택시를 해보면 재미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C) 인터뷰에 응해줘서 고맙다. 더하고 싶은 말은 없는가?
L) 10년 전에 처음 만난 홍보팀의 부서장이 이런 말을 했었다. 홍보하는 애들은 그 어떤 직원들보다 회사를 사랑해야 한다. 회사에 대한 로열티가 가장 커야 홍보를 할 수가 있다. 회사를 잘 알려야 하는 사람이 회사를 사랑하지 않고서 어떻게 제대로 회사를 알릴 수 있겠는가?라고 말한 적이 있다.
C) 회사를 사랑하는 방법은 뭐였나?
L) 회사를 구성하는 사람들을 좋아했던 거 같다. 대부분의 회사원들이 욕하는 경우를 보면 상사를 욕하지 회사를 그렇게 욕하지는 않는다.
나 같은 경우는 현장 직원들을 만난 경우가 많았는데 그 사람들은 순수하게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고, 자신과 가족의 생계의 근간이 회사기 때문에 열심히 일을 한다. 위에 계신 분들은 싫은 경우가 많지만 이런 선한 사람들이 있는 조직이라고 생각하면서 회사에 대한 좋은 감정을 키워가는 거 같다.
결국 사람만이 남는다고 생각한다. 회사를 알리는 일을 하는 것도 사람이고, 알려지는 것도 회사의 ‘누군가’가 한 일이다.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 홍보를 하게 된다면 괜찮을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