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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과장 Oct 02. 2019

신부족주의와 민주주의의 위기 #5

정체성의 정치

Source: Foreign Affairs


교리의 필요성


사회는 소외되고 배제된 집단을 보호해야 하지만, 진보와 보수 모두 사회 전체가 아닌 부분 집단에 집중한다면 사회합의라는 프로세스를 위협할 것입니다.


해결법은 정체성 정치를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더욱 큰 정체성 집단을 정의해야 합니다.


인간 사회는 정체성과 떨어질 수 없습니다. 정체성은 민주주의 사회의 렌즈로는 포착할 수 없는 내부의 도덕률이기도 합니다. 정체성은 자신이 누군지, 자신의 품격을 드러내고자 할 때 필요한 도구입니다. 


정체성의 필요성은 사라지지도 않을 것입니다. 자유 민주주의는 선택을 할 수 있는 동등한 권리 하에서 세워졌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서 동등하게 인정받는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현대의 삶이기도 합니다. 


현대에 산다는 것은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선택과 변화의 연속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자유가 보장된 사회에서 선택을 할 수 있는 자유라는 것은 사람들을 늘 행복하게 만들지는 않으며 다른 사람들과 떨어지게 만듭니다.


과거에 조상들이 가졌었던 또는 자신들이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그 삶에 요즘 사람들은 향수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진정한 정체성이란 자신들을 다른 사람들과 묶어주었던 그것입니다. 이렇게 향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다른 정치인들에 배신당했으며, 다시 위대한 커뮤니티의 일원이었으며 다시 한번 그 위대함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하는 정치 지도자들에게 혹하고 맙니다.


최근의 정체성의 특징은 변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정체성이라는 건 태어나면서 획득하는 것이기 때문에 바꿀 수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대 사회 시민들은 여러 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종에 따라, 성별에 따라, 일하는 곳에 따라, 교육에 따라, 국가에 따라서요. 최근의 정체성 정치는 사회를 작은 그룹으로 계속 쪼개고 있지만 반대로 더욱 크고 통합된 정체성들을 만드는 것 역시 가능합니다.


어떤 민주주의도 정체성 정치라는 새로운 테마에 면역을 가지지 못했지만,  새로운 이 테마는 더욱 확장된 영역의 상호존중을 이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시작할 수 있는 곳은 소수 집단에게 가해지는 경찰들의 폭력과 성추행입니다. 이런 문제점들이 거짓이고 위험하지 않다고 말한 비판적인 시각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미국과 다른 자유 민주주의 국가는 이 문제들을 해결하는데서 더 나아가야만 합니다. 


민주주의는 개인의 특성, 역사적 유대, 종교적 신념에 기반한 정체성이 아닌 핵심가치와 믿음을 공유하는 정체성을 홍보해야 합니다. 시민들이 자신이 속한 국가의 근간 이념으로 자신들을 규정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융화시킬 수 있는 정책을 사용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줘야 합니다.


유럽이 정체성 정치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최근 몇십 년간 유럽의 진보진영은 국가의 문화에 동화됨을 강조하기보다는 다문화의 형태를 지지했습니다. 반민족주의라는 깃발 아래 유럽의 진보 정당들은  다문화주의가 사회 구성원들을 융화시키는데 걸림돌이 된다는 걸 간과했습니다. 유럽의 신규 포퓰리스트들은 이민자들이 자유로이 돌아다니는 사회에서 민족성과 종교는 사라지는 걸 목격했습니다. 


유럽이 정체성 정치와 싸워야 하는 방식은 미국과 다릅니다. 유럽은 먼저 시민권 법을 바꾸는데서 시작해야 합니다. 이 주제는 유럽 연합의 능력을 벗어나기는 합니다. 


특정 민족에게 특권을 주는 데서 벗어나려면, 지금 속인주의를 택하고 있는 유럽 연합의 국가들은 속지주의를 택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럽연합의 국가들은 미국이 수십 년 동안 해왔던 것처럼 귀화에 대해서 엄중한 절차를 따라야 할 것입니다. 


미국에서 먼저 영주권을 취득하려면 국내에 5년을 거주해야 합니다.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영어를 읽고 말하고, 쓸 줄 알아야 하며 범죄기록이 있어서도 안 됩니다. 또한 미국 정부와 역사에 대한 이해력도 가지고 있어야 하며 미국 헌법의 원칙을 지킬 것을 맹세해야 합니다.


유럽의 국가들도 귀화를 하는 새로운 시민들에게 이 정도 요구해야 합니다. 또한 유럽은 인종에 근거한 국가 정체성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20년 전의 독일의 한 학자는 새로운 독일의 국가 정체성의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만 국가 정체성을 강조하게 되면 다른 문화보다 우월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며 폄하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유럽이 필요한 건 바로 이런 개념입니다. 


터키계 독일인들이 자신도 독일인이라고, 아프리카계 스웨덴이 자신이 스웨덴 사람이라고 떳떳이 말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이런 흐름은 시작되고 있지만 유럽은 그동안 각자의 문화와 고유성을 지키면서 사람들을 너무 잘 수용해왔기 때문에 빨리 진행되지는 않습니다.


반면 미국은 이민자들을 유럽보다 훨씬 환영했고 국가 수립 초기부터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을 확립해왔습니다. 덴마크 사람과 일본 사람은 덴마크 사람 같지 않다고, 일본 사람 같지 않다고 고소되지 않지만 미국 사람은 미국인답지 않다고 고소당할 수 있습니다.


남북전쟁 때 출현했던 미국인만의 국가 정체성이 회복되고 진보와 보수의 공격으로부터 견뎌내야 합니다. 


보수진영은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인종, 민족, 종교에 기반한 정체성을 가지고 국가 정체성을 공격할 것입니다. 진보 진영에서는 소외 집단의 정체성을 가지고 국가 정체성을 공격할 것입니다.


미국은 다양성의 존중이라는 가치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았지만 다양성의 존중이라는 가치가 국가의 정체성보다 우선할 수는 없습니다. 이 국가 정체성은 헌법주의, 법의 원칙, 인간의 평등이라는 실질적인 신념을 제공해야 합니다. 이런 신념들을 부정하는 사람들에게 시민권을 줘서는 안 됩니다.


국가정체성이 확립된다면 이민자에 대한 논란은 변화를 맞을 것입니다. 미국과 유럽에서 진행되는 논의는 양극을 달리지 합의점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보수 진영은 모든 이민자들을 본국으로 보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진보 진영은 모든 이민자들을 수용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두 주장 모두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입니다. 진정한 논의는 이민자들을 어떻게 국가 내에 융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해야 합니다. 이민자들을 국가의 테두리 안에 수용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위험한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네덜란드는 종교에 따라 교육시설을 달리 두고 있습니다. 다른 종교의 사람들과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는 교육 시스템 하에서 사회의 융화를 바라기는 어렵습니다.


프랑스의 경우는 다릅니다. 프랑스는 종교 기관이 교육기관을 설립하는 걸 금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문제들이 있죠. 먼저 프랑스 법에도 불구하고 이민자들에 대한 차별은 만연해 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는 독일보다 실업률이 2배가량 높습니다.


프랑스는 고용시장 자유화를 통해서 이민자 청년들의 35%에 이르는 실업률을 해소해야 합니다. 이미 프랑스는 이슬람 혐오 적이라고 비난받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공교육에서 융화에 대해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최근 교육에서 시민에 대해서 가르치는 부분이 이민자뿐 아니라 모든 미국 사람들에게 줄었습니다.


공교육은 다양한 언어를 통해 진행하는 수업 방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이 보다 빨리 영어를 흡수할 수 있게 도와줄 것이라고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영어를 배우는 속도를 지연시킵니다.


미국은 시민들이 군대에 가던지, 교육 봉사를 하던지 이러한 활동을 통해서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고취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런 프로그램이 제대로 구현된다면 미국 젊은이들은 인종, 종교, 민족과 관련 없이 하나로 융합될 것입니다. 미국에 불법으로 체류하고 있는 혹은 불법으로 미국의 국경에 들어왔다는 이유만으로 현재 불법 체류자들을 본국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생각입니다.


미국 행정부는 현재 불법 체류자들이 정식으로 시민 지위를 획득할 수 있는 법적 방안을 엄정하게 마련해야 합니다. 이민자들을 싫어하는 집단은 이런 사면에 결사항전할 것이고, 이민에 찬성하는 집단은 규제가 강력해진 법제화에 반대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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