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전은 달라
SJ는 반찬가게를 열겠다고 했다. 생각하긴 했지만 급습이었다.
분명 같이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었는데 며칠 바빠보이더니 상가를 보러 다녔다고 했다.
요리를 잘하는 건 알았지만 반찬가게를 할 정도는 아니였던 것 같았는데….
알고보니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한다는 계획이었다.
장모님이야 이미 요식업에 계셨으니 가능은 하겠구나 생각은 했지만 SJ가 가게를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반대하지 않았다. 어차피 저 친구도 내가 회사 나간다고 했을때 반대하지 않았고, 나도 사실 내가 반대할 수 있는 입장인가 생각도 들었다. 같이 산다고 해서 아니면 가장이라고 해서 누군가의 하고 싶은 일을 간섭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단지 회사에서 기획했던 사람으로서 이것저것 많이 물어보기는 했지만 그냥 물어만 봤다.
가게 준비를 하면서 이것저것 해야할 게 너무 많았다. 사업자 등록, 영업허가 받는 일, 상가계약, 그리고 인테리어 공사. 손이 가장 필요한 건 인테리어 공사였다. 많지 않은 자본금이라 주방공사와 목공작업을 빼고는 SJ와 SJ의 언니가 다 해버렸다. 페인트칠부터 자잘한 작업들까지
나는 키보드 작업할 때 빼고는 대부분 비생산적인 손재주를 가지고 있는 마이너스의 손이기 때문에 허드렛일만 했었다.
인테리어 공사가 끝나고 나니 가게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뭐한 건 없었지만 그래도 같이 뿌듯했다.
어닝 간판을 달고 앞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SJ가 나에게 말했다.
“이제 오빠가 잘하는 거 할 시간이야”
가게의 반찬들을 얼마에 팔아야 할 지, 하루에 몇 개 정도 팔아야 할 지. 이런 걸 봐달라는 부탁이었다.
회사에서 하던 일이 매출 예상하고, 이익 예상하고, 사업계획 세우던 것이었으니 크게 어려울 것 같지 않았다.
역시 회사랑 달랐다. 나는 SJ와 장모님께 원가가 얼마인지 물어봤다. SJ가 그게 왜 필요하냐고 물어봤다.
“원가가 있어야 가격을 잡지”
“주변에 다른 반찬가게 다녀봐, 그 가격이 그 가격이지. 그거 이상 비싸게 팔 수 있겠어?”
“응? 그러면 그 가게가 그 반찬 만드는 재료비랑 너가 만드는 재료비랑 똑같은 거야?”
“당연히 다르겠지. 오빠 근데 이건 동네 장사야. 함부로 가격을 올릴 수도 없어. 특히 반찬이잖아”
그래서 경쟁사인 다른 반찬가게의 판가를 고려하고, 나에게 알려주지 않았지만 퉁친 재료비, 그리고 장모님과 SJ의 작업시간을 관찰해서 넣은 노무비 공수, 그리고 기타 overhead 비용을 합쳐서 공헌이익(contribution margin)을 뽑아내서, 하루에 몇 개를 팔아야 고정비(쉽게 말해 크게 월세)를 뽑아내는 갯수가 몇 개인지 내용이 들어간 나의 break-even point(손익분기점) 분석을 SJ와 장모님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우리 사장도 귓등으로는 듣던데… 몇 개 파는 지 관심이 없나?
“오빠 갯수 언제 세고 있어. 사람이 2명 밖에 없는데 그걸 세고 있어? 그냥 얼마 팔렸는지만 봐야지”
“하지만 매출이라는 건 금액이 아니라 물량이 먼저 나오고 거기에 판가를 입혀서. 그래야 마진 좋은 애랑 안 좋은 애랑 어떻게 섞어 팔아야 할 지 mix가 나오지.”
“그 시간에 반찬을 하나 더 만들고 전단지를 더 붙이겠다”
맞는 말이었다. 일단 동네 장사 처음 시작할 때 대학원에서 내가 배웠던 거, 회사에서 기획에 있으면서 했던 거를 보고서 만들어서 보여줘도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그거볼 시간도 없고, 현장에서 통하는 것도 달랐다. 장모님의 경험이 백배 나았다.
음식장사 박하게 하는 거 아니라고 다른 반찬가게보다 양을 푸짐하게 넣어주시는 거. 반찬의 기호는 일단 얘기엄마 위주로 초반에는 맞춰줘야 얘기엄마들이 입소문을 내준다는 거 등 시장진입 전략은 아예 달랐다.
옛날에 회계법인에 있던 분이 카페를 홍대에 냈다가 망한 경험을 다룬 책인 ‘골목사장 분투기’가 생각났다.
그래. 이게 실전이구나. 장모님의 실전 경험과 고객 대응 업무를 주로 했던 SJ의 협력은 첫 시작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상권이 크게 좋은 지역이 아니지만 그래도 반찬가게가 생겼다고 사람들이 와주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장모님의 반찬은 맛있었다. 경영학의 불고불변의 진리인 ‘제품이 우수해야 한다’ 라는 명제는 큰 회사든 골목상권에서든 어디서나 통했다.
SJ와 장모님의 반찬가게 시작이 얼마나 대담했냐면 아무런 예비자금없이 이 사람들은 창업을 해버렸다. 보통 가게 시작하면 초반 2~3달은 본전에서 마이너스까지 생각해야 하는데 이 사람들은 운전자본 없이 그냥 시작해버렸다.
한 달이라도 마이너스가 나면 안 되는 상황인데, 근데 마이너스가 안 났다.
이상하다. 회사에서 경제성 평가하면 보통 신사업 초반에는 투자하고 그래서 마이너스 나다가 중반이후 부터 좋아지는 그림을 엑셀로 그리는데 여기서는 그냥 처음부터 우상향이다.
내가 나중에 계산해보니, 4달째인가 5달째에 인테리어 비용도 다 뽑아냈다. (뭐야 이 사람들 무서워). 그렇다고 티비에 나오는 그런 대박 가게 정도는 아니고 두 명 모두 과거보다는 돈을 더 벌어가는 구조였다.
한 달 매출이 끝나고 나서, 나의 실력으로 매출 분석을 해주지. 어떤 카테고리 매출이 잘 나오는 건지, 시간대별로 요일별로 다 해주겠다 라고 자랑스럽게 POS 데이터를 뽑아보니 허탈했다.
대부분의 매출이 ‘반찬 2팩’, ‘5000원 반찬’ 이라는 두 개에서 나오니 뭐가 더 잘 팔리는 지 알 수가 없었다. SJ에게 POS 맵 좀 정리해달라고 했다가 또 혼났다.
“바쁜데 언제 POS 맵 넘기면서 결제를 해. 한 화면에서 다 보여야지. 오빠가 알바 한 명 뽑아줄거야?”
역시 이 반찬가게에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음식물 쓰레기 대신 버리는 게 가장 가치가 높은 작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