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오늘 뭐해?”
“집에 있을 거야”
“또 공부하는 거야? 이력서는 쓰고 있어?”
“그럼 이력서 쓰고 있지. 지금 겨울이라서 채용공고 뜬 게 많지 않아. 일단 쓰고는 있어. 그리고 회사 가서 써먹을 새로운 스킬도 공부하고 있고”
“그래 알았어. 공부하는 건 좋은데, 빨리 어디 붙으면 좋겠다. 아직 매출이 불안정하니 불안해”
“알았어. 금방 될 거야 걱정하지 마.”
“집에 먹을 거 없으면 나가서 사 먹어”
SJ는 반찬가게로 출근하기 전에 항상 오늘 뭐할 건지, 그리고
인간은 소비를 좋아한다. 어려서부터 엄마와 갈등을 가지는 순간이 내가 원하는 걸 사고 싶은데 엄마가 사주지 않을 때이다. 소비라는 건 내가 필요한 걸 얻는 것과 관련이 있지만 굳이 내가 필요하지 않더라도 얻는 것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실 “소비자”들이 행하는 대부분의 소비는 어쩌면 후자일지도 모른다. 지금 사지 않아도 살아가는데 아무 지장이 없는 것을 소비하면서 내가 살아있다고 믿게 되는 현대인들은 어쩌면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어울릴 것이다.
회사를 다닌다거나 주기적으로 용돈을 받는다면 소비의 생활에는 큰 불편이 없을 것이다. 심리적으로 소비의 상한선이 정해져 있어서 이 정도까지는 내가 할 수 있는 ‘지름’이니 지르고, 만족감을 얻는다. 많은 사람이 언급해서 우려먹기도 그렇지만 그 물건이 내 것이 되기 때문에 기쁜 게 아니라 그 물건을 ‘질렀’기 때문에 우리는 기쁜 것이다.
가장 행복한 순간이 택배를 기다리고 박스를 개봉하는 순간까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나 역시 소비 생활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캡슐 커피머신처럼 사놓고 유용하다고 기뻐하는 경우도 있지만 한 50% 정도는 굳이 이게 필요한가 싶은 용도의 아기자기 혹은 자질구레한 전자제품을 지르고 기다리면서 좋아하고는 했다.
이 이야기는 돈이 제한된다면 혹은 돈을 극도로 아껴야 한다면 다르게 전개된다. 이제는 돈을 정말 필요한 데에만 써야 하기 때문이다. 나의 가족 한 분이 우리 가족의 퇴직금의 대부분을 가지고 사업을 시작하면서 나는 정말 돈을 아껴 써야 하는 아니 거의 돈을 쓰지 말아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 상황에 이르러서야 나도 소비를 하지 않으면 힘들구나 하는 걸 깨달았다. 집에만 있으면서 돈을 쓰지 않고 가만히 있다 보니 과연 나는 뭐하는 사람일까 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고 있다.
돈을 벌지 않고 집에만 있어서 나는 뭐하는 사람일까?라고 생각이 들어야 하는 게 정상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그때 당시는 퇴직금이 어느 정도 있어서 소소하게 커피숍에 가서 커피를 마시는 정도의 소비도 했고, 여행도 다닐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뭐하는 사람일까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는 뭔가를 소비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나의 용도는 소비로 존재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창업을 준비하면서 가지고 있던 자금이 줄어들면서 점점 나갈 수도 없고, 누구를 만나기도 어려워진다는 걸 느끼고 있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만 있으면 가족의 창업에 도움이 되니까. 이렇게 버티고 있는지 한 2주 정도 되면서 점점 우울의 언덕에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고 있다.
내가 이 가정에 도움이 되는 존재인지 모르겠으니까. 나는 나를 위해, 우리 집을 위해 소비를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 현대인으로 실격인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