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라는 직업

After 벤쿠버

by 채과장

밴쿠버의 시간은 SJ와 나에게 모두 도움이 되는 시간이었다. 나는 두 달 동안 건강을 챙길 수 있었고, SJ는 새로운 경험을 했다. 북미 지역에서 어학연수를 해보고 싶었던 SJ의 소원이 풀리는 순간이었으며, 다른 삶의 궤적들을 관찰할 수 있는 기회였다.


SJ는 처음에 끊임없이 궁금해했었다. 왜 여기 사는 사람들의 얼굴은 이렇게 편안해 보이냐고. 시차적응이 덜 된 나는 글쎄 일찍 퇴근하니까 그렇지 않을까로 대답했었다. 두 달의 기간 동안 SJ가 느낀 건 분명 한국 사람들과 다른 삶의 가치들을 가지고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두 달 동안 찰떡같이 붙어다니던 우리는 다녀와서도 계속 찰떡같이 붙어있었다. 둘 다 백수이니….

SJ는 더 이상 회사에 다니고 싶어하지 않는다. 본인만의 사업을 하고 싶어하는 거 같은 눈치이다. 지금 열심히 알아보고 있는 걸 보니 어쩌면 회사 생활보다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좋은 인생의 기회를 맞이한 것일 수도 있고.


단지 이 열정이 조금 더 오래갔으면 하는 바람일뿐. 컴퓨터를 그렇게 싫어하는 SJ가 사업계획서까지 쓰는 걸 보면 정말 사업을 하기는 할 모양이다. 나로서는 딱히 도와줄 일은 없고 이것저것 체크포인트만 같이 만들고 확인하면 될뿐


결국은 내가 문제다. 2월까지 어쩌면 나는 계속 무직 상태로 있어야 할지 모른다. 어쩌면 그 이상도. 내년에 전세 계약이 끝나면서 다시 한 번 은행에 대출을 받아야 할 수 있는 상황이 올텐데 그 때까지는 직장이 있었으면 하지만 잘 모르겠다. 생각보다 나이의 벽이 있는 듯 하다.


그것도 아니라면 내 실력이 잡마켓을 맞춰주지 못하는 만큼 매력적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얘기니. '직장 생활에서 크게 출세해서 임원을 하고 싶다' 이런 생각은 해본 적은 없다. 큰 회사에서 임원까지 갈려면 실력 뿐만이 아니라 정치적 상황을 조율하고 팀을 이끌 리더쉽까지 있어야 하는데 실력도 간당간당한데 저런게 나에게 있을리 없다.


그래서 잘 나가겠다 라고 생각해본적도 없고 언젠가는 나가서 나만의 뭔가를 해야겠다라는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한 2년 정도만 회사 생활을 더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2년 정도 회사생활 하면 더 이상의 미련은 없을테니.


10년 전 잘 다니던 회사를 나와서 유학 준비하던 시절 보다는 확실히 낫기는 하다. 그 때는 경력도 없고 어려서 유학 못 가면 어떡하나 생각에 잠도 잘 못 이루고 했는데 지금은 잠은 잘 잔다. 너무 잘 자서 탈인건지 아니면 퇴직금이 조금 그 때보다 많아서 나은 건지,


마지막으로 것도 아니면 지금은 SJ가 내 옆에 있어서 그런건지. 예전에 했던 기획이라는 일에서 지금은 더 공부를 하고 싶어서 데이터 분석 쪽을 공부하고 있지만 과연 이 쪽으로 커리어 전환이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아마 내 나이쯤 되는 사람에게 조직이 원하는 건 관리라는 능력이나 여튼 어디 가서 사바사바를 해서라도 뭔가 얻어오고 그래야 하는 걸 더 원할테니.


밴쿠버에 있을 때만 해도 뭐라도 하겠지 라고 생각할 수 있었던 건 밴쿠버의 공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한국의 공기를 맡으니 나도 모르게 불안에 쌓이면서 ‘아 과연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점점 커지는 걸 누르고 있다. 내가 너무 경솔했나. 그렇지는 않다. 어떻게든 핑계를 대서 뛰쳐나왔을 것이다. 회사가 내 인생의 옳고 그름을 정해주지는 않을 것이다. 돈은 어쩌면 내 생활의 질을 결정지을 수는 있을지 몰라도.


결론은 3~5년차 직장인 분들이 부럽다. 그 분들은 요즘 잡마켓에 많은 기회를 가진 것 같다. 나이 있는 직장인들은 정말 나오면 할 게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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