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밴쿠버에서

What did we do there?

by 채과장

“갔다 올게”


“그래 조금 있다가 봐”


SJ는 그렇게 어학원 입구로 도시락 가방을 흔들면서 들어갔다. SJ의 어학원은 밴쿠버의 yaletown이라는 곳에 있었다. 나는 거기서 뭘 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혼자 인터넷으로 이것저것 혼자 공부하기로 했다. SJ가 TESOL같이 영어 가르치는 과정을 들어보는 게 어떻겠냐고 했지만, 그때 당시에는 그렇게 빨리 영어를 가르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컴퓨터 언어를 혼자 공부하기로 했다.


SJ를 학원에 보내고 나면 늘 가는 스타벅스에 와서 주문하러 갔다. 밴쿠버의 스타벅스는 늘 이름을 묻는다. 고객과의 접점을 유지하려는 스타벅스만의 독특한 전략이지만 외국 사람이 미국이나 캐나다의 스타벅스에 오면 하나의 도전과제이다. 한글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는 직원을 보지 못했다. 이니셜이 제일 편했다.

그렇게 자리에 앉아서 3시간 동안 혼자 온라인 강의를 듣고 나면 SJ에게 연락이 온다. 밥 먹으러 오라는 것이다.


SJ의 어학원에 앉아서 같이 점심을 먹고 나면 SJ는 항상 물어본다


“우리 뭐하지?”


“도서관 갈까? 아니면 스탠리 파크 갈까?”


“다른 거 해보고 싶어”


그렇지만 딱히 다른 걸 해본 적이 없는 우리였다. 도서관 가서 SJ는 숙제하고, 나는 아까 듣던 온라인 강의를 듣고 그러다가 장 보러 가고. 장 보러 가는 건 확실히 SJ의 즐거움이었다. 한국에서도 장 보러 가서 이것저것 보는 걸 좋아했던 SJ는 캐나다의 다양한 먹거리를 좋아했다. 나는 3년 동안의 외국 생활 동안 보지도 못했던, 아니 보고도 몰랐던 과일이나 야채를 SJ는 일주일 만에 다 알아보고 먹어봤다.

IMG_4725.JPG 학원끝나고 놀러간 우리들


장을 보고 숙소에서 저녁을 준비하고 도시락을 만들면 어느새 8시 정도 되는데 밴쿠버의 밤은 서울과 완전 다르다. 한국에선 8시 정도 되면 사람들은 게임을 하거나, 티비채널을 돌려보거나, 핸드폰으로 이것저것 보면서 모든 집의 불이 환하게 켜져 있고 거리도 사람들이 끊임없이 돌아다닌다. 밴쿠버의 저녁 8시는 대부분의 집이 이미 저녁 식사가 끝난 후, 집의 불이 꺼진 곳도 많고 거리는 적적해있다. 이방인인 SJ와 나는 동네를 돌아다닐 수도 없고, 그만큼 외곽의 밴쿠버 저녁은 무섭다.


대신 우리가 찾은 건 일상의 여유로움이었다. 저녁 식사 준비 1시간, 식사 1시간, 정리 후 1시간 동안 가진 대화의 시간은 소중했다. 에어비앤비 숙소 뒤뜰에 있던 야외 탁자에 음식을 차리고, 따사로운 햇빛을 즐기면서 먹는 밥은 치유의 시간이었다. 서비스업에 있으면서 손님의 무리한 요구와 폭언에 무너졌던 SJ의 마음을,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처럼 느껴져 무너지는 나의 마음을 달래줬었다.


IMG_4708.JPG SJ가 만든 저녁


“한국 가면 우리 이렇게 마음 편하게 못 먹겠지?”


“그렇지, 그냥 즐기자”


우리도 알고 있었다. 향후 몇 년간 이런 여유는 또 즐기지 못할 거라는 걸.


2달 동안 SJ는 영어학원을 열심히 다녔지만 영어가 크게 늘지 않았다. 지금 와서 보니 SJ는 그냥 어학연수 가보고 싶었던 거지 영어를 열심히 공부해보고 싶었던 건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2달 동안 2개의 기초 과정을 끝냈다. SQL이라는 데이터 관련 언어의 기초 과정인데 쓸데가 없었다. 차라리 한국에서 학원 다니면서 하루 종일 공부하는 과정이 더 낫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들고 아님 SJ 말처럼 TESOL 과정이나 들을 것 그랬다.


결국 우리는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가 유행했던 것처럼 밴쿠버에서 두 달 살기를 체험했다. 나에겐 이 두 달 살기 체험은 SJ를 위한 것이었다. 외국에서 3년 정도 살았었기 때문에 한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사는 것에 큰 느낌은 없었다. SJ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본인도 밴쿠버에 굳이 갈 필요가 없었다고 했다.


밴쿠버를 왜 갔을까에 대한 각자의 다른 생각은 다녀온 이후로 우리를 늘 힘들게 한 부분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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