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퇴사들

by 채과장

이번에 퇴사한 회사는 세번째 회사였다.

즉, 이 앞에 두 번의 퇴사가 또 있었다는 뜻이다. 세번째 다닌 회사에 애환이 큰 편이고 최근의 일인지라 세번째 회사 얘기를 많이 하지만 앞의 회사들을 왜 퇴사했을까 생각해봤다.


#첫번째 회사 입사

내가 다닌 첫번째 회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회사이고 신문에 늘 나오는 회사다. 지금은 분사해서 제일 큰 회사는 아니다. 지금은 모든 대학생들이 가고 싶어하는 첫번째 회사로 완전 탈바꿈 했었지만, 내가 입사를 지원할때만 해도 공대생들의 워너비는 아니었다.


아 나는 사실 공대생이다. 대학 입학을 했을 때부터 공대 전공을 싫어하고 늘 수학을 두려워하며 살았지만 어쨌든 학부는 공대 전공으로 되어있다. 첫번째 회사에 입사하면 대부분의 직원들이 서울이 아닌 경기도나 충청도, 경상도까지 내려가서 근무해야 하기 때문에 당시에는 ‘딴 데 떨어지면 가자’라는 인식이 어느 정도는 있었다.


나는 대학교 3학년이 끝날때까지 취업에 관심이 전혀 없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전공을 워낙 싫어해서 수업을 안 들어갔더니 병역의 의무를 시작하기 전에 학점이 2.0도 안 되었다. 병역의 의무가 끝나고 어학연수를 다녀오니 학교는 휴학하기 전과 너무 달랐다. 90년대 후반 신입생때는 나 정도 학점을 가진 애들이 부지기수 였는데, 복학해보니 신입생들은 학점도 좋고 어느 회사에 취업할 것인지 목표까지 정해져 있었다.


난 신입생때 술먹고 당구만 쳤는데. 아니면 도서관에 박혀서 무협지만 읽던지. 그래서 복학하고 학점을 메꾸느라 눈코뜰새 없었다. 거기다 공대 전공에서 벗어나고자 경영학을 복수 전공하는 바람에 양 쪽의 전공을 혼자 하느라 힘들게 학교를 다녔던 것 같았다. 그 와중에 영문과 전공은 왜 들었는지 사실 아직 이해를 할 수 없기는 하다.


4학년 1학기가 되니까 같이 공부하던 동아리 친구들이 어느 회사 준비하냐고 물어봤다. 그 때 나의 대답은“그런 것도 준비해야 하는 거냐? 원서쓰고 면접보면 되는 것 아니냐?” 라는 대답을 했다가 친구 한 명이 중앙도서관에서 하루 종일 취업 시장의 현실과 우리 학교 졸업생들의 취업현황과 대기업에 취직하려면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거쳐야 하는지 알려줬다.

들어보니 나라는 인간은 취업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 아 이게 현실이구나.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이미 그 이상을 이미 갖춘 사람이 많구나 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도 20대의 나는 운이 꽤 좋은 편이었다. 캠퍼스 리쿠르팅이라는 것이 뭔지도 모른채 참석하니 ID라는 걸 나눠줬었다. 아무 생각없이 받아왔는데 꽤 중요한 거였다. 그 ID가 있으면 서류전형은 거의 합격이었다. 참 재미있는 건 서류전형에 합격할려면 지원 당시 최소 평점이 3.0은 되어야 했는데 4학년 1학기 당시 나의 평점은 아슬아슬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서류전형을 통과하고 그 회사가 주관하는 인적성 검사 시험까지 봤다. 지금은 학원도 생기고 여러 문제집도 있지만 당시에는 딱 한 권 밖에 없었다. 나는 그 책을 친구랑 같이 한 번 풀고 시험을 치러 갔었다. 알고보니 내 친구는 나랑 풀고 다른 데서 스터디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여튼 나는 인적성 검사까지 합격을 해버렸다. 동아리나 과에서는 떨어진 사람들이 등장하면서 나를 보는 시선들이 약간 달라졌다. ‘뭐야 재도 합격 하는거야? 저렇게 학점도 낮고 공대 전공에 신경도 안 쓴 애가?” 내가 지원했을때부터 전공에 대한 평점을 새로 기입하는 난이 생겼다. 대학생이 공부를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보겠다고 하는 취지였다.


아니나 다를까 면접에 가서 나는 엄청난 공격을 받았다. 전공 점수가 이게 뭐냐고? 학생의 본분을 제대로 한 게 맞냐고. 복수전공인 경영학에서 좋은 평점을 받았다고 방어를 해봤지만 면접관들은 별로 인정해주지 않는 분위기에서 ‘아 떨어지겠네’ 라는 생각이 들 때쯤 면접관이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냐고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사실대로 대답했었다. 대학 생활의 전반부는 엉망으로 보냈지만 후반부는 정말 열심히 살았다고. 시간을 아깝게 소비한 나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이러이러한 노력을 했다 등등 여러 말을 혼자서 5분 정도 가까이 떠들었다. 이 정도 떠들었으니 떨어져도 후회는 없다 라고 생각할 때 면접관은 예상치 못한 다른 질문을 또 꺼냈다.


“지원자는 토익 점수가 타 공대생에 비해 월등히 좋은데 방금 한 말을 영어로 한 번 해볼 수 있어요?”

그 때의 순간을 또렷이 기억한다. 1초 동안 ‘아 망했다’라는 생각이 먼저 떠오르고 0.5초 동안 ‘무슨 말을 해야하지’라는 생각이 지나가고, 마지막 1초 동안 ‘일단 시간을 벌자’ 라는 생각이 머리를 지나갔다. 저 순간을 합해보면 그 면접장 안은 대충 3초 동안 정적이 흘렀던 거다.


“괜찮으시다면 잠깐만 제가 생각해보고 질문에 답해드려도 되겠습니까?” 라고 대답했던 것 같다. 면접관들은 다행히 그러라고 해줬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방금 무슨 말 했는지 다 떠오르지 않았다. 기억나는 부분만 얘기하면 5분 얘기한 내용이 30초만에 끝날 것 같은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더 이상 시간을 끌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정말 생각나는 대로 영어를 ‘빠르게’ 말했던 것 같다. 앞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이해 못하기를 바라며‘최대한 빠르게 문자를 내뱉었다’ 앞 뒤 문장간의 연관성이 문제가 아니라 한 문장 안 단어간의 연관성도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저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막 내뱉었다.


한 3분 정도 내뱉고 나니 면접장의 분위기는 달라져있었다. 아마 그 순간이 불합격에서 합격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던 것 같다. 영어를 잘 해서 뽑아준 게 아니라 어떻게든 살아볼려고 바둥바둥하는 걸 보고 뽑아줬다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왜냐면 그 땐 내가 생각해도 영어를 그렇게 잘했던 건 아니었으니까.


합격을 하고 나니 작은 난리가 났다. 그 낮은 평점으로 그 회사를 붙은 게 화제의 연속이었다. 동아리 친구들은 전공 공부할 필요 없다고 토익 공부만 하면 된다고 그랬고, 과에서도 친한 사람이 없었는데 합격하고 나니 모르는 사람들이 말을 걸어왔다.


취업 관련 카페에 합격 후기를 올리고 나니 평점에 관해 물어보는 쪽지가 많이 왔었다. 사실 나도 그 회사를 어떻게 들어간 건지 모르겠다. 지금 다시 그 회사를 들어갈려고 지원을 하면 떨어질 것 같다. 당시 회사의 브랜드 가치는 세계 50위 권에서 맴돌고 있었는데 지금은 10위 안에 있으니.


#그리고 퇴사

첫번째 회사를 2년 넘게 다니다가 퇴사했던 것 같다.

참 좋은 선배님들과 재미있게 회사를 다녔다. 그 팀에는 팀장을 빼고 그렇게 나쁜 사람들은 없었다. 팀장들은 뭐 어느 정도 그래야 팀장이 되는 거니까. 퇴사를 결심한 건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다. 경영대학원을 가서 미국에서 일을 해보고 싶었다.


아마 치기어린 마음 같은게 있었나 보다. 회사에 들어오고 전략팀과 재무팀 사람들과 협업을 해야할 때가 있었다. 그 분들은 다 경영대학원을 졸업해서 오신 분들이었고, 회의 때 그 분들이 사용하는 단어와 논리들이 멋있어 보였다.


나도 저 사람들처럼 산업과 사업을 높은 곳에서 바라보듯이 다 알고있는 것처럼 얘기해보고 싶었다. 그래야 진짜 비즈니스맨이나 프로페셔널 뭐 그런 것 같았다. 그래서 경영대학원을 지원하고 싶어서 회사를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회사에서 지원해주기도 하는데 나는 그 정도의 핵심인재가 아니라 내가 알아서 준비했어야 했다.


첫번째 회사를 퇴사한다고 했을 때, 부모님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한 쪽은 맹렬히 반대하시고 한 쪽은 반대하지만 너를 신뢰한다였다. 반대하는 건 아버지였다. 어른들의 머리 속에는 거기보다 더 좋은 회사가 없는데 왜 거기를 나오냐는 것이었다. 니가 경영대학원에 합격할지도 모르고 ‘어서 결혼이나 해서 애나 낳고 회사 다녀라’가 아버지의 주된 주장이었다.


의외로 엄마는 내 결정을 지지했다. 어렸을때 집안 사정으로 공부를 접었어야 했던 아쉬움 때문인지 공부를 더 해서 더 좋은 곳을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면 도전을 해야지 하면서 지지를 해주셨다.


결국은 엄마가 아버지를 설득해서 퇴사를 하고 준비를 하고 9개 지원한 대학원에서 8번째 학교에서 합격 소식을 듣고 대학원을 다녀왔다. 합격 소식을 들었을때 많이 울었다. 못 가는 줄 알고 이제 뭐해야지 했던 때라 지금 생각해도 그 학교에 고맙게 생각한다. 가서 고생은 많이 했지만.


입사 동기들은 아직도 물어본다. 그 때 퇴사에 대해 후회 없냐고. 첫번째 회사에 대한 아쉬움은 남는다. 그 때 선배들도 좋은 선배들이었고, 업무강도도 그리 가혹한 편이 아니였으니까. 단지 도전을 해보고 싶었고 나를 더 알아보고 싶은 마음으로 도전을 했던 것 같다. 퇴사를 하기 전, 블로그에 자문자답하며 글을 썼던 기억이 난다. 진짜 가고싶은 건지, 퇴사를 하는게 맞는 건지.


퇴사할까 말까 고민하는 글을 쓰지 않고 퇴사하고 나서 글을 쓰는 걸 보면 10년 동안 나에게도 발전이 있긴 있었나 보다.


대학원 졸업할때쯤 두 군데 회사에 합격을 했었다. 한 회사는 나의 고향에 본사가 있는, 사실 회장과 대부분의 주요 직원들은 역삼인가 선릉인가 있는 빌딩으로 출근하지만 본사는 나의 고향에 있는 회사였다. 이 회사는 우리 부모님에게 신화적 회사다.


사고만 안 치면 정년이 보장되는 회사라서 내가 대학생 시절때부터 들어가라고 강요했던 회사다. 물론 학부생 시절의 나는 거들떠 보지도 않는 회사라 지원하지도 않았지만 대학원때는 어떻게 운이 좋아서 합격을 했었다.


다른 회사, 나의 두번째 회사인 이 회사는 지금 생각해봐도 나의 실수였던 거 같다. 첫번째 회사에서는 좋은 선배들을, 세번째 회사에서는 커리어적으로 성장을 했지만 두번째 회사는 나에게 공백 정도였던 거 같다. 그런데 그 회사를 왜 선택했을까? 잘 모르겠다. 사람은 알 수 없는 선택을 하니까. 아 사실 여기가 제시한 연봉이 더 높았다. 역시 나라는 녀석은 생각보다 돈을 좋아했던 거 같다.


이 회사의 가장 신기했던 점은 넥타이 착용이었다. 회사가 보수적인 색채를 너무 강하게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여름 7,8월을 제외하고는 넥타이 착용이 강제였다. 요즘 대부분의 회사는 비즈니스 캐주얼인데 여기만큼은 넥타이가 의무였다. 고등학교 교복에도 넥타이가 없어서 넥타이를 매어본 횟수가 면접때를 빼고는 거의 없던 터라 참 곤란했다.


넥타이를 맵시있게 잘 매지도 못 했고, 넥타이를 매면 너무 답답해서 미칠 거 같았다. 답답한 걸 싫어해서 겨울에 폴라 티도 입지 않는데, 넥타이를 매니 넥타이가 나를 졸라매는 거 같아 힘들었었다. 결국 적응하긴 했지만 자리에 앉아 있을 때는 넥타이를 남보다 헐렁하게 매고 있었다. 그래야만 좀 숨이 트였다. 이직했던 이유 중 하나는 분명히 넥타이 매기 싫어서였던 거 같다.


입사하고 배치받은 팀은 신사업 관련 팀이었다. 가보니 쟁쟁한 사람들이 많았다. 신입사원 중에는 수능 만점자도 있었다. 첫번째 회사는 입사지원할때 졸업을 하지 않은 지원자를 굉장히 좋아한다. 졸업하고 2년 지나 29이나 30살이 지원하면 거의 대부분 떨어진다. 하지만 여기에는 32살 신입사원도 있다고 하니 신기한 회사구나 생각했다.


이 팀은 이미 죽은 팀이었다.

신사업 팀은 회사의 오너나, 아니면 사장급이 신사업을 통한 매출 성장에 관심이 있을때 뭔가를 할 수 있는 팀이 된다. 하지만 그 회사가 혹은 전체 그룹이 내실 안정화, 턴어라운드 등 이런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 시기라면 신사업팀은 그냥 문서를 발행하는 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보고 순서에서도 늘 밀려나고, 주요 경영관리 이슈 논의 후에 짜투리 5분에서 10분 정도 하는 걸로 마무리 된다면 그 팀은 죽은 팀이 된다. 결정적으로 우리 팀을 만든 패밀리 멤버는 승계가 정리되고 나니 회사를 나가버렸다. 회사를 나간다는 메일을 받은 그 날 우리 팀원들은 직감했다. 뭔가가 들이닥치는 구나.


죽은 팀에 있는 팀원들은 어떻게 될까? 정글이 된다. 리바이어던에 나왔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상태라고 해야할까? 어떻게든 자기 존재가치를 드러내서 나는 팀에 필요한 사람 이란 걸 증명하기 위해 소모적인 팀 내 정치를 해야한다. 이렇게 소모적으로 팀정치를 하니 매일매일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하는게 아니라 나는 일을 제대로 하고 있지만 너가 일을 더 제대로 하지 않는다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고민했어야 했다. 이런 소모적인 곳에 계속 머물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기회가 닿아서 세번째의 회사로 옮겨갔다. 옮겨가고 얼마되지 않아 친한 사원한테 들은 얘기로 신사업팀이 해체되었다는 것이다. 일도 없고, 경영진의 관심도 못 받고, 담당 임원이 오너 패밀리와 끈이 떨어지는 순간 예정되었던 수순이었다. 팀이 없어진 것에 대해서 큰 감흥을 느끼지도 못했다. 애정, 아니 애증이라는 것도 없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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