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결국 회사를 나오기로 팀장와 이야기 했다.
1년만 버티면서 캐쉬를 만들어놓자고 했을 때가 2월이었다. 그리고 정확히 6개월 후 나는 회사를 떠나는 걸로 정했다. 6개월 동안 무슨 큰 사건이 벌어져 내 결심을 당긴 것은 아니었다.
알고보니 정해놓은 1년이란 시간이 꽤 긴 기간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다. 아 결정적인 사건이 하나 있긴 있었다. 사소한 사건이긴 하지만 퇴사를 결심한 사람에게는 작은 쐐기가 소나무를 파고들듯이 내 마음을 파고 들었다.
그리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 같은 업무를 하는 옆 팀에서 우리 팀과 논의없이 나의 업무 분장을 진행해서 통보한 것이다. 아무리 공통 업무를 나눠서 한다고 해도 최소한 팀장 간의 협의나 아니면 당사자에게 이 업무가 떨어질 수도 있다라는 걸 통보해주는게 최소한의 직장예의이기도 하다.
물론 그 팀이 우리 팀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위의 절차는 생략가능하다. 실제로 그렇게 했듯이. 결국 나에게 떨어진 업무는 어떤 회의 참석자들의 가능여부 확인과 회의실 예약 등 서로 돌아가면서 할 수 있는 일을 나에게 일임한 것이다
“넌 할 일 없잖아. 이거나 해”
인생이 뭐 그리 거창할 것이 없다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당연한 걸 너무 늦게 깨달은 인생이지만 일을 하는 것에 소소한 의미 정도는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저 회의참석 여부’만’ 알아내서 보고 하는 건 내가 생각하는 인생의 의미와 맞닿아있지는 않았다.
회의의 안건을 설정하고 참석 인원과 조율하는 역할이 포함되었다면 하나의 업무를 전적으로 맡은 것이지만 회의 참석 여부만 확인한다는 건, 극단적으로 말해보자면, ‘내가 여기 왜 있는 거지’ 질문을 스스로 할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 업무분장표를 아웃룩에서 열어본 순간 나가야겠다고 결심했다. 퇴사하려면 가족과의 동의도 필요하고, 팀장과의 협의, 회사의 프로세스를 밟아야 하는 기간이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더 걸릴 뿐이지, 결국 올해 안에 퇴사였다.
이미 퇴사를 2번이나 해봤기 때문에 사실 퇴사라는 절차가 크게 두렵지는 않았다. 처음 퇴사처럼 아 나는 이제 무소속의 인간인가? 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고, 두번째 퇴사처럼 아 이번에 만나는 사람들은 좀 더 정상적인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내가 조직을 만들지 않는 한 결국 어딘가에 소속된다라는 건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금 회사를 나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라는 쪽으로 생각을 하기로 했다. 어차피 상황을 돌이켜보면 40대에 분명 한 번도 접해보지 않는 업무를 하는 곳으로 발령받거나, 아님 위로금 조금 받고 밖으로 내몰릴 상황으로 보였으니까.
아닐 수도 있다. 고위 임원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러 갔을때 ‘너에게 거는 기대가 큰 데 아쉽다’라고 말한 거 보면. 물론 높은 곳에 계시는 분들의 립서비스 일 수도 있다. 높은 분들일 수록 좋은 말을 잘해주시니까.
여튼 나는 내 좌뇌의 스토리 텔링 영역을 활성화 시켜 ‘나이들어 나가면 체력도 떨어지고, 생각이 더 고착화 되서 할 수 있는 게 더 없어, 그리고 그 땐 자존감이 더 떨어져 정말 바닥에서 올라올려면 고생할 거야’라고 인지 부조화에 성공했다.
좌뇌의 스토리 텔링 자아 덕분에 앞으로 뭔지는 모르지만 ‘무엇이든’ 새롭게 시작해야할 도전을 준비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