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 Debate : Edmund Burke, Thomas Paine, and the Birth of Right and Left (2014) by Yuval Levin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토요일입니다. 비가 오니 아쉽게도 라이딩을 할 수가 없어서, 오래 전 사두었다가 읽지 못했던 책을 한 권 읽었습니다. 유발 레빈이 2014년에 발표한 책입니다. 한국에서는 《에드먼드 버크와 토머스 페인의 위대한 논쟁》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2016년에 출판되었습니다.
명예혁명 이후 입헌군주제를 유지하고 있던 18세기 후반 영국을 배경으로 프랑스 대혁명과 미국 독립혁명을 바라보던 2가지 시선을 미국 정치학자인 유발 레빈의 관점에서 대립시켜 서술한 책입니다. 당시 혁명을 지지했던 인물이 Thomas Paine이고, 혁명에 반대하며 점진적 개혁을 지지했던 인물이 Edmund Burke입니다.
우리 역사에 비교하자면, 14세기 후반 혁명으로 고려를 무너트리고 새로운 질서를 꿈꿨던 삼봉 정도전과 점진적 개혁을 통해 고려를 유지하고자 했던 포은 정몽주 간의 논쟁을 오늘날 대한민국의 관점에서 분석한 책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책에 등장하는 좌-우, 보수-진보의 개념이 현재 우리 사회의 것과는 많이 다릅니다.
원래 보수와 진보라는 용어는 'the status quo' 즉, '현재의 상황' 혹은 '현재의 주류 질서'에 대한 정치적 태도의 차이에서 나온 것입니다. 현재 상황을 보전하고(conserve) 지키려는 쪽을 보수(Conservative), 그것으로부터 점점(progressively) 벗어나(liberal from)려는 쪽을 진보(Progressive 혹은 Liberal)라고 부릅니다.
조금 아쉬운 것은, 한국 사회에서 이 책을 보수(버크)와 진보(페인)의 논쟁으로 '맥락' 없이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18세기 영국이라는 맥락에서 당시 주류 질서는 입헌군주제였습니다. 따라서 혁명을 주장한 Paine은 진보를 넘어 오히려 과격주의 혹은 급진주의에, 개혁을 주장한 Burke는 진보주의 (혹은 개혁적 보수주의)에 가깝습니다.
다만, 이 책의 저자인 유발 라빈은 자유주의, 개인주의, 시장경제, 공화주의 등이 주류 질서인 21세기 미국이라는 맥락에서 Edmund Burke와 Thomas Paine 간에 18세기 후반에 벌어졌었던 논쟁을 현재 미국의 보수-진보, 좌-우의 논쟁에 빗대어 풀어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다음과 같이 유보 혹은 전제를 덧붙입니다.
"Both [Edmund Burke and Thomas Paine] are modern attitudes, and both are liberal too, but they disagree about just what modernity and liberalism mean. Indeed, that very disagreement has ultimately come to define modern liberalism."
이 책은 반드시 '맥락'에 유의하면서 읽어야 합니다. Burke와 Paine의 논쟁이 벌어졌던 18세기 영국, Yuval Levin이 이 책을 쓴 2014년 미국, 그리고 여러분이 이 책을 읽는 2022년 한국이라는 서로 다른 맥락을 구분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 물결이 휩쓸던 18세기 영국과 미국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아주 멋진 책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