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감정

이상혁, 아홉 번째 이야기

by 이상혁


누군가 대뜸 취미가 뭐냐고 묻는다면 음악 감상이라고 대답하는 당신은 어떤 음악을 즐겨 듣습니까. 한 겨울 집에서 나가기 전 껴입은 두꺼운 잠바 주머니 속으로 손을 넣기 전 듣는 첫 번째 음악은 무엇인가요.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길에 설렘이 있을 땐 어떤 장르를 듣는가 하면, 흘러나오는 음악에 발이 묶여 버스를 놓쳤다거나, 늦은 밤 택시에서 나오는 음악을 배경으로 펑펑 울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음악은 내가 느끼는 감정입니다. 우리가 힘들 땐 위로받을 음악을, 기쁠 땐 흥을 더 돋워줄 음악을 찾는 이유입니다. 이십 대 중반 홀로 멕시코에 갔을 때 말이 통하지 않아 세탁기 하나 못 돌리던, 쉬울 거라 생각했던 취업도 잘되지 않아 6개월을 방황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날도 어김없이 집 근처 카페에서 늘지 않는 스페인어를 한참 붙잡다 집으로 들어와 가만히 시리얼로 저녁을 때우고 있는데 마침 거리 노래방이라는 채널에 가수 더원이 출연해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감기가 언젠간 낫듯이, 열이 나면 언젠간 식듯이, 감기처럼 춥고 열이 나는 내가 언젠간 나을 거라 믿는다.“로 시작하던, ”이 고통은 분명히 끝이 난다. 내 자신을 달래며 하루하루 버티며 꿈꾼다. 이 고통의 끝을.“로 끝나던 노래. 한국에 있을 땐 별 감흥이 없던 '지나간다'라는 노래가 왜 그렇게 크게 와닿던지 좁아터진 방에 혼자라는 게 다행히란 듯 그날은 정말 크게도 울었습니다.


이 고통은 분명히 끝이 난다는 노래의 가사가 그렇듯 다행히도 고통은 금세 끝이 났습니다. 얼마 후 한 회사로부터 연락을 받아 면접을 보고 합격을 했거든요. 물론 입사 후에도 힘든 오르막길이 이어졌지만 가장 큰 고통이 사라졌다는 생각에 악착같이 버틸 수 있었습니다.


때가 되면 어떻게든 먹고살겠지라는 생각으로 평생을 살아오다 처음으로 맞이한 현실에서 무엇 하나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던, 해외에서 홀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사람이 그립던 시절에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까지 수십 번씩 나를 위로해 준 음악. 나는 앞으로 지나간다를 들으면 멕시코에서 힘들었던 시절이 생각나겠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였을까요. ’지나간다‘는 이제 그 시절을 회상하는 추억 속 음악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나서였을까요. 최근 들어서는 '지나간다‘는 가사에 조금 소홀한 내 모습도 볼 수 있겠습니다. 아마 지금의 상태가 당시만큼 힘들지 않다는 말이기도, 더 이상은 위로가 필요치 않다는 말이기도 하겠지요.


초심을 잃었다는 말로 통하기도 하겠습니다만 꽤나 안정을 찾아서 그럴까요. 이제는 차라리 행복할 음악만 듣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힘들 땐 위로를, 기쁠 땐 흥을 더 돋우며 감정에 따라 음악을 선택했다면 반대로 힘든 날일지라도 음악으로 인해 행복한 감정이 실려올 수 있을 테니까요.


그렇게 고된 하루를 마무리 하는 늦은 밤 음악은 때때로 나에게 힘이 되어 준 어릴 적 친구와의 추억을 떠올리게 해줄 지도, 빛바랜 사진 속 행복했던 여행지로 데려다줄 지도, 그 시절 서해 앞바다로부터 풍겨오던 바다 향이 날 지도, 삐걱대는 흔들의자에 앉아 이름 모를 옛 노래를 듣던 그리운 네가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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