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혁, 첫 번째 이야기
보름달이 밝던 어느 저녁. 야외에서 친구와 함께 와인을 마시던 중 피아노를 멋지게 치던 남자를 가만히 보던 나는 대뜸 "악기 하나는 정도는 배워야 하는데."라며 말을 한다. 그 말을 듣던 친구는 내가 1년 전에도 똑같은 말을 했다며 그때 배웠으면 이미 쉬운 곡 한두 개 정도는 가볍게 연주했을 것이라며 말한다. 친구의 말에 나는 머쓱한 표정을 감추기 어려웠다.
일 년 전에 했던 말을 다시 반복해서 한다는 것은 순간의 진심이었을 뿐 실제로는 필요성을 못 느꼈다거나 그만한 간절함이 없었다는 말로도 통한다. 대학을 졸업하기까지는 돈이 없으니 직장인이 되어 돈이 생기면 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직장인이 되고 나니 돈은 있는데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대기 시작한다. 결국엔 시간을 할애하여 기회비용을 계산해 볼 만큼 간절하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겠다.
옛말에 칼이라도 뽑았으면 무라도 베어야지라는 말이 있다. 나는 그 옛날의 요즘을 살아보지 않아 잘 모르지만, 지금을 사는 내가 보는 요즘은 칼을 뽑지도 않은 채 무를 베겠다고 하는 사람만 넘쳐난다. 심지어는 어떤 칼을 사용해야 하는지, 어디서 칼을 파는지도 모르며 또한 깍두기를 만들지, 무생채를 만들지 계획도 없는 상태로 길게는 몇 년 동안 무를 베고 싶고, 베어야 한다는 말만 한다.
나 또한 그동안 말로만 베었을 무를 계산하면 대가족이 먹을 일 년 치 김치를 담갔겠다는 생각에 앞으로는 '해야 하는데.'라는 말을 함부로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우선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지 생각하기로 했고, 가치 있는 일이라면 계획을 짜고 날짜를 정해서 '하겠다.'라는 말을 하기로 했다.
나는 오늘부터 글을 쓰고 저자가 이상혁인 책을 출간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