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혁, 두 번째 이야기
새벽 두 시 눈이 떠진다. 목이 칼칼한 게 감기가 들는지 침대 옆 선반에 올려둔 페트병으로 손을 뻗어 물을 마시곤 다시 잠에 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알람이 울린다. 10분 즈음 지났나 했더니 어느새 5시 40분이다. 잠에서 깨어 누운 자리에서 일어나려 몸을 일으키는데 왼발에서 욱신한 통증이 느껴진다. 휴가 기간 동안 멋 부린다고 조금 작은 신발을 신어서인지 무리가 간 모양이다.
아픈 것과 출근은 상관없다는 듯 한쪽 다리를 절뚝이며 화장실로 향한다. 샤워를 마치곤 파스를 붙이며 양말을 신는다. 연휴가 끝나고 새해 첫 출근이라 혹시나 차가 막히진 않을까 집에서 나가기 전 회사까지 경로를 검색한다. 다들 놀고 와서 일찌감치 출근을 하는 모양인지 지도는 평소 가는 일반 도로가 아닌 고속도로로 나를 보낸다.
매일 아침 7시엔 현장에서 팀 회의가 있지만 그날은 참여하지 않았다. 마침 팀장님이 휴가인 데다 회의 자료를 만들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도 있지만 사실 가장 큰 이유는 더운 여행지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추위에 감을 잃어서인지 영하 1도의 날씨에 얇은 셔츠 하나만 입고 출근해서다. 사실 추운 게 싫어서 그랬다.
자리에 앉아서 업무를 보는데 대뜸 처음 보는 얼굴이 인사를 해온다. 법인장님 통역을 담당하시는 분이라고 하신다. 고개를 가볍게 숙이는 정도로만 인사를 나누고 오전 회의를 다녀오니 메신저에 누군가로부터 연락이 와 있다.
"안녕하세요 한국에 있을 때 부장님께서 회사 우수직원이라며, 코트라 동영상을 보내주셨는데 정말 잘 봤습니다. 연락처까지 보내주셔서 따로 연락을 드립니다. 혹시 하나 여쭤봐도 되나요?" 메시지 내용을 보고 오늘 입사하신 분이란 걸 이례 짐작하며 여쭤봐도 된다고 하니 "현장(공장) 통역 용어는 어떻게 익히셨는지요. 감사합니다."라며 답문이 왔다.
통역을 하실 분이지만 공장 용어가 생소해서 연락한 걸로 보여 입사 당시 스페인어 공장 용어를 배울 때 단어를 정리해둔 게 생각나 파일을 찾아 보내주기로 했다. 그 사람은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잊지 않을게요."라며 답문을 보내온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일하다 모르는 게 있으면 언제든 물어봐도 된다며 마지막 답변을 보냈고 세 번째 '감사합니다.'를 들은 후에야 대화는 끝이 났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사소하고 반복적인 일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보인다. 더없이 사소한 일이고 반복되는 당연한 일에 매번 고마움을 표현하는 어른 같은 사람.
나이만 많다고 다 어른일까. 한 번은 “저 사람 정말 어른스럽다."라는 내 말에 "네가 생각하는 어른은 뭔데?”라고 반문하는 친구 덕에 어른의 정의에 대해 생각해 봤다. 국어사전에는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으로 표기되어 있지만 내 기준의 어른은 ‘사소하고 반복되는 고마움을 인지하고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다.
지금은 한국으로 돌아갔지만 작년까지 멕시코에서 많이 의지하던 형님이 있었다. 형님은 매일 출퇴근을 위해 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내릴 때마다 항상 인사말과 함께 고맙다는 말을 빼먹지 않고 하셨는데 나는 사소하고 당연해 보일 일에 한 번을 빼먹지 않고 성의를 표하곤 하는 형님의 그런 어른스러운 태도를 좋아했다. 반복되는 고마움을 인지하고 표현할 줄 아는 사람,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어른은 그런 사람이었다.
세상엔 나이만 어른인 사람이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