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혁, 세 번째 이야기
6개월 멕시코 관광 비자를 갱신하기 위해 옆 섬나라 쿠바에 왔다. 이곳은 세월이 멈춰있는 곳이다. 21세기임에도 여전히 공산주의를 고집하여 전 세계 어디를 가도 흔히 볼 수 있는 코카콜라가 없는 곳이기도 하다. 나에게 쿠바란 행복할 수 없는 곳이었다. 어릴 적부터 근처 공산주의의 어려움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영향일지도, 그 단어 자체에 박힌 선입견일지도 모르겠다.
비자를 목적으로 왔더라도 여행이라고 하루는 수도 아바나의 구시가지를 걷고 있었다. 길거리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신기한 악기로 연주하는 연주가, 여러 식당에서 흘러나오는 재각각의 노래, 저들끼리 모여 수다를 떠는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다양한 소음이 이리저리 섞이며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마치 다른 곡을 듣는 듯한 기분을 들게 해 준다.
생각했던 만큼 그들이 어둡게만 보이진 않는다. 그곳엔 까르르 웃음을 짓는 이들도, 장난을 치며 술래잡기를 하는 이들도, 동양인을 보는 게 처음이라는 듯 신기한 눈으로 나를 보는 이들도 있다.
그렇게 꽤나 걸었는지 어느새 이름 모를 큰 광장에 도착한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한 남자가 내 발걸음을 멈춘다. 그는 사람 허리쯤 올만한 쓰레기 통이 꽂힌 청소 카트를 잡고 있는 사람이다. 쿠바 시내 청소부처럼 보이는 그는 두 손가락에 반쯤 피운 담배를 끼운 상태로 어떤 곡인지 도통 알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게 섞여있는 노래에 맞춰 이리저리 청소 카트를 옮겨가며 춤을 추고 있다. 평소 흔히 볼 수 없는 장면이라서 일까 그의 얼굴에까지 시선이 닿은 나는 박수치던 손을 멈추더니 흠칫 놀란다. 그도 그럴게 그는 누가 봐도 부정할 수 없는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본업으로 돌아간 그에게 나는 잰걸음으로 다가가 당신은 행복하냐는 다소 무례할 법한 질문을 건넨다. 그는 나를 잠시 쳐다보는 듯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그의 행동을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인 나는 어떻게 하면 그렇게 행복하게 살 수 있냐는 질문을 재차 건넨다.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은 이랬다.
"모든 게 행복하다. 가족이 있는 것. 춤추는 것. 그리고 숨 쉬며 살 수 있다는 것조차도."
나는 그의 말을 제대로 이해한 게 맞는지 두어 번씩이나 재차 물어 확인한다. 행복의 기준이 다른 걸까. 대답의 의미를 다르게 해석하기 위해 그의 말을 곱씹던 나는 이내 멋쩍은 웃음을 짓는다. 행복은 상대성이라는 말을 직접 눈으로 경험하니 그가 정말 때 묻지 않은 사람이라는 생각도, 행복은 여행에서나 느낀다는 나 같은 속물은 어떻게 살아가란 말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돌아서더니 다시 버리는 일을 시작한다. 그의 손에 잡혀 통 속으로 들어가는 쓰레기를 보던 나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또한 그곳에 무언갈 넣기 시작한다. 그것은 살아온 인생만큼이나 두꺼워진 색안경일지도, 평생을 타인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불행으로 몰았던 자신일지도, 앞에서 쓰레기를 줍는 나와 마주치기 전의 '그'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한참이나 그 자리에서 '무언가'를 비워낸다. 그러고는 이내 그곳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