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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혁 Oct 20. 2023

그럼 너도 그렇게 살면 돼

열아홉 번째 이야기

글을 잘 적어보려고 마음먹고 앉은 날 만큼 글이 안 써지는 날도 없다. 그런 날은 대부분 머릿속에 떠오르는 몇 개의 단어를 메모장에 적고 덮는 날이다. 내가 적은 글의 대부분은 오랜만에 일기나 한두 줄 써볼까?로 시작해서 ‘캡션이 너무 깁니다’로 끝난다. 인스타그램 게시글에 최대 글자 수 제한이 있다는 걸 최근 들어서야 알게 되었다.


일상을 기록하는 게 좋아지면서 사진을 찍고, 영상을 만들고, 글을 적기 시작했다. 다양한 방법으로 기록하는 습관이 생기다 보니 그 방식에 따라 저마다의 특징이 나누어진다. 당시의 기억이 가장 생생하게 남는 기록은 영상, 느낀 감정을 나만의 분위기로 기록하는 건 사진, 내면의 나와 솔직하게 대화하는 시간을 가지며 자유롭게 기록하는 건 글이다.


더 자세히 나눠보자면 평소 자각하지 못했던 말이나 행동 습관을 알 수 있는 건 영상, 좋아하는 색을 알 수 있는 건 사진,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단짝 친구를 만들 수 있는 건 글이다.


처음으로 적어둔 기록을 SNS에 올리기까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금에 와서 이유를 생각해 보면 사진이나 영상이 엉망이거나 글 쓰는 법을 잘 몰라서도 아닌 주변 시선 때문이었다. 생각이나 감정을 정리한 긴 글을 적어 올리거나 혼자 찍은 브이로그에 얼굴이 나오면 주변에서 흔히 말하는 관종이라 불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우습게도 고작 그게 전부였다. 이제는 전부 옛날 일이지만 사소한 결정 하나도 주변 눈치를 보고 의견을 묻던 그때의 나는 그랬다.


영어도 한 마디 못하던 내가 스페인어권인 멕시코로 해외 취업을 하러 가겠다고 했을 때도 그랬다. ‘멕시코에 가겠다.’가 아니라 가는 게 어떻겠냐고 마치 찬반 투표를 하듯 주변의 동의를 구하며 여기저기 물어보고 다녔다. 가서 잘 안 되면 찬성이 더 많아서 갔던 것 뿐이라고 선택을 변명할 구실이라도 필요했던 걸까. 책임감이라곤 일절 없던 그때의 나는 그랬다.


가치관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한 건 멕시코에서 부터였다. 나를 아는 사람이 전혀 없는 그곳에서는 주변 눈치를 볼 필요가, 아니 볼 수가 없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내 선택과 결정으로 이루어지는 일들의 연속이었던 시간. 노력하고 쏟아 부은 시간 만큼 넘어졌을 때 생기는 상처는 컸고, 실컷 좌절하고 다시 딛고 일어났을 때 아문 상처는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오는 과정에서 고마운 사람도 참 많았다. 내가 그토록 바라던 길을 먼저 걷고 있던, 쿠바에서 우연히 만난 나의 인생 첫 여행 동행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고 부러움을 비춰 보인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래? 그럼 너도 그렇게 살면 돼.”


아직도 잊을 수 없이 생생한 내 인생의 첫 터닝 포인트였다. 그렇게 사는 사람들은 나와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나와는 전혀 다른 그림을 그려가는 사람들. 나는 스스로를 밑바닥이라 치부하며 내가 만든 작은 우물에서 버둥대며 살았고, 물이 차야만 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한 채 비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하고 싶은 게 있어도 주변 눈치를 보고 그저 남들 사는 대로 비교하며, 세월 따라 살던 그날의 나는 쿠바에서 죽었다.


그날 이후로 기록하는 습관을 만들었고 꿈이 생겼다. 세상 어딘가 나와 비슷한 길을 걸으려는 사람에게, 내가 먼저 해봤는데 그렇게 살아도 괜찮더라고 말해줄 수 있는 선한 영향력을 주는 사람이 되는 것. 나도 그랬듯 처음 가는 길은 늘 두렵지만 그 길을 걷는 사람이 당신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 꼭 남들이 사는 대로 비교하며 살 필요는 없다고 말해 주는 것.


한참을 방황하며 무작정 멕시코로 넘어와 대책 없이 살던 4년 전의 나는, 지금 그렇게 살고 있다.


남들보다 뒤처질까 두려운 마음에 하고 싶은 선택을 망설이는 이름 모를 당신에게, 당신도 그렇게 살면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2030 부산 월드 엑스포 짐바브웨 홍보 영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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