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 번째 이야기
정처 없이 여행하다 보면 가끔, 여기는 다시 와야겠다 생각 드는 순간이 있다. 남미에서는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 아르헨티나의 세상 끝 우수아이아가 그랬고, 아프리카에서는 마다가스카르 바오밥 군락지와 보츠와나의 오카방고 델타가 그랬다. 너무 힘든 고생을 하며 도착한 곳이지만 끝에는 한동안 넋을 놓게 만드는 대자연이 있었다는 점과 같이 오고 싶은 사람이 떠올랐다는 게 이곳에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이 든 이유라면 이유였다.
믿기지 않는 광경을 수도 없이 보다 보니 스스로의 여행 기준도 높아졌다. 이제는 쏟아지는 별을 봐도 멍한 표정과 딱딱한 말투로 예쁘다는 말을 하고 있었고, 교과서에 나올 법한 랜드마크를 찾아가도 사진을 한두 장 남기는 게 전부였다. 6개월간의 아프리카 종단을 마무리할 마지막 여행지로 들어온 이집트도 마찬가지였다. 세계 7대 불가사의인 피라미드를 보고 숙소에 돌아와서 든 생각은 ‘피라미드 그거 진짜 큰데 너무 더웠다.’였다.
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지치니 감정도 지쳤다는 생각. 육로로 가려고 했던 2주간의 중동 여행을 과감하게 지워버리고 배낭여행자의 무덤이라 불리는 다합으로 경로를 틀었다. 멕시코의 카리브해처럼 예쁜 바다가 있는 것도, 그 어떤 지평선 끝까지 펼쳐진 대자연이 있는 것도 아닌 그저 싸게 다이빙을 배우러 가는 곳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다합에 가려고 한 이유는 충분했다. 혼자 하는 여행이 익숙해진 나머지 이제는 혼자 지내는 시간이 더 편하다고 생각했던 내 감정의 속마음은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매일 습관처럼 다녔다. 일기장의 시작에 오늘이라는 단어를 적듯 다이빙을 나갔고 웃고 떠들고 장을 보고 함께 모여 만든 닭칼국수 하나에 다 같이 설레곤 했다. 저녁 시간이 되면 어디선가 나타난 이들이 큰 거실의 빈자리를 당연하듯 하나둘 채웠다.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내일은 뭘 해 먹을지 고민했고 밤늦은 시간엔 우르르 몰려 나가 어색하게 춤을 추며 살사를 배우기도 했다. 영양가 없는 대화를 나누며 깔깔 웃다보면 어느새 새벽이 되었고, 동이 틀 때까지 행복의 기준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다합에 또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적은 이유인 고생 끝에 맞이한 달콤한 열매 같던 풍경과는 사뭇 다른 이유였다. 살아온 환경도 살아가는 방향도 전부 다른, 어느 집단에서는 한 번쯤 특이한 사람이라 불렸을 이들이 모여 보통의 사람이 되는 시간이 좋았다. 여행을 좋아하는 공통점 하나로 비슷한 시기에 다합에서 점으로 만난 사람들. 각자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선한 영향력을 받았고 단순히 점으로 끝날 관계가 아닌 선으로 이어지는 인연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멋진 여행지라도 누구와 함께 가느냐에 따라 최악의 여행으로 기억될 수 있으며, 별 볼일 없는 여행지라도 최고의 여행지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인생도 그렇겠듯 함께 하는 사람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내 여행에 단편집으로 기억될 다합은 값싼 물가나 다이빙도 아닌 사람으로 기억될 것 같다. 다합을 떠나는 지금에서야 다합에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와야겠는 생각과 함께 같이 오고 싶은 사람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