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번째 이야기
에티오피아 동쪽의 한 도시, 하라르는 하이에나로 유명한 곳이다. 저녁이 되면 야생 하이에나가 먹이를 찾아 마을로 내려오는 탓에 한 장소를 지정해 돈을 받고 하이에나에게 먹이를 주는 게 관광 상품이자 문화가 되었다. 살면서 언제 하이에나를 이렇게 가까이 보겠으며 먹이를 줘보겠냐는 생각에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12시간 버스를 타고 하라르에 갔다.
하이에나를 보러 온 곳이지만 마을 구경은 한 번 해봐야 하지 않겠냐며 숙박객이 나밖에 없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조식을 먹고 간단하게 짐을 챙겨 마을로 나왔다.
“박물관이나 찾아가 볼까?”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도시인 만큼 지도를 찾아보니 주변에 박물관이 여럿 보인다. 무작정 걷던 길 한복판에서 가장 가까운 박물관을 찍었다. 그러고 나서 10분쯤 걸었을까, 도착했다는 지도 알람과 동시에 주변을 둘러봤을 땐 보이는 건 저 멀리까지 펼쳐진 로컬 시장과 에티오피아에서 합법 마약이라는 가트를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뿐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제자리걸음을 하고 나서야 바쁘게 발걸음을 움직이는 사람 한 명을 붙잡고 박물관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다.
“박물관? 집 근처니까 내가 데려다줄게.”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몇 없는 하라르에서 꽤나 유창하게 영어를 하는 모습을 보고 박물관으로 향하는 길에 이런저런 것들을 물어봤다. 이름은 압둘, 나와 동갑인 95년생에 가이드가 되기 위해 공부를 하는 중이며 페인트를 누나 집에 가져다주는 길이었다고 한다. 짧은 시간에 참 많이도 물어봤다. 혼자선 그렇게 헤매던 박물관을 지도도 보지 않고 도착했다. 고맙다며 인사를 건네려는데 온 김에 같이 들어가자더니 자기가 배우는 게 이런 거라며 하라르의 역사에 대해 설명을 해주겠다고 한다. 덕분에 하라르가 어떤 곳인지 알게 되었다.
박물관을 나와서 압둘은 특별히 할 게 없으면 자기 친구들이 있는 곳에 같이 가겠냐고 묻는다. 저녁까지 특별히 할 게 없던 탓에 그러자고 했다. 도착한 곳은 무슬림 분위기가 풀풀 풍기는 집이었다. 집에 들어가니 친구가 여럿 있었다. 한 친구는 구석에 누워 가트로 보이는 풀을 열심히 씹고 있었고, 다른 한 친구는 얼핏 보면 흙을 뭉친 듯 보이는 간식을 만들고 있었다. 친구는 이게 뭐냐고 궁금해하는 나에게 열심히 주무르던 뭉텅이 중 하나를 건네주며 먹어보라 한다. 미숫가루에 설탕을 섞은 맛과 비슷했다.
그 외에도 압둘은 자기 누나 집이 제법 멋있다며 여행 중 쉽게 구경하기 어려운 에티오피아 상류층의 집을 구경시켜줬고, 또 따라오라며 데려간 부모님 집에서는 본인의 형제들을 소개해 주며 점심밥을 내어줬다. 특히 다 같이 둘러앉아 밥을 먹을 땐 나도 마치 현지인이 된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밥을 다 먹고 손을 씻고 오니 압둘은 이제 가트를 하러 갈 거라며, 나는 어쩌겠냐고 묻는다. 나는 그건 할 수 없다고 숙소로 돌아가서 쉬다가 저녁에 하이에나를 보러 가겠다고 했다. 압둘은 그러면 각자 할 일을 하다가 저녁 8시에 하이에나가 있는 곳에서 만나자고 한다. 출발하면 전화를 하라며, 번호를 교환하고 나는 숙소로 향했다.
집에 가는 길, 하루 종일 받은 대가 없는 호의에 고마운 마음이 가득한 만큼 이상하게도 의심이 들기 시작한다. ‘왜 이렇게 이유 없이 잘해주지?, 저녁 늦은 시간에도 나와서 같이 가겠다고?, 하루 도시 투어를 시켜주고 하이에나 스팟까지 데려다줬다며 돈을 달라고 하지 않을까?’ 처음 숙소에 도착했을 때 우연히 만난 가이드가 1일 도시 투어에 50달러를 달라고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런저런 생각 속 나는 숙소에 도착했고, 그렇게 또 저녁이 됐다.
저녁 8시가 되기 30분 전, 숙소에서 나와 하이에나 스팟으로 가는 길에 압둘을 만났다. 일부러 전화를 하지 않고 혼자 다녀오려고 했는데, 시간이 되니 집에서 나와 걸어온 모양이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니 하이에나가 있는 지역에 도착했다. 입구에서 돈을 지불해야 하는데 나는 외국인 관광객이니 1,000비르(약 20달러)를 내라고 한다. 내가 알고 있는 입장료는 300비르인데, 왜 이렇게 비싸게 받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은 “세금, 하이에나 먹이가 얼마나 비싼데!” 하며 대뜸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이런 일은 여행하며 한두 번 겪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크게 동요하진 않았다. 나는 내 면전에 소리치는 모습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다 말했냐며, 비싸다고 말한 것뿐인데 왜 그렇게 화가 났냐고 물었다. 그때 압둘이 나서서 그 사람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그러더니 그 사람은 나한테 700비르를 내라고 한다. 가지고 나온 돈이 많지 않았던 나는 지갑을 열어 가진 돈을 확인하는데 수중에 있는 돈은 총 600비르, 지갑을 탈탈 털어 이게 전부인데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보니 그 사람은 지갑 안에 10비르가 끼여 있는 걸 보더니 이거까지 내고 들어가라고 한다.
아무리 내가 관광객이라도 너무 비싸게 받는 게 아니냐며 한탄을 하는데 압둘은 괜찮다며 나를 토닥여준다. 그리고 더 말을 이어가려고 하는 순간 눈앞에 나타난 야생 하이에나 무리를 보고는 자동으로 입이 다물어졌다. 적당히 훈련이 되어 사람들에게 먹이를 주는 모습을 보여주는 하이에나라고 생각했는데 들어와 보니 이건 진짜 야생 하이에나였다. 무리당 약 5마리씩, 사람을 조금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고기를 던져주면 다른 무리와 소리를 내며 서로 다투기도 한다. 입장료가 비싸다는 생각은 어느새 사라지고 앞서 도착한 사람들이 먹이 주는 순서가 끝나 내 차례가 되어 아무렇지 않게 하이에나에 둘러싸인 채 등을 내보이며 먹이를 주는 아저씨 옆에 앉았다. 아저씨는 나무 막대기를 내 입에 물리고 미리 준비한 고기를 올린다. 잠시 뒤 한 마리의 하이에나가 오더니 내 입에 있는 고기를 나와 눈을 마주치며 먹는다. 살면서 이렇게 하이에나를 문자 그대로 코앞에서 볼 줄은 몰랐다. 현장에는 먹는 장면을 찍어주며 돈을 받는 카메라 아저씨가 있었는데 생각해 보니 가진 돈이 하나도 없었다. 자연스레 고개가 압둘에게로 돌아갔다.
압둘은 걱정하지 말라며 주머니에서 100비르를 꺼내서 아저씨에게 건네준다. 아저씨는 사진이 총 5장이라며, 한 장당 20비르를 받는다고 한다. 우리는 그렇게 하이에나 스팟을 떠났는데 시간을 보니 어느새 한 시간이 지나 있었다. 저녁 9시의 아프리카는 정말 어두웠다. 오롯이 핸드폰 불빛에만 의존해서 발걸음을 옮기는데 말하지 않았는데도 자연스레 압둘이 나를 숙소로 데려다주고 있었다. 걸어가는 동안 5분가량의 침묵 속, 나는 숙소에 도착하면 압둘이 얼마를 달라고 할지, 그러면 얼마를 줘야 적당할지 고민에 빠진 채 걷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숙소에 도착했다. “오늘 하루 너무 고마웠어!” 먼저 입을 뗀 건 내 쪽이었다. “나도 재밌었어. 잘 쉬어!” 그 말을 끝으로 돌아가려는 압둘을 나도 모르게 붙잡았다.
“잠깐만, 너…”
아무렇지 않게 돌아가려는 모습을 보고 되레 당황했다. “잠깐만 기다려, 네가 사진값 100비르 내줬잖아. 그거 줄게.” 대답을 듣지 않고 2층에 있는 내 방으로 뛰어 올라갔다. 그러고는 배낭과 가방에 있는 것들을 전부 꺼냈다. 이대로 돌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 대가 없는 호의로 기억에 남는 하루를 만들어 준 만큼 나도 그에게 기억에 남는 뭔가를 주고 싶었다. 그때 널브러진 옷가지들 사이로 한 브랜드로부터 협찬받고 한 번도 쓰지 않은 모자가 보였다. 얼마나 처박혀 있었던지 조금 꾸깃 해진 모습의 모자, 다른 가방에서는 100비르를 마저 꺼내고 서둘러 내려갔다. “자 여기 100비르! 그리고 이거는 내가 너한테 주고 싶은 선물이야.” 적당히 모자 사이즈를 조절하고 그의 머리에 모자를 씌웠다. 모자는 제 주인을 찾은 듯 너무 잘 어울렸다.
우리는 같이 셀카를 찍고는 마주 보고 한참을 웃었다. 마지막으로 악수를 했고 문 앞까지 그를 배웅해 줬다. 다시 방문을 열고 들어와 널브러진 옷가지를 정리하는데 그 사이로 돈뭉치가 보인다. 항상 들고 다니는 작은 가방에 넣고 다니던 돈뭉치, 돈을 달라고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압둘을 만나기 전에 쓸 돈만 빼고 전부 빼놓고 갔던 것이었다. 나는 하나둘 정리하던 것도 멈추고 그 자리에 쪼그려 앉은 채로 생각에 잠겼다. 나름 여행을 꽤 했다고, 이런 류는 내가 겪어봐서 안다고, 이제는 세상을 어느 정도 알았다며 멋대로 사람을 판단한 나 자신이 창피했다. 세상에는 대가 없는 호의도 있다고 말하고 다녔는데, 정작 그런 사람을 만나니 겉과 속이 다르게 행동한 내 모습에 실망하기도 했다. 여전히 우물 안 개구리였다. 세상을 다 알았다고 생각하는 순간은 깊은 우물에서 나오는 순간이 아닌, 더 깊은 심연 속으로 스스로를 몰아넣는 순간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적당히’라는 표현이 가장 어렵지만 그래, 적당히 살아가야겠다. 색안경을 쓴 채 세상을 의심하고 스스로에게 실망하며 살 바에야 적당히 바보로 살아가는 것이 낫겠다. 이래서 내가 바보 같다는 말을 좋아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