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남부 지방이 기후도 좋고, 중산층이 많이 살아 범죄율이 낮다는 내용을 접하고 남부의 큰 도시인 플리머스로 연수지를 결정했다.
심사숙고해서 결정했지만 걱정은 계속 됐다. 유색인종이 적고 백인 위주인 인구구성 때문에 혹시라도 아이들이 인종차별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가장 컸다.
인터넷에는 지나가는 아시아인 차에 돌을 던졌다, 두 눈을 찢고 원숭이 흉내를 내며 놀렸다, 이유없이 무차별 폭행을 했다 등등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많았다. 인종차별은 유색인종이 적은 남부지방에서 더 많다는 경험담을 본 후에 근심은 더해만 갔다.
첫 인종차별은 내가 당했다.
집을 구하러 부동산을 드나들 때다. 마크란 통통한 중년 백인 중개인은 묻는 말에 대꾸를 잘 안했다. 부재중일 때 전화 달라고 메모를 남겨도 전화를 주는 법이 없었다. 처음에는 원래 성격이 이런 사람인가 했다.
접촉할 때마다 퉁명스런 말투와 무시하는 듯한 표정이 반복되자 ‘인종차별’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보다 뒤에 온 손님을 먼저 응대하는 것을 보고는 이런 게 ‘인종차별이구나’하고 확신했다.
억울했지만 집을 구해야 하는 ‘을’의 입장이라 참았다. 계약을 마치고 임시숙소로 와서, 도난보험과 기물 파손에 대한 보험을 들어야 입주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보험약관 같이 작은 글씨로 빼곡이 써 있는 계약서 뒷 장에 써있었다.
난 전화로 마크에게 항의했다. “사전에 설명을 해주는 건 당신의 의무이고, 그 서비스에 대한 댓가로 수수료를 받는 것이다. 내가 느끼기에 당신은 인종차별주의자다”라고. 마크는 자긴 잘못한 것 없다며, 덤덤히 전화를 끊었다.
두 번째 인종차별은 어학원에서 당했다. 당시 클래스에는 학생이 금발의 스페인 백인 여성과 나 둘 뿐이었다. 네 명의 강사가 교대로 들어왔는데 그 중 한 명이 나를 투명인간 취급했다.
두 명이 자리에 앉아 있는데 오직 스페인 학생한테만 질문을 하고, 눈을 마주쳤다. 회화시간에 아예 말을 안 시키니 수업에 참여하는 의미가 없었다.
처음 며칠은 어리둥절해서 왜 그러는 지 상황 파악이 안되었다. 일주일 째 같은 일을 계속 겪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수업 중에 뛰쳐나가서 학원 측에 항의했다.
부원장은 강사를 교체해줬다. 며칠 후 우연히 마주쳤을 때 그 강사가 사과를 했으나, 진정한 마음인지는 알 수 없었다.
영국 생활 초창기에 내가 이렇게 당하고 보니, 학교에서 하루종일 생활해야 하는 큰 아이가 걱정됐다. 큰 아들은 영국 공립초등학교 5학년으로 전학했다. 학교에 인사시키러 데리고 간 첫 날, 선생님이 “나이스 투 미트 유”라고 영국 액센트로 인사하자 바짝 긴장해 대꾸도 못했다. 이 모습을 보고 아이의 학교 생활에 대해 걱정이 앞섰다.
큰 아이 학교에는 유색인종이 거의 없었다. 전교생이 수 백명 되는 꽤 큰 학교였는데, 전 학년 통틀어 아시안은 네 명(그 중 중국인이 셋). 흑인과 인도계 학생도 몇 안 되었다. 우려가 더 커졌다.
영국 학교에 다닌 지 두 달쯤 되었을까. 아들이 말했다. “모르는 아이들이 식당에서 보면 자꾸 칭챙총, 칭챙총이라고 해”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올 게 왔구나’
“칭챙총” 이란 영국인들이 중국 발음을 우스꽝스럽게 흉내내며 아시안을 놀릴 때 쓰는 말이다. “그래서 넌 어떻게 했어?” “난 무슨 말인지 몰라서 그냥 가만히 있었는데 찰리가 보더니 걔들한테 막 화내더라”
찰리는 우리 아들의 단짝 친구다. 장래 희망이 태권도 관장이다. 태권도 수련생이라 태권도 4품인 우리 아들과 금세 친해졌다.
정말 다행이었다. “찰리가 뭐라고 한 다음부터는 칭챙총이라고 하는 애들이 없어”
중학교에 진학해서도 학기 초에 칭챙총을 하는 아이가 있었고, 아들을 북한 출신으로 오해한 어떤 아이는 북한식 경례를 하면서 놀렸다. 초등학교 때와 달리, 놀리는 것인 줄 아는 우리 아들이 태권도 발차기를 날렸고 그 이후부터는 그런 행동을 하는 아이들이 없었다고 한다.
이후에도 사소한 인종차별이 있었다. 커피숍에서 동유럽 출신 점원이, 주문하는 내 영어를 따라하며 비웃었고(실은 그 점원이 영어를 더 못했음), 가끔 길을 가다 큰 소리로 인사하는 이들이 있었다.(인사지만 비하하는 느낌)
그렇지만...
영국 사회의 인종차별은 심하지 않다. 이제까지 기술한 것이 2년간 생활하며 겪은 모든 사례다.
영국은 미국 이상으로 다인종, 다문화가 섞여 있는 국가다. 이들을 융화해 국가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인종차별이란 절대 있어서는 안 될 문화다.
이를 반영하듯 사회 지도층을 선택하는 데에도 순혈주의를 고집하지 않는다.
사디크 칸 런던시장은 파키스탄계다. 보리스 존슨 총리는 터키,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유대인 등 6개 혈통이 섞여있으며, 2016년까지는 미국 국적을 보유한 이중 국적자였다.
영국 학교에서 인종차별은 절대 하지 말아야할 행동으로 철저히 교육하고 있다. 사회적으로도 금기시해야 할 나쁜 행동이란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와 의식이 동유럽과 북한 등 공산국가, 이슬람, 아시안, 아프리카 출신 들이 섞여 사는 영국 사회를 지탱해주는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어느 사회나 이탈자들은 있게 마련이다.
내가 겪은 인종차별의 사례에서처럼...
아들이 다녔던 영국 초등학교의 친구들. 언어가 잘 안통하고 피부색이 다르다고 차별하는 아이들은 거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