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물가가 살인적이라고?

by 백작가

연수할 나라를 영국으로 정한 뒤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물가가 살인적이라는 데 어떻게 감당할래?”였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살인적인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가 답이다.


3월 한 달간 하루 4시간 정도 가스 난방을 한 우리 집의 가스와 전기 요금이 94파운드 나왔다. 우리 돈으로 16만 원 정도(2016년 환율기준) 하는 셈이다. 영국인들은 비싼 공공요금 때문인지 좀처럼 집에 불을 안 켜고 산다. 어둑어둑해지는 초저녁 무렵 거실에 전등을 켠 집은 동네에 우리 집 밖에 없을 정도였다.


심지어 상점들도 낮시간에는 최소한의 조명만으로 버틴다. 처음 영국에 와서는 멀쩡히 영업을 하고 있는 상점들을 쉬는 날로 착각한 경우가 몇 번 있었다. 조명을 안 켠 탓에 상점 실내가 어두컴컴해서였다.

수돗물 값도 우리나라에 비해 엄청나게 비싸다. 우리집 수돗물 값은 한달에 평균 60파운드대였다. 우리돈으로 십만원 정도. 때문에 수돗물 절약도 생활화되어 있다.


캠핑장 내 공동 설거지 터에서도 한국식으로 물을 틀어놓고 썼다가는 눈총을 줄 정도다. 설거지한 물을 재활용해 세차를 하거나 샤워는 주로 헬스클럽에서 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영국인들은 설거지할 때 설거지 통 한 통 정도의 물 밖에는 쓰지 않는다. 그릇에 물을 적힌 후 세재를 묻힌다. 그리고 물로 헹궈 내지 않고 그냥 마른행주나 키친타월로 닦아내면 끝이다. 처음 봤을 때는 충격적이었다. 우리 가족도 따라 해 보려고 했으나, 세재를 먹는다는 찝찝함 때문에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또 한 가지 비싼 건 TV 시청료다. 우리 돈으로 연간 20만 원이 넘는다. 영국인들은 프리미어리그를 시청하기 위해 위성 티브이를 보는 이들이 많다. 이 경우에도 위성TV 수신료외에도 TV 시청료는 내야 한다.


택시비의 경우 영국 전통 택시인 블랙캡은 비싼 편이나, 일반 택시나 요즘 많이 이용하는 우버의 경우 우리나라 택시와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런던의 집세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고 하나 중소도시는 그리 비싸지는 않은 것 같다. 영국은 평수보다는 침실이 몇 개냐는 것으로 집 크기를 구분한다. 나는 침실 3개짜리 이층 집에 살고 있는데 학교가 가깝고 동네가 깨끗해서 인지 평균보다는 월세가 비싼 편이다.


월세 795파운드이니깐 우리 돈으로 130만 원 정도 하는 셈(2016~17년 환율기준). 보증금으로 한 달 치 월세+10% 정도를 내는 것으로 고려한다면 우리나라의 집세에 비해 그리 높은 편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여기에 카운실 텍스란 주민세를 월평균 100파운드 정도 낸다. 우리나라 주민세와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비싼 세금이지만 여기에 쓰레기 수거비, 경찰, 소방, 청소비용 등이 다 포함되어 있다.


싼 것도 있다. 일단, 고기가 싸다. 스테이크용 립아이 소고기는 200그램에 우리 돈으로 5,000원 정도 한다. 돼지고기도 우리나라의 반 정도 가격에 맛은 정말 훌륭하다. 샴푸, 린스, 면도크림, 치약 등 세면용품도 싼 편이다. 보통 하나당 1파운드 정도니 2,000원이 안 되는 셈이다.

런던 근교 그리니치천문대 인근 시장, 맛있는 길거리 음식이 많다

식당 물가는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물론 내가 수도가 아닌 지방도시에 살아서인지는 몰라도 일반적으로 이 곳 영국인 동료들과 점심식사를 하러 식당에 가면 5파운드 내외의 메뉴를 먹는다. 우리 돈으로 8,000원 정도.


우리나라에 비해 많이 저렴한 것은 핸드폰 요금이다. 영국 생활 2년 동안 난 한 달에 6파운드(당시 환율로 1만 원 정도)하는 요금을 사용했다. 데이터가 충분하지는 않지만, 카톡, 내비게이션 등을 위주로 사용하는 데에 부족하지는 않았다.


사교육비의 경우 태권도가 한 시간 수업에 4파운드(8천원), 개인과외는 시간당 25파운드(5만원) 가량 했다. 특이한 것은 사교육비는 매수업마다 1회 수업당 돈을 내는 방식이다.


저녁은 보통 2가지가 나오는 코스 메뉴가 10파운드 선(1만 6000원대). 종합적으로 보면 전체적인 물가는 우리나라가 영국보다 비싸다는 느낌이다. 물론 수도, 전기, 가스, TV 시청료 등 공과금은 제외하고 말이다.


영국의 평균적인 가정은 보통 맞벌이를 한다.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는 이들이 많다. 공공요금과 집세를 포함한 전반적인 물가에 비해서 임금은 낮은 편이다. 그래서인지 영국인들은 평소 쓸데없는 지출을 삼가고, 물건을 고를 때도 가격을 가장 먼저 고려하는 등 매우 절약하는 생활을 한다.

뒷 편에 보이는 파운드월드는 1파운드짜리 제품을 주로 판다. 영국인들에게 인기 상점

이렇게 자린고비 생활을 하는 이들도 돈을 아끼지 않는 곳이 있다. 문화생활이다. 연수중인 연구소 동료 존은 평상시 3~4 파운드짜리 점심만 먹을 정도로 돈을 아낀다. 그런데 갑자기 70파운드나 하는 록 공연을 보러가자고 해서 놀랐다.


플리머스에서 가장 큰 공연장인 로열씨어터에 가족용 공연이 올라가면 표 구하기 전쟁이 벌어진다. 먹고, 입고, 마시는 데는 굉장히 돈을 아끼면서, 가족 단위로 매달 보러가는 공연에는 큰 지출을 마다하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플리머스 로열씨어터 뮤지컬 피터팬 공연장 객석을 메운 관객들. copyright 백작가


물질적 행복보다 문화생활 등 정신적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영국인의 소비습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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