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입국 전 우리나라 사람들한테서나, 영국 생활 중 영국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많이 들은 얘기중 하나가 바로 영국 음식에 대한 것이다. 다들 영국 음식은 맛이 없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근사한 레스토랑에 어울릴만한 영국 음식하면? 사실 떠오를 만한 게 별로 없다.
영국을 대표(?)한다고 까지 하긴 좀 뭣하지만, 영국하면 연상되는 음식들은 모두 서민 음식이다. 피쉬앤칩스, 잉글리쉬 블랙퍼스트 정도다. 그 외에 현지에서는 자켓포테이토란 것도 많이 먹는다. 모두 우리 돈 1만원 안팎이다.
내 기준으로는 하나같이 별 요리솜씨가 필요없어 보이는 것들이다.
피쉬앤칩스는 대구를 통째로 튀겨서, 감자튀김을 곁들여 먹는 것. 가정에서는 주로 금요일 저녁에 피쉬앤칩스를 사다가 먹는다. 금요일 저녁 동네 피쉬앤칩스 집에는 항상 포장 손님들이 바글바글하다.
직장인들이 평상시 외식할 때, 가족끼리 나들이 갔을 때 등 피쉬앤칩스를 자주 먹는다. 그만큼 어디서나 피쉬앤칩스 집을 찾기 쉽다. 아마 영국인들에게 가장 보편화되고 자주 먹는 음식일 것이다.
피쉬앤칩스 copyright 백작가잉글리쉬 블랙퍼스트는 반숙 계란후라이, (우리나라에서는 부대찌개에 넣어 먹는) 베이크드 빈(통조림 콩), 구운 식빵, 소세지, 베이컨, 구운 토마토, 해쉬브라운 등을 커피나 차와 먹는 것이다.
잉글리쉬 블랙퍼스트. copyright 백상현순대와 비슷하게 생긴 하기스를 곁들여 먹기도 한다. 스코틀랜드 음식으로 돼지피로 만든 소세지의 일종이다. 나처럼 비위가 센 사람도 처음에는 냄새 때문에 덥썩 먹기가 조금 망설여진다.
블랙퍼스트라고 꼭 아침식사를 일컫는 건 아니다. 나는 목요일 점심은 별 일 없으면 연수하고 있는 연구소 동료들과 먹었다.
이 때 주로 잉글리쉬 블랙퍼스트를 먹었다. 꼭 아침에 먹는 식사가 아니고, 이 음식 자체를 잉글리쉬 블랙퍼스트라고 부른다는 걸 그 때 알았다. 솔직히 우리나라 사람이 아침에 먹기에는 기름지고, 양이 많은 편이다.
자켓포테이토는 구운 통감자를 세로 방향으로 반을 가르고, 그 안에 버터를 듬뿍 넣어서 먹는 음식이다. 위 두 음식보다는 저렴하다.
또 한가지, 선데이 로스트 라는 게 있다. 구운 소고기를 얇게 썰어서 구운 야채와 요크셔푸딩 등과 함께 먹는 것. 영국 가정에서는 일요일 오후에 주로 먹었다. 요즘엔 동네 펍에서도 특정 요일에 판매하는 곳이 있다.
피쉬앤칩스, 잉글리쉬 블랙퍼스트, 자켓포테이토 모두 튀기거나, 굽거나 프라이팬으로 데우는 것이다. 솔직히 ‘이게 무슨 요리야?’란 생각이 들었다.
내 생각은 틀렸다는 걸 이 음식들을 먹을수록 실감했다. 별 솜씨가 필요 없을 거 같은 이 음식들도 여기 저기 식당에서 먹어보니, 맛이 천차만별이었다.
재료의 신선함과 튀기는 방식, 기름의 종류와 신선도 등에 따라 맛에 큰 차이가 났다. 이 음식들도 맛 집이라고 소문난 곳에는 대기줄이 엄청 길었다.
그렇다면, 결혼 기념일이나 의미있는 날 외식으로 영국인들은 무엇을 먹을까? 당연히 피쉬앤칩스는 아니다.
영국도 ‘멜팅 팟(melting pot)’이다. 미국만큼이나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어울려 산다. 다양한 나라 식당이 많다. 영국인들도 외국 음식에 익숙하다.
보통 기념일날 외식으로는 중국 식당, 이탈리안 레스토랑, 스시 레스토랑, 씨푸드 레스토랑, 프렌치 레스토랑 등을 많이 간다. 런던에는 한국 식당도 있지만 아직 영국인들에게 대중화되어 있을 정도는 아니다.
가족 외식을 펍에서 많이 한다. 펍은 술도 팔지만, 간단한 식사 종류도 함께 팔기 때문이다. 보통은 어린이들과 함께 식사하는 구역은 펍내에서 술 마시는 구역과 구분을 해놓는다.
개인이 운영하는 동네 펍은 음식을 안 팔거나 몇가지 없지만, 대형화된 프랜차이즈 펍에서는 피쉬앤칩스, 잉글리쉬 블랙퍼스트 뿐 아니라 햄버거, 비프스테이크, 생선까스, 소세지 구이, 스파게티, 스테이크 등 다양한 음식을 판다.
그렇다면 영국 음식 수준은 매우 낮은 편일까?
절대로 아니다. 고든 람지, 제이미 올리버, 릭 스타인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셰프 중 영국 출신이 많다. 이들은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 등 세계 각국 요리에 정통하다.
특히 런던은 세계로부터 오는 유럽 여행자들의 허브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수준 높은 레스토랑을 자랑한다. 버거 앤 랍스타, 플랫 아이언 스테이크 등 한국 여행객들이 성지처럼 방문하는 맛 집도 여럿 있다.
한국 여행객들에게 인기가 많은 버거 앤 랍스타 copyright 백작가
영국은 오히려 중국집, 이탈리아 식당, 스시집, 인도식당 등 가성비 좋게 세계 각국 음식을 즐길 수 있는 나라다. 나도 영국 생활 중 세계 각국 음식을 경험했다. 그래도 난 그중에서 영국 전통 음식이 제일 그립다.
일주일에 몇 번이고 먹을 때는 몰랐으나, 요즘엔 영국에서 먹던 피쉬앤칩스가 가끔 생각난다. 바삭한 튀김 옷을 입은 새하얀 대구살과 고소한 감자튀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