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날씨야! 영국 날씨로부터 배운 삶의 교훈

by 백작가

영국으로 연수를 가기로 결정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해준 말이 바로 날씨와 물가에 대한 것이다. 먼저 날씨에 관한 얘기다. 난 사실, “날씨가 나빠 봤자지 뭐, 비 좀 오면 어때?”라고 생각했다. 우리나라에서 날씨에 관해 관심을 가져 본 적이라고는 군대 때 눈 오면 제설작업 때문에 걱정했던 것이랑, 등산 약속이 있던 날 아침 정도였다.


따라서 주변 분들의 반응에 별 신경을 안 쓰고 영국에 왔다. 2월 말에 입국해서 보니 날씨가 너무 화창하고 좋았다. 선글라스 없으면 외출을 못할 정도로 화창한 날이 많았다. 그러나 ‘날씨, 좋기만 하네’란 내 생각은 채 며칠이 가지 않았다.


중고차를 사서 처음 외출을 했다. 아침부터 화창한 햇살이 너무 좋아 일단 바닷가로 차를 몰았다. 바닷가 공원에 도착하기 까진 좋았다. 내려서 한 5분을 걸었을까? 후두득 비가 내렸다.


바람도 세차게 불어서 걷기가 힘들 정도였다. ‘에이, 집에 가자’라며 주차장으로 가니 언제 그랬냐는 듯 햇볕이 화창해지는 것이다. 바람도 잠잠해지고. 다시 공원으로 나갔다. 살랑살랑 봄바람이 부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세찬 비가 내렸다.


주차장으로 뛰어갔다. 집으로 차를 몰고 돌아가는데 보닛에 “우두둑” 소리가 나는 것이다. 우박이었다. 난생처음 보는 크기의 우박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옥상에서 누가 돌멩이를 내 차에 던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조심조심 운전해서 집 앞에 차를 대니 어느새 그랬냐는 듯 또다시 해가 “쨍”하고 떴다. 마치 하늘이 나를 놀리는 것 같았다.


영국인들에겐 이런 일이 흔해서 별 신기한 경험도 아닌 듯했다. 영국인들이 비가 와도 우산을 잘 안 쓰는 것은 내가 보기에는 안 쓰는 것도 있지만 못 쓰는 이유도 있다. 영국의 비는 바람을 동반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우산을 써도 쓰나 마나이기 때문에 못 쓰는 것이다. 안 쓰는 이유는 영국은 비가 계속해서 장시간 내리는 경우는 드물다. 휙 지나가 듯 내린다.


세차게 계속 내리기보다는 “후두득”하고 큰 물방울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조금만 기다리면 비가 지나갈 것이기 때문에 굳이 우산을 안 가지고 다니는 것이다. 대신 모자 달린 방수 옷을 입는 이들이 많다. 잠깐 지나가는 비를 피하기 위해서다.


한국에서 영어 공부할 때 처음 만난 영국인들과 가장 적절한 대화 소재는 ‘날씨’라고 배웠다. 그 당시 강사는 현지인과 대화할 때 자칫하면 프라이버시를 건드릴 수 있다고 했다. "내성적이고 보수적인 영국인들에게 실례가 될 수 있으니 가벼운 소재로 날씨를 꺼내라"라고 했다.


직접 살아보니 그게 아니었다. 실제로 날씨가 워낙 변덕이 심하고 예측 불가능하기 때문에 영국인들은 날씨에 관심이 굉장히 많다.


TV 프로그램에서도 일기예보를 아주 자세히 해준다. 가령, “아침은 화창하고 좋은 날씨로 시작해서 오전 몇 시경에는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해 몇 시부터 어떻게 변하고…..” 뭐 이런 식으로 상세히 설명한다. 대부분의 영국인들은 일기 예보를 꼭 챙겨보는 편이고, 잘 아는 사람끼리도 만나면 날씨를 화제로 대화를 나누는 경우가 흔하다.


날씨가 이러다보니 한 장소에서 소매없는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은 사람과 털 달린 오리털 파카를 입은 사람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날씨가 워낙 변덕스럽다 보니 복장이 제각각인 것이다. 영국의 주부들은 해가 조금만 나도 정원에 빨래를 넌다. 집안에도 습기가 많아서 실내에서는 잘 마르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텀블러라고 하는 빨래 건조기를 쓰지만 햇볕에 비할 바가 아니다.


우리도 이 곳에 산 지 얼마 되지 않아 햇볕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달았다. 구름이 걷히는 조짐만 보이면 빨래를 정원에 내다 말렸고, 별 일 없어도 해가 나면 좋은 날씨를 즐기러 외출을 했다. 앞에 밝혔듯 한국에 살 때는 날씨에 관한 말을 거의 하지 않았던 나도 하루에도 몇 번씩 날씨에 대한 얘기를 하며 살았다. 해만 뜨면 “와 날씨 정말 좋다”라고 감탄하곤 했다. 오락가락 비가 내리면 “오늘 날씨 왜 이래?”라고 푸념을 떨기도 했다.


영국 역사에서 날씨는 항상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해왔다. 대륙에서 건너온 앵글로족과 색슨족이 켈트족을 날씨가 안 좋은 북쪽과 남쪽으로 몰아냈다. 영국 날씨가 안 좋다는 이유로 프랑스 땅을 영국의 영토로 영구히 만들려는 시도도 했다.


영국인들은 외국인들에게 “영국 날씨 어떠냐?”고 반드시 물어본다. 또한, “영국의 날씨가 세계에서 가장 안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오히려 이런 날씨 때문에 영국에 와서 소중한 삶의 자세를 하나 배웠다. 한 줌 햇볕과 뽀송뽀송 잘 마른 빨래도 고마워하고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화창한 햇살이 비치는 영국의 하늘은 정말 아름답다. 화창한 어느날 퇴근을 하다가 하늘에 걸린 구름을 보고 마치 3D 영화 스크린의 입체영상처럼 느껴진 적이 있었다. 이처럼 비가 안 오거나 흐리지 않은 영국의 하늘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낸다.


따사로운 햇살이 비치는 가운데 잔디 깎기 기계로 정원 손질하던 주말 늦은 오후와 바람 한 점 없이 화창하고 건조한 날씨에 영국 집 정원에서 가족과 함께 먹던 바베큐가 그립다.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에 금방이라도 나를 덮칠 것 같이 입체적인 새하얀 뭉게구름을 배경으로 말이다.

화창한 날의 영국 동네 풍경(플리머스), 다만 일년 중 이런 날이 많지 않다는 게 함정이다. ⓒ 백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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