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연수를 위해 영국에 들어왔을 때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부분이 바로 집을 구하는 문제였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업무 가운데 여기저기 출국 인사를 하러 다니느라 사실상 출국 전에 준비를 거의 못한 상황이었다. 비행기 타기 하루 전날까지 짐 싸느라 밤을 새웠으니 출국 전 집을 구한다는 것은 언감생심.
rightmove, zoopla 등 영국 부동산 정보 사이트를 통해 살고 싶은 집을 알아보았다. 몇 개 부동산에 렌트를 하고 싶다는 메일을 보냈으나 대부분 답이 없었다.
광고성 스팸메일만 날아올 뿐이었다. 걱정이 되어 출국 2주일 전쯤 현지에 거주 중인 한국인 지인께 rightmove, zoopla 등에서 찾은 렌트하고 싶은 집을 골라 메일로 보냈다.
우리 가족이 입국하기 전에 부동산과 접촉을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이 분이 세 군데 정도 연락해 보았으나 모두 세입자가 직접 오라는 답변을 받았다. 결국 하는 수 없이 영국 현지에 도착한 후 8일가량 호텔 생활을 하면서 집을 알아봐야 했다.
호텔 생활이 길어지면서 하루 20만 원가량하는 비싼 숙박비도 문제지만, 가족들이 호텔 생활을 힘들어했다. 하루빨리 집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와 다른 시스템 때문에 힘들었다.
일단, 이 곳에서 집을 구하려면 부동산에서 세입자의 신용상태, 직업 등을 철저히 조회한다. 이렇게 하는데 시간이 길게는 2주일가량 소요된다. 대신 우리로 치면 보증금이 적다.
한 달 월세에 10% 정도 더한 돈을 보증금으로 낸다. 때문에 입국 전 미리 집을 구하고 가기가 사실상 어려웠던 것이다. 신용조회를 하려면 재직증명서, 통장 개설 증빙 등 서류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했다고 바로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니다.
집주인이 세입자의 정보를 살펴본 후 허락을 해야 입주가 가능하다. 아이가 있는 세입자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주택수당을 받는 저소득자를 꺼리는 이도 있다.
흡연자, 동물 키우는 세입자를 거절하는 집주인 등 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에 인기 지역의 경우 동시에 지원한 여러 세입자 중 집주인의 낙점을 받아야 입주를 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거친 후 인벤토리 체크라는 걸 한다. 전문회사에서 현재 집 상태(벽의 얼룩, 정원 상태, 문의 작동상태 등)를 꼼꼼히 체크한 뒤 이를 세입자도 확인해 입주 전 집 상태를 기록해두는 것이다.
향후 이 집을 나갈 때 입주 전 인벤토리 체크에서 상태가 변한 게 있으면 세입자의 보증금에서 공제하는 시스템이다. 이런 과정들을 초고속으로 처리한 후 8일 만에 월세 집에 입주할 수 있었다.(이건 거의 기적에 가까운 속도다)
부동산 사이트를 검색하다 보니 디태치트 하우스, 세미-디태치트 하우스, 테라스트 하우스, 플랏, 방갈로, 코티지 등의 생소한 용어가 나와서 처음에는 당황했다.
이것은 영국의 주거형태를 말하는 것으로 디태치트는 독립가옥, 세미 디태치트는 (외부에서는 한 집처럼 보이나) 두 세대가 하나의 벽으로 나뉘어 있는 집, 테라스트는 양쪽 옆 모두 다른 집과 벽을 맞대고 있는 집, 플랏은 저층 아파트로 한 건물에 여러 세대가 사는 다세대 주택쯤으로 보면 된다. 방갈로는 1층짜리 집을 얘기하는 것이다.
영국은 보통 2층 양옥에 건물 뒤로 정원이 딸린 집이 전형적인 주거형태다. 따라서 1층짜리 집은 따로 방갈로라고 표시를 해주는 것이다. 코티지는 오래된 옛날 전통가옥을 주로 얘기하는 것으로 큰 돌로 건축한 것이 대부분이다.
영국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주거형태는 테 라스트 하우스(좌우 양쪽 벽으로 이웃세대와 나뉜 집)와 세미 디태치트다. 로마시대 온천 유적지로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바쓰에서 인기 있는 관광지이자 영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는 로열 크레센트가 바로 대표적인 대규모 테라스트 하우스다.
영국 바쓰의 로열 크레센트. ⓒ 백작가
양쪽 옆, 혹은 바로 옆 벽을 이웃과 공유하고 살다 보니 아무래도 소음이 있을 수 있다. 정원도 벽으로 나뉘어 있다. 햇볕이 귀한 영국에서 정원 생활을 할 때 프라이버시를 침해받을 수도 있다.
세미 디태치트 하우스. 두 세대가 벽을 맞대고 사는 구조이며, 뒤 편으로 정원이 있다. ⓒ 백작가 그러다 보니 이 곳에서는 가능한 한 옆 집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최대한 조심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우리 집도 세미 디태치트지만 옆 집 소음을 전혀 못 느낄 정도였으니 말이다.
옆 집 이웃들과 동네에서 만날라치면 굉장히 반갑게 인사를 하며 안부를 묻고 한다. 내가 우리와 벽을 공유하고 있는 옆 집 할머니께 “두 살짜리 우리 딸이 자주 울어서 시끄러우시죠? 죄송합니다”라고 했더니 “어휴, 그런 소리 말어. 우리 영감은 귀머거리야, 걱정 마”라고 말한다.
실제로 이곳에서는 이웃들에게 꽤 세심한 신경을 쓴다. 이웃과 벽을 맞대고 사는 집 구조 덕분에 이웃을 배려하고 신경 쓰는 생활태도가 생긴 게 아닌가 싶다. 층간 소음 때문에 이웃 간 분쟁이 많은 우리나라가 생각나서 좀 씁쓸했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영국인들의 일반적인 주거형태는 이웃과 벽을 맞대고 있는 정원 딸린 이층 집이다. 일층은 거실과 부엌 등이 있고, 이층에 침실이 있다.
거실을 리셉션룸이라고 하는 데 손님을 맞는 방이란 뜻쯤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낮 생활과 밤 생활, 타인에게 공개하는 생활공간과 공개하지 않은 사생활 공간을 일, 이층으로 나눠놓은 주택구조다.
재미있게도 보통 화장실이 2층에 있다( 신축은1층에 화장실을 만들기도 함). 때문에 외출했다 돌아오면 손을 씻는 게 습관인 우리나라 사람들이 처음 영국 주택에 살아보면 이 점이 조금 불편하다. 보통은 현관 벽에 옷걸이가 걸려있다.
영국인들은 자신의 집에 들어갈 때나 남의 집을 방문할 때, 심지어 식당에서도 현관 옷걸이에 외투를 걸어놓고 들어간다. 이것을 예절이라고 생각한다. 비가 자주 와서 겉옷에 물기가 많은 경우가 자주 있기 때문에 실내에는 외투를 벗어놓고 들어가는 게 예의로 굳어진 것 같다.
난방은 라이디에터로 한다. 영국 부동산 사이트를 보면 ‘50년 된 새 집’이란 광고를 가끔 볼 수 있다. 여기서는 수십 년 된 집을 흔히 볼 수 있다. 우리 집도 백 년 전에 지어진 집이다.
단열도 잘 안 되는 이런 집을 라디에이터로 난방을 하니 추울 수밖에. 슈퍼에 가면 큼지막한 고무주머니를 판다. 집안이 추워서 여기에 뜨거운 물을 넣고 끌어안고 자는 것이다.
영국인들의 가정생활 중 가장 중요한 곳은 정원인 것 같다. 소나무가 멋들어지게 있는 저택의 큰 정원이 꼭 아니더라도 정원은 웬만한 집에 다 있다. 손바닥 만한 소박한 공간이라도 말이다. 대형 마트에 가도 가드닝 용품 파는 매대가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마련되어 있다.
TV나 전단지 광고도 정원 가구, 잔디깎이 기계 등 손질 도구 등에 관한 것이 가장 많다. 햇볕이 귀한 이 나라에서는 맑은 날에는 정원에 앉아 여유롭게 햇볕을 즐기기도 하고, 주말에는 바비큐를 해먹기도 한다. 귀한 해가 나면 빨래를 말리는 중요한 곳이기도 하다. 사생활이 보호되도록 집 건물 뒷 편에 주로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꽃이나 나무를 심어 나만의 정원을 가꾸면서 인생의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정원 손질이 힘든 노인들이나 정원손질이 싫은 사람들은 잔디를 벗기고 자갈이나 돌, 나무로 바닥을 덮어 파티오를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도 영국인들에게 '정원 가꾸기'는 인생의 소박한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중요한 주거공간임이 분명하다.
우리 집에도 조그만 뒷뜰이 있다. 이 곳에는 큰 동백꽃 나무가 있다. 햇볕이 화창한 날 오후, 차 한잔 하면서 마치 열매처럼 주렁주렁 달린 진홍색 동백꽃 나무를 바라보고 있으면 ‘참 좋다!’란 생각이 든다.
나만 볼 수 있는 예쁜 꽃과 함께 한국에서는 못 느껴봤던 종류의 행복을 맛 볼 수 있었다.
우리집 정원의 동백꽃들은 잘 있을까.
문득 그립다
영국 집 정원에 피어있던 동백 꽃. 한가로운 오후 차를 마시며 이 꽃을 보고 있으면 행복감이 밀려온다. ⓒ 백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