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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우주엘리베이터의 역사



  치올코프스키의 에펠탑

치올코프스키

1895년 치올코프스키(Konstantin Tsiolkovsky)가 프랑스 파리에 처음 방문했을 때는 해가 져 어두워진 늦은 저녁이었다. 당시 에펠탑은 지어진지 6년이 채 되지 않은 ‘신축’이었다. 그것 때문인지 파리는 도시 전체에 생기가 넘쳤으며 치올코프스키 역시 내일 방문할 에펠탑에 대한 기대로 가득차있었다. 제정 러시아 태생이었던 그는 우울하지만 지적으로 풍부한 가정에서 자라났다. 그는 수학을 좋아했고 상상하는 것을 즐겼다. 나중에 청각장애를 갖게 되었을 때 상상하는 취미는 그에게 새로운 세계를 안겨주었다. 16살 때는 원심력을 이용한 우주선을 고안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수학 교사로 근무하며 자신이 가진 상상력을 정교하게 구체화시켜 다단계 액체 연료 로켓으로 지구 밖으로 여행하는 방법에 관해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때가 1903년, 라이트 형제가 세계 최초로 조잡한 비행기 ‘플라이트 1호’를 만들어 고작 12초동안 비행에 성공했을 때이다. 인류가 제대로 된 비행기도 만들지 못할 시절 치올코프스키는 우주여행에 대한 이론을 정립했고, 현재도 큰 틀에서는 이 이론은 유효하다.

치올코프스키의 스케치

다음날 그는 숙소에서 일어나 파리의 전경을 감상하다가 파리의 고풍스런 건물 위로 불쑥 솟아오른 에펠탑을 마주한다. 심장이 두근대던 그는 서둘러 에펠탑에 도착해 가까이서 철골의 두께와 그 건축 구조에 대해 관찰하고 강한 인상을 받는다. 지금도 비슷하지만 1889년 에펠탑의 완공 당시 파리의 건물들의 높이는 30m를 넘지 못했는데 300m가 넘는 철골 구조물은 단숨에 파리의 경관을 바꿔놓기에 충분했다. 돌아가는 기차안에서 치올코프스키는 또 다른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인간은 얼마나 높은 구조물을 만들 수 있을까? 만약 기술이 발전하면 우주까지 솟은 높은 탑을 만들어 우주를 여행할 수 있지 않을까? 저 높은 에펠탑을 보니 못할 것도 없지 않은가? 그는 처음으로 우주를 여행하는 색다른 방법을 생각해낸 것이다. 36,000km 높이의 ‘치올코프스키 타워’, 그 탑의 꼭대기는 정지궤도로 중력 효과가 사라지는 곳이다. 이곳까지 탑을 만들어 우주로 나가는 정류장을 만든다. 이곳에서 지구의 자전으로 인한 속력과 로켓의 속력을 더하면 우주로 나아가는데 많은 연료가 절약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곳까지 오르기 위해 아주 빠른 기차 같은 엘리베이터를 만들어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이렇게 우주엘리베이터의 역사는 기차 한 칸에서 끄적인 종이 한 장에서 시작되었다.

치올코프스키는 로켓의 이론을 연구하고 우주엘리베이터의 아이디어를 창시한 최초의 연구자로서 우리가 우주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 아래와 같은 명언을 남겼다.

‘지구는 인류 문명의 요람이다. 그러나 누구도 요람에서 평생을 살 수 없다.’

세계 최초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는 1957년 발사되었는데,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유리 아르츠타노프의 케이블

아르츠타노프의 연설 2010년

“지구 중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견디기 힘든 높은 가속도를 내고, 막대한 연료를 소비하며, 폭발의 위험까지 안고 떠나야 할까요?”

러시아의 엔지니어 유리 아르츠타노프(Yuri Artutanov)는 마치 영업사원이 자신의 제품을 고객에 판매할 때처럼 먼저 기존 제품의 불편함을 구구절절히 부각시켰다. 그런 후 자신이 생각한 신제품 우주엘리베이터의 원리에 대해 비유를 통해 그럴싸하게 설명했다. 마치 상품 설명에 도가 튼 쇼호스트처럼 말이다.

“여기 작은 실을 돌에 붙이세요. 그리고 실을 잡고 돌을 회전시킵니다.

원심력의 영향으로 실이 팽팽해집니다.

이 실을 지구의 적도에 고정하고 우주로 멀리 던져보세요.

제가 계산해보니 실이 충분히 길면 지구가 돌을 잡아당기는 힘과 돌의 원심력이 같아지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곳까지 우리는 이 줄을 타고 우주로 가면 됩니다.

어때요? 멋지지 않습니까?”

이쯤에서 아르츠타노프는 고객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상상했을지도 모르겠다. 회사의 신제품 개발 프리젠테이션 같은 이 글은 안타깝게도 논문의 형식이 아닌 ‘프라우다(Pravda)’라는 신문에 실렸다. 그는 자신만의 놀라운 우주엘리베이터 아이디어를 기술 논문으로 출판하지 않고 러시아어로 된 신문, 그것도 부록에 실어 1960년에 발표하였다. 게다가 제목을 잘 짓는 재주도 없었다. 제목은 역사적인 발견치고는 너무나도 평범한 ‘전기 기차를 타고 우주로(В Космос на электричке(To the Cosmos by electric train ))’였다. 이 글은 1980년이 되어서야 빛을 보게 된다.

아르츠타노프의 첫 기고

그의 우주엘리베이터 아이디어는 정지궤도 상에 온실과 관측소, 위성도시, 태양열 발전소 등을 갖추었다. 이 아이디어는 물리 이론과 실현 가능성을 검증하여 섬세하게 설계된 것이다. 지구와 연결한 케이블은 자체 무게를 고려해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가늘어지고 지구에서 케이블을 잡고 있는 구조물의 그림은 이해하기 쉽게 간단한 삽화로 그려두기까지 했다. 그는 인공위성을 이용해 케이블을 양 방향으로 늘어뜨려 균형을 잡는 초기 건설과정도 제시하였는데 이 방법은 현대 여러 과학자들이 제시한 방법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아르츠타노프의 선견지명은 이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지구와 달을 연결하는 우주엘리베이터를 만들 아이디어도 제시한다. 전기 기차를 타고 우주로 간다는 흔하디 흔한 제목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너무나도 많은 내용들이 담겨있던 것이다.  




제롬 피어슨의 우주엘리베이터


치올코프스키의 타워는 스페인의 ‘인간탑 쌓기’나 바벨탑처럼 지표면에서 우주로 건축구조물을 올리는 방식이다. 이것은 높이 올라갈수록 건물의 토대가 받는 하중이 급격하게 증가해 수만 킬로미터 높이까지 올리기에는 한계점이 분명하다. 반면 아르츠타노프의 케이블을 이용한 엘리베이터는 ‘해와 달이된 오누이’동화처럼 하늘에서 아래로 케이블을 내려뜨리는 방식으로 건설되기 때문에 몇 가지 문제점만 해결되면 가능성이 조금은 더 커보인다. 

1966년 스크립스 해양학 연구소의 존 아이작스(John Isaacs)는 아르츠타노프의 아이디어가 적힌 신문의 부록을 보지 못한 것 같다. 그는 아주 가는 케이블을 이용한 우주엘리베이터 아이디어를 처음 ‘발견’했다고 발표한다. 하지만 아르츠타노프의 구체적인 계획에 비해서는 턱없이 모자라 실현 가능성에서는 회의적이었다. 이후 여러 과학자들이 비슷한 아이디어를 확장해 발전시켰다. 그중 가장 독보적인 사람은 제롬 피어슨(Jerome Pearson)이다.

피어슨은 우주엘리베이터 연구로 가장 잘 알려진 미국 엔지니어이자 우주 과학자이다. 그는 1975년 ‘Acta Astronautica’라는 학술지에 자신의 우주엘리베이터 아이디어를 게재해 이 분야 권위자가 되었다. 피어슨의 아이디어는 상당부분 아르츠타노프의 그것과 유사했다. 피어슨은 아르츠타노프의 신문을 본적이 없었음에도 독자적으로 비슷한 구조의 우주엘리베이터에 관해 서술하였다. 여러모로 둘의 아이디어가 최적의 방법임에는 틀림이 없는 셈이다. 아르츠타노프가 정지궤도에서 로켓을 발사시키는 아이디어를 낸 반면 피어슨은 우주엘리베이터의 가장 높은 지점에서 로켓을 출발시키는 생각을 했다. 수만 km에서 로켓을 살짝 출발 시키면 로켓의 추진력이 없어도 원심력만으로 다른 행성의 탐사가 가능한 속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위성을 효율적으로 발사하는 시스템인 ‘스카이후크(skyhook)’ 아이디어와 비슷한 맥락으로 미래 우주탐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는 탄소나노튜브가 만들어지기 20년 전부터 우주엘리베이터 건축물의 재료로 흑연의 결정체를 제안하기도 했다. 많은 부분에서 선견지명이 있었던 셈이다.  

피어슨의 우주엘리베이터는 공학자인 그의 생각이 잘 반영되어 있다. 엘리베이터를 올리는 메커니즘을 구현하거나 정지궤도 대신 중력의 평형점인 라그랑주 포인트를 사용하여 우주엘리베이터 개념을 달까지 확장시키는 것을 고안하기도 했다. 그리고 달에 쌓여있는 희귀 광물을 지구로 가져올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논의했다.

피어슨이 국제적인 우주엘리베이터 권위자가 되어 이곳 저곳에 논문을 발표하고 학술 저널에도 기고하자 자신이 원조라고 생각하는 아르츠타노프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피어슨이 1979년 3월, 달 우주엘리베이터에 대해 한 저널에 발표하자, 바로 2달만에 아르츠타노프도 이에 뒤질세라 비슷한 내용의 논문을 발표하기도 한다. 경쟁을 시작한 것이다. 이후 피어슨은 아르츠타노프가 균형 질량추로 비유한 돌맹이를 토성과 목성 사이에 있는 소행성을 끌어와 고정시키는 SF같은 방법을 구상한다. 이 방법은 전동기가 달린 로프를 만들어 소행성을 포획하고 소행성에 있는 광물을 지구 궤도로 옮긴 후 나머지는 끌어와 질량추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아르츠타노프도 가만히 있지 않고 소행성을 질량추로 사용하는 비슷한 아이디어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 둘이 치열하게 경쟁만 한 것은 아니었다. 피어슨은 한 학회에서 자신보다 먼저 우주엘리베이터의 아이디어를 낸 아르츠타노프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다. 

“그는 우주 엘리베이터를 실용적인 공학적 업적으로 생각한 최초의 사람이었고, 질량을 최소화하고 건설을 실현 가능하게 만드는 데 필요한 아이디어를 제공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우리가 빚진 것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일원이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이 둘은 2006년 8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역사적인 만남을 이루었다. 두 과학자는 첫 만남에서도 여전히 우주엘리베이터에 대한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나누었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피어슨은 2010년 우주엘리베이터 학회에 아르츠타노프를 초청했다. 아르츠타노프는 4년 뒤 워싱턴주 레드먼드에서 열린 우주엘리베이터 회의에서 피어슨과 두 번째 만남을 갖는다. 피어슨은 아르츠타노프를 맞이하기 위해 시애틀 국제공항에 마중을 나갈 정도로 두 사람은 친해져 있었다. 두 과학자는 서로를 존중하며 이후에도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나갔다. 

그리고 아르츠타노프는 2019년 1월, 피어슨은 2021년 1월 나란히 세상을 떠났다.

아르츠타노프와 피어슨 2006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아서 클라크의 낙원의 샘

아서 클라크

우주 덕후들에게 우주엘리베이터는 우주를 여행할 미래의 대안으로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지만 일반 대중들은 여전히 관심 밖이었다. 우주엘리베이터에 관심 있는 많은 사람들 조차도 그 실현 가능성을 매우 낮게 평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SF 소설가들은 이 좋은 소재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SF의 거장 아서 클라크 경(Sir Arthur Charles Clarke)은 과학적으로 엄밀하게 검증된 글을 쓴다. 이름 앞에 경(Sir)이 붙는 사람들은 영국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에게 수여하는 기사작위를 받은 사람들로 ‘Sir’는 이들의 존칭이다. 그는 물리학과 지리학 학술서를 집필할 정도로 해박한 지식을 소유했고 과학적 상상력을 더해 미래에 대한 다양한 예측을 하는 미래학자로 몇몇 중요한 성과를 남기기도 했다. 그 중 하나는 지구상의 특정 궤도에 지구 자전 속도와 같은 속도로 인공위성을 올려두면 지상에서 관찰할 때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일거라는 아이디어이다. 이는 십여년 뒤 정지궤도 인공위성으로 실현되었다. 이 궤도를 ‘클라크 궤도(Clarke Orbit)’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2000년 유럽통신위성단(EUTELSAT)은 한 통신위성의 이름을 ‘아서 클라크호’로 명명하기도 했다. 이런 그가 우주엘리베이터를 그냥 넘겼을리 없다. 

어찌보면 우주엘리베이터를 대중화한 가장 큰 공은 아서 클라크가 가져가야 할 것 같다. 세계적인 SF거장이 우주엘리베이터를 다룬 소설을 기꺼이 써 주었으니 돈 한푼 안들이고 제대로 홍보를 한 셈이다. 아서 클라크의 책 ‘낙원의 샘(The Fountains of Paradise (1979))’은 우주엘리베이터를 건설하는 과정이 소설의 주된 이야기이다. 물론 건설 과정만 다루지는 않는다. 고대 인도의 왕 칼리다사가 하늘까지 닿을 탑을 지으려다 반란으로 실패하는데 바로 그곳이 공교롭게도 현대 우주엘리베이터를 건설할 적합지라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고대 바빌론의 이야기와 겹쳐지는 전개는 역사와 교차점을 찾으며 이 소설이 SF라는 것을 잠시 잊게 만든다. 한참을 고대 이야기와 갑자기 등장한 외계인 이야기를 하느라고 절반이 지나가면 드디어 공학자가 등장해 우주엘리베이터를 건설하기 시작한다. 소설 속 설계 공학자 ‘모건’은 10년 동안 지중해의 관문인 유럽과 아프리카를 잇는 14km 길이의 지브롤터 해협 대교를 설계한 사람으로 소개된다. 그때 다리를 건설한 소재인 ‘하이퍼 필라멘트’를 이용해 우주엘리베이터를 설계한 것이다. 건설을 시작하며 몇 가지 사건들이 이어지고 저자의 해박한 물리학 지식이 동원되며 이야기가 충분히 개연성이 있음을 설명해준다. 이 거대 프로젝트가 완성되는 시점에서 사고가 하나 발생한다. 주인공 모건은 주변의 만류에도 직접 사고 위치로 올라가 과학 연구 중 고립되었던 교수와 학생을 구조하고 어렵사리 문제를 해결한다. 이 과정은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는 것처럼 긴박감이 넘치고 책에 몰입하게 만드는 소설의 결정적 장면이다. 그리고 그는 지상으로 내려오면서 안도의 한숨과 함께 긴장이 풀리며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낙원의 샘 표지

아서 클라크의 소설은 내용이 흥미롭고 흡입력이 있어 꽤 많은 팬덤을 갖고 있다. 1989년 미국의 ‘타임(TIME)’지에는 흥미로운 일화가 하나 소개되었는데 비행기가 추락하는 동안 한 승객이 아서 클라크의 책을 읽고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이 뉴스를 접한 사람들은 그 승객이 책에 빠져드느라 비행기가 추락하는 와중에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살아남았다며 클라크의 몰입감 있는 스토리를 치켜세웠다. 이에 우쭐한 클라크가 그의 경쟁자이자 친구인 SF작가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에게 편지를 써서 자랑했다고 한다. 그는 아시모프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승객들이 자네 책을 읽고 있었으면 더 좋았을뻔 했군. 그럼 곯아떨어져서 비행기가 추락하는지도 몰랐을텐데 말이야”

아서 클라크는 소설 속 우주엘리베이터의 아이디어를 제롬 피어슨의 논문에서 얻었다고 밝혔다. 클라크는 피어슨의 글을 읽고 충격을 받아 곧바로 우주엘리베이터를 소재로 한 이야기를 써야겠다는 강한 의지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피어슨은 아서 클라크에게 기술적 전문지식을 제공하고 소설 속 상황에 대한 아낌없는 조언을 해주었다. 소설 속 설계자인 모건은 우주엘리베이터 아이디어의 실질적 창시자인 아르츠타노프를 오마주한 것이라고 밝혔다. 클라크는 실제로 1982년 소련을 방문할 때 아르츠타노프를 만나 그의 집 창가에 마주 앉아 차를 마시며 기다렸던 오랜 바램을 풀었다.

2008년 3월 19일 UTC(국제표준시) 06시 12분 미국의 Swift 위성에서는 75억 광년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초신성 폭발의 강력한 신호를 포착했다. 이 폭발은 육안으로 관찰할 수 있는 가장 먼 물체에 대한 새로운 기록을 세웠고 약 50초 동안 지속되었다. 우주의 총성 같은 이 폭발은 당시까지 인간이 관측한 가장 밝은 초신성 폭발보다 250만배나 더 밝았다. NASA는 ‘우주에서 인간이 관찰한 것 중 가장 밝은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로부터 몇 시간 후 아서 클라크는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심장질환으로 눈을 감았다. 클라크는 1955년 SF소설 ‘별(The Star)’로 휴고상을 수상했었다. 사람들은 이 초신성 폭발을 Clarke Event라고 불렀다.





에드워드의 실현 가능한 우주엘리베이터 

브래들리 에드워드

우주엘리베이터의 건설은 상상으로만 그칠것이라는 세간의 평가처럼 한동안 한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 그러다가 1991년 탄소 나노튜브가 발명되며 이 소재가 강철보다 수백배 강하면서도 매우 가볍다는 성질이 알려지면서 우주엘리베이터 케이블의 소재로서의 가능성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우주엘리베이터 케이블은 수만 km에 해당하는 케이블의 무게를 견뎌야 하므로 강하면서도 가벼워야 했다.  

물리학자 브래들리 에드워드(Bradley C. Edwards)는 이러한 아디이어와 재료를 사용하여 우주엘리베이터를 건설하기 위한 실용적인 계획을 제안하고 NASA의 자금지원을 받아 건설의 타당성에 관한 연구결과를 발표하였다. 그의 보고서는 우주엘리베이터의 개념과 건설방법에 관해서는 이전의 피어슨의 것과 일치하지만 매우 실용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건설에 투자가 가능한 예상 글로벌 기업들, 건설 장소에 대한 현실적인 고려, 실제 건설이 시작되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 분쟁과 법률적 검토 등이 담겨있다. 특히 우주 쓰레기, 방사선, 소행성의 파편, 항공기의 충돌, 테러, 지진 등 현실적인 여러 가지 위험 요소들을 제시하고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한다. 이 보고서는 우리나라에도 책으로 출판되어 있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너무나도 현실적이고 낙관적이어서 수년 내 우주엘리베이터를 타고 우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에드워드는 정지궤도인 36,000km에 본부를 두고 10만km까지 케이블을 늘려 그 끝에 우주로 향하는 터미널을 만드는 구조를 제안한다. 케이블의 두께는 수마이크로미터이며 너비는 30cm정도이며 이를 리본으로 부른다. 정지궤도까지 오르는데 약 1주일이 걸리고 10만km인 리본의 끝까지는 10일이 더 걸린다고 설정하고 있다. 에드워드도 화성과 달에 우주엘리베이터를 건설할 수 있다며 지구 우주엘리베이터의 끝에서 화성 우주엘리베이터 끝으로의 로켓 여행으로 천문학적인 연료를 아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구 표면에서 출발하면서 가속하기 위해 많은 연료가 필요하고, 화성에서 착륙하면서 속도를 줄이기 위해 또 많은 연료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가속과 감속으로 인한 연료 소모는 화성으로 가는 로켓 여행에 필요한 연료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에드워드의 우주엘리베이터 모델은 실현 가능성에 초점을 맞춰 기술되어 이전의 SF 선물세트처럼 들리던 허황된 이야기들을 대폭 수정하면서 현실의 기술과 많은 부분을 공유했다. 대표적인 것이 소행성 평형추이다. 목성까지 가서 마트에서 과일 고르듯이 적당한 소행성을 골라와 케이블의 끝에 매단다는 생각은 현실적인 과학자로서 지극히 한심스러워 보였던 것이다. 이외에도 자기 부상식 이동장치를 바퀴 구동식으로 바꾸었다. 중력이 작용하는 공간에서 수평으로 나아갈때는 자기부상식이 접촉과정에서 발생하는 마찰을 줄여 도움이 되지만, 우주에서 수직으로 이동할 때는 그 필요성이 적고 기술의 구현을 위해 여러 가지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우주엘리베이터가 표지를 장식한 discover

2004년에 세 번째 우주엘리베이터 학회가 워싱턴DC에서 개최되었다. 미국의 유명 과학잡지 디스커버 메거진(Discover Magazine)은 때마침 우주복을 입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표지 사진을 싣고 ‘부시 대통령의 메모 : 셔틀은 버리고 엘리베이터를 만든다.’라는 타이틀을 적었다. 이 학회에서 부시 대통령은 달착륙과 우주 프로그램 확대에 관한 연설을 했다. 분위기는 충분히 무르익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6개월 후 스페이스 셔틀 콜롬비아호가 지구로 재진입 중 폭발하는 최악의 사건이 발생했다. 셔틀 프로그램의 후발 연구가 필요한 시점에서 우주엘리베이터는 타당한 대안으로 거론되었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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