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의 기본은 청중에 대한 이해다
나는 종종 강사들에게 가장 강연하기 어려운 청중이 누구냐고 묻는다. 그러면 십중팔구 강사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처음부터 마음의 문을 닫고 있는 청중들이죠. “ 실제로 강사들이 가장 힘겨워하는 대상은 대기업 임원이나 고위 공무원, 중고생들이 아니라 팔짱을 끼고 비평가의 자세로 삐딱하게 앉아있는 청중들이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퀴즈를 내보자. 이른바 ‘엄친아’로 불리는 젊은 강사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청중은 누굴까?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일까 아니면 10대 청소년들일까? 둘 다 틀렸다. 정답은 강사와 비슷한 또래의 청중들이다. 아니. 비슷한 또래면 오히려 강연하기 쉽지 않으냐고? 예외도 있다. 무대 앞의 강사가 너무 대단한 사람이면 오히려 같은 나이 때의 청중들은 열패감 혹은 질시를 느끼게 되어 미리부터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의 닫힌 마음은 어떻게 열 수 있을까? 내 생각에는 "공감대 형성“에 달려 있다. 예를 들어 대학교수를 겸임하고 있는 어떤 프로 강사는 운전기사들을 상대로 강연을 할 때면 의도적으로 욕을 한다.”여러분. 오늘 개처럼 끌려 나오셨죠? 돈도 못 벌고 C8." 이런 식으로 욕을 한 바가 지하며 강연을 시작하는데 그러면 운전기사들은 '어라. 대학교수라 고리타분한 말만 늘어놓을 줄 알았는데 우리처럼 욕도 하네."라고 동질감을 느끼며 강연에 몰입하게 된다. (여기서 '욕'은 동질감 형성을 위한 의도적인 장치이다.)
다시 돌아와서 위 젊은 강사는, 그들의 연령대에 화제가 되고 있는 키워드를 툭툭 던져가며 '나도 당신과 별반 다를 게 없다'라는 식으로 친근하게 어필한다면 청중의 마음을 열 수도 있지 않을까? (사족: 언젠가 삼성의 갤럭시 개발자들을 대상으로 강사를 파견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무대에서 강사가 애플 아이폰을 꺼내 보이는 바람에 분위기가 술렁인 적이 있었는데 만약 당신이 청중인 갤럭시 개발자라면 아이폰 유저인 강사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싶어 질까? 무슨 말인가 하면, 프로 강사라면 이런 작은 것에도 세심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자. 그렇다면 청중과의 공감대 형성을 위한 보다 구체적인 방법은 없을까? 물론 있다. 교육 담당자에게 청중의 특성과 강연 때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묻는 것이다. 이때 필수적으로 알아두어야 할 사항은 '나이', '성별', '직급', '교육 수준', '금기해야 할 내용', '현재 관심사와 고민' 등이다. (물론, 청중에 대한 분석은 강연 전에 미리 끝나 있어야 한다.) 건강을 주제로 한 강연도 20대에게 하는 강연과 50대에게 하는 강연이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마찬가지다. 청중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강연은 반드시 실패하게 된다.
한편, 어느 기관이나 금기시되는 내용이 있기 마련인데 특히 대기업이나 관공서는 더욱 그렇다. (최근 가장 핫한 어느 여성 강사는 자신의 강의안에 'sex’라는 단어를 문제 삼는 주최 측 때문에 급히 한글인 ‘성’으로 변경한 적도 있다고 하였는데, 한 번은 지방지치단체의 강연을 맡은 강사가 나이 지긋한 어르신께 "할머니"라고 지칭하였다가 된통 쓴소리를 들었던 적도 있었다. 이럴 땐 누님[언니], 선생님 이렇게 지칭하면 된다.) 따라서 사전에 담당자에게 여러 가지를 꼼꼼히 확인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좋다.
아래 글은 모 다국적 기업에서 강연 시 금기해야 할 사항을 나에게 보내온 내용인데 금기시하는 내용이란 대략적으로 어떠한 것을 의미하는지 이해를 돕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1. 회사명 유의사항 (OOOO, OOOOO))
2007년 OOOO(주)로 상호가 변경되었습니다. 강사가 예전 사명 호명하면 교육생들의 반감이 상당합니다. OOOO이라는 사명은 삼가 부탁드립니다.
2. 사업부문 (OOOO 전문업체)
당사는 (OOO, OOO, OOOO, OOOOO, OOO 등)을 생산 판매하는 회사이며 ( )의 OOO는 취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OOO는 OOOOOO 관계사에서 취급하고 있으며 서로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지만 외부에서 OOO 회사로 인식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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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청중의 특성을 일일이 파악한다는 것은 굉장히 번거롭기 때문에 프로 강사들도 청중의 특성을 숙지하지 못하는 초보적인 실수를 종종 범한다. 물론 하루에 2~3개씩 강연을 하는 인기 강사들이 모든 강연을 맞춤형으로 진행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숙지는 해야 하지 않을까? 아래 글은 국내 최대의 생명보험사에서 어느 프로 강사가 강연을 진행한 직후 담당자가 나에게 보내온 피드백 내용이다. 청중의 특성을 파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이해함과 동시에 이와 유사한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유의하길 바란다.
"강의를 워낙 잘 하시니까 결론적으로 교육생들은 매우 만족했습니다만, 강사님께서 강의 청탁서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 하신 거 같습니다. 매니저님은 전달이 되었다고 했으니, 강사님이 미처 확인하지 못하신 건지... 청탁 서상 이미 알려드린 내용을 교육생들에게 질문을 하시고, (교육일정, 결혼했어요?) 강의 내용 관련하여 교육생들에게 이슈가 되는 X세대와의 소통스킬도 다루어 달라고 했는데 그 내용은 거의 없고... 기혼여성이라는 거에 포커스가 되어 있어서(미혼도 30%나 되는데..)'아.. 청탁서를 읽지 않으셨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당신이 신인 강사라면 강연장에 무조건 일찍 도착하는 습관을 들이자. 일찍 도착해서 무엇을 하느냐고? 먼저 담당자와 대화를 나누고, 강연에 참석할 청중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친근감을 표시하자. 청중의 입장에서 볼 때, 한번 인사를 나누고 나면 무대 위의 강사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며 긍정적인 리액션을 보내게 된다. 결과적으로 객석에 든든한 아군을 심어두는 셈인데 덕분에 좀 더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강연을 이끌어나갈 수 있게 된다. 덤으로 강연 평가도 좋게 나오는 것 같다. (믿거나 말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