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료, 얼마나 어떻게 받아야 할까?
자. 그럼 강연료에 대해 좀 더 실질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그 전에 먼저 이 글은 어디까지나 공공기관의 강연료 책정 방식을 기준으로 쓴 것이며, 나의 개인적인 경험과 지식을 풀어놓은 것이기 때문에 절대적일 수 없음을 미리 밝혀둔다. 앞의 글에서 ‘강연을 요청하는 기관마다 예산 범위가 천차만별이다’라고 언급하였던 점을 염두에 두고 읽어나가길 바란다.
일반적으로 신인 강사의 경우, 공공기관에서는 시간당 약 20만 원, 시민단체는 약 15만 원, 학교는 약 10~20만 원 수준이며, 기업체의 경우에는 시간당 50만 원에서 수백만 원까지 탄력적으로 강연료가 책정된다. 당연히 몸값이 높아지면 시간당 강연료도 올라가는데 기관장 또는 박사급이 되면 강연료 책정에 반영되기도 한다. ('강사 세계에서 학력은 얼마나 중요할까'를 참고하라.)
강연료가 너무 적을 때는 어떻게 하느냐고? 방법은 있다. 기본적으로 강연료는 시간당으로 계산하기 때문에 시간을 높여서 책정해달라고 요구하면 된다. 가령, 실제로는 2시간 강연을 하였지만 서류상에는 3시간으로 처리하는 것이다. 그것이 가능하느냐고? 담당자 재량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며 실무에서도 흔하게 있는 일이다. 물론, 담당자가 이러한 방법에 어두운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때는 당신이 이러한 방법도 있다는 것을 넌지시 알리는 것도 방법이다.
수강인원과 원고료 매수(보통 15,000원*5매)에 따라서도 증액이 가능하며 동영상 자료가 있다면 별도로 제출하여 추가 비용을 요구할 수도 있다. 또한 강연료에서 세금(원천징수)은 별도로 해달라고 하거나 (예: 강연료 100만 원에서 원천징수 3.3%를 하면 96만 7천 원이 입금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통장에 찍히는 실수령액을 100만 원으로 해달라는 것이다. 즉, 실제 강연료는 100만 원에서 0.967을 나눈 1,034,126원이 된다.) 추가적으로 교통비 지급이 가능한지 물어보면 기대치 않게 강연료를 좀 더 챙길 수도 있다는 것도 알아두라. 또한 강연료를 더 주고 싶지만 규정상 어렵다는 말은 반만 믿어라. 공공기관이라 해도 '특별 강사비'명목으로 증액이 가능하며, 백화점의 문화센터 등에서도 얼마든지 내규를 벗어나 예산을 높게 책정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한편, 주최 측에서 여러 명의 강사를 순차적으로 섭외하는 아카데미의 경우에도 방법은 있다. 만약 당신이 리스트상의 다른 강사들에 비해 경쟁력이 있다고 "객관적으로" 판단된다면 다른 강사들보다 당신의 강연료를 좀 더 우대해달라고 요구하라. 당신을 붙들고 싶은 담당자라면 다른 강사의 강연료를 줄여서라도 당신의 강연료를 올려줄 것이다. 또한 예산이 정 부족할 경우에도 담당자의 재량에 따라 다른 사업의 예산을 끌어다 쓰는 것도 추가로 검토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아두라. (그러나 능력에 자신이 없다면 섣불리 요구하지는 말라.)
지방에서 강연 요청이 왔는데 강연료가 실망스럽다면 숙박이 제공되는지 물어보라. 강연료는 적더라도 여행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방에서의 아침 강연일 경우, 전날 도착해야 하기 때문에 숙박을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 마찬가지로 강연료가 다소 적더라도, 강연에 응할 생각이라면, 90분 배정된 강의를 60분만 진행하겠다고 말해보라. 몸값을 낮추지 않아서 좋고, 심리적으로 위안도 얻게 된다. 마지막으로 주최 측에게 차량을 배차해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는 것도 알아두라.
(사족 : "저희가 정부 산하기관이라서 강연료를 많이 못 줍니다"라는 말에 너무 속지 말자. 재단법인이나 사단법인이 주무관청의 허가를 받은 단체이긴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정부기관이 아니라 민간단체이다. 그럴싸한 이름의 협회들이 정부기관 운운하며 강연료를 깎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은데 형편에 따라 얼마든지 적지 않은 예산을 쓸 수 있는 비영리단체도 많다는 것을 알아두라.)
일반적으로 강연료는 강연 후 2주 이내에 주는 것이 상례이다. 물론, 일부 연예인의 경우에는 선금을 받고 진행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강사들은 강연 이후에 지급을 받게 된다. (미리 선지급을 하게 되면 최선을 다하지 않는 강사들이 있기 때문에 강연 에이전시 입장에서도 미리 강연료를 주는 것은 꺼린다.) 당일 날 강연료를 받는 것이 아무래도 강사 입장에서는 가장 깔끔한데 전에도 언급하였지만, 현금으로 주는 것이 강사에게는 최고다.
문제는 강연료가 제때 입금되지 않아서 애를 먹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한 번은 외국계 컨설팅 회사의 대표이사에게 "강연 요청 기관으로부터 강연료를 떼인 적이 몇 번 있었는데 체면상 말 못 하고 그냥 넘겼다."라는 말을 듣기도 하였는데 어느 분야에나 사기꾼은 있기 마련인 것 같다. 사람 간의 신뢰가 생명인 우리 업계에서도 그런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또 한 번은 이런 이야기도 들었다. 어느 강사가 강연 에이전시의 요청으로 지방 군청에서 강연을 하였는데 몇 달이 지나도 강연료가 입금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에이전시에게 몇 차례 이야기를 해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정산이 늦어지고 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말뿐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도저히 입금해줄 기미가 보이지 않자 강사는 "그러면 내가 직접 군청에 연락해서 강연료를 받겠다."라고 응수하였더니 다음날 칼같이 강연료가 입금되었다고 하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부 스타 강사들은 계약서를 요구하기도 한다. 아무래도 그들은 강연료가 비싸기도 하고, 강연 취소로 인한 기회비용이 크기 때문이다. 계약서를 작성할 때는 정식 계약서를 쓰는 경우도 있지만, '이렇게 문서화를 하였으니 절대로 취소하지 마세요.'라는 정도의 상징적인 문서만 오고 가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아주 큰 돈이 아니고서는, 강연료로 계약서를 쓰는 것은 한국적 정서와는 맞지 않으니 당신이 신인 강사라면 참고만 하고 잊어버려라.
지금까지 강연료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이지만, 당신이 평생 동안 강연을 할 사람이라면 강연료에 대해 "많이 받으면 좋고, 적게 받으면 어쩔 수 없고"라는 정신을 가졌으면 좋겠다. 어쨌든, 강사라는 직업은, 돈도 중요하지만 누군가를 가르치고 깨우치는 데에서 더 큰 보람을 느끼는 일종의 교육자이자 지식인이라고 나는 믿기 때문이다.
국내 철학계의 선구자로 불리는 연세대 김형석 명예교수는 현재 97세에도 왕성한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얼마 전, 강연 요청으로 그 분과 통화를 하다가 강연료를 어떻게 예우해드리면 좋을지 여쭙자 그는 "그냥 봉사하는 마음인데 알아서 해주십시오. 저는 그런 거 신경 쓰지 않습니다."라고 답하였다. 순간 나의 마음도 따뜻해지고, 강연료를 조금이라도 더 챙겨드리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들었다. 이러한 것이 참 교육자이자 지식인의 모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