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와 에이전시는 강연 문화를 함께 만들어가는 파트너다.
강연 문화가 발달한 선진국에서는 주요 명사들이 강연 에이전시와 전속계약을 맺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워싱턴 스피커스 뷰로'는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등을 연사로 두고 있으며, 'CAA 스피커스'는 제임스 캐머런 감독, 배우 헬런 헌트 등이 소속되어 있다. 이 밖에도 ‘런던 스키퍼 뷰로’, '셀러브리티 탤런트 인터내셔널', 'WME(William Morris Endeavo)'등 다양한 에이전시를 통해 세계적인 명사들은 자신의 몸값을 제시한다.
최근 들어 국내에서도 에이전시를 통한 명사 섭외가 부쩍 늘고 있다. 물론 이전에도 에이전시는 존재하였지만 대개는 강사들과의 네트워크를 쥐고 있던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조용히 진행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가 2010년경 강연 비즈니스가 언론에 크게 부각되면서 본격적으로 나와 같은 에이전트들이 급증하기 시작하였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당신이 프로 강사가 되는 과정에서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에이전시를 만나게 된다는 사실이다. 자, 그럼 지금부터 강연 에이전시의 세계를 살펴보자.
강연 에이전시란 쉽게 말해서 강사를 섭외하고 매니저 역할을 하면서 강연할 곳들을 계속 개발해나가는 것이 그 역할이다. 이를테면 '아무개 강사로부터 이런 강연을 들을 수 있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연락드립니다.'라는 식으로 강사를 대신하여 영업을 해주는 세일즈맨인 셈이다. 따라서 당신과 친분이 있는 에이전시가 많으면 많을수록 강연 기회가 주어질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진다. (당연히 에이전시도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이기 때문에, 거래처에 강사를 제안할 때도 평소 자주 연락하던 강사를 우선적으로 추천하게 된다.)
내가 지켜본 바에 의하면 롱런하는 강사 들일수록 "에이전시는 강연 문화를 함께 만들어가는 파트너"라는 점을 잘 인지하고 있었다. 언젠가 강연을 주선하다가 알게 된 어느 원로 강사 분은 "내 시절에 이런 에이전시가 있었다면, 강사 생활을 훨씬 더 수월하게 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라는 말을 나에게 하기도 하였는데, 지금은 가만히 있어도 섭외 요청이 끊이지 않는 스타 강사들도, 한때는 여러 에이전시에게 강연 제안서를 보내며 자신을 적극적으로 어필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물론 모든 강사들이 에이전시를 좋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어떤 강사는 "전화 한 통 받고 연결해주면서 비싼 수수료를 받는 건 좀 아닌 것 같다."라는 말을 나에게 한 적도 있었다. 이러한 태도는 이제 막 얼굴이 알려지기 시작한 소위 잘 나가는 강사들에게 주로 나타나는데, 그런 식의 생각도 일견 타당하지만 너무 근시안적으로 보는 것일 수도 있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지금 당장은 강연 의뢰가 쏟아진다고 할지라도 나중에 인기가 식고 강연이 뜸해지면, 그제야 에이전시를 절실하게 찾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에이전시가 실전에서 당신에게 어떠한 도움이 되는지 하나씩 살펴보자. 첫째, 당신의 강연 기회가 에이전시로부터 주어질 수 있다. 한번 생각해보라. 당신이 제아무리 실력 있는 강사라 하더라도 정작 교육 담당자는 당신을 모른다. 그럴 때 담당자와 긴밀하게 일하는 에이전시가 당신을 강력히 추천한다면 어떨까. 강연 기회를 얻기가 좀 더 쉬워지지 않을까? 강사 세계에서는 당신이 혼자 끙끙거리는 것보다, 믿을만한 누군가의 추천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나는 강조하고 싶다.
둘째, 당신의 처지에 맞게 적절히 에이전시를 활용할 수 있다. 실제로 많은 강사들이 에이전시를 앞세워 강연료를 조정하거나 불만사항을 제기한다. (평소 돈을 전혀 밝히지 않을 것 같은 어느 유명인도 나에게 강연료를 이야기할 때는 억 소리 나는 금액을 부른다.) 수많은 단순 문의에 대해서도 에이전시가 강사를 대신해 행사 성격에 대해 파악해줄 수도 있으며 강연료가 제때 입금되지 않으면 에이전시를 통해 해결할 수도 있다.
한편, 한 명의 강사에게 지급되기에는 강연료가 지나치게 고액이거나 거래처 사정 상 전자 세금계산서가 필요한 경우, 주변에 아는 기획사나 대행사를 통해 결재가 가능하냐고 담당자가 강사에게 묻는 경우도 생긴다. 이때 평소 가깝게 지내는 에이전시가 있다면 양해를 구할 수도 있다. 가공 계산서 아니냐고? 강연료에 따른 비용처리와 세금만 꼬박꼬박 내면 위법은 아니다. 강연을 중계한 셈이 되기 때문이다. (한 번은 어느 유명 강사의 소속사에서 삼성의 업체 등록이 까다롭다며 이미 등록이 되어있던 우리에게 대신 결재처리를 하여 줄 수 있느냐고 물었던 적도 있었는데, 이런 경우는 기업뿐 아니라, 관에서도 종종 이루어진다.) 그래도 에이전시한테 미안하다고? 글쎄. 매출액을 늘리고 싶어 하는 에이전시라면 오히려 반길지도 모른다.
셋째, 에이전시로부터 강연에 대한 컨설팅을 받을 수도 있다. 수많은 강사들의 강연을 접하는 에이전시로부터 강연에 보완할 점이나 강연 업계의 정보 등을 얻을 수 있는데 뿐만 아니라 교육 담당자가 강사에게는 말하지 못하는 솔직한 피드백도 에이전시를 통하면 여과 없이 들을 수 있다. 서울예대 겸임교수인 배한성 성우는 강연이 끝나면 항상 나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와 담당자가 어떠한 점을 좋아하였고, 어떠한 점을 미흡해하였는지를 꼼꼼히 챙기는데 한 분야의 정상임에도 끊임없이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선하려는 그의 노력에 '아. 정말 프로는 다르구나.'라는 생각을 나는 정말 여러 번 하였다.
이 밖에도 유료 세미나, 배차서비스, 세무처리, 홍보 등 당신의 강연 활동을 위한 전반적인 업무를 에이전시로부터 지원받을 수도 있다. 또한 위에도 언급했듯이, 업계의 동향이나 실전에서 부딪히는 문제들에 대하여 자문도 구할 수 있는데 실제로 늦은 밤 나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럴 때는 어떻게 강연료를 받는 것이 좋으냐.", "지금 이 상황은 내가 어떻게 얘기해야 하느냐." 등등 나의 의견을 묻는 강사들이 꽤 있다. 어쨌든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때론 오해와 갈등도 생기지만 서로 간의 신뢰를 쌓는다면 영화 '제리 맥과이어'에서 보여주는 스포츠 선수와 에이전트의 뜨거운 우정도 영화 속에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한편, 강연료는 에이전시와 어떻게 나눠야 할까? 기본적으로 수임 대행료는 자유 경쟁이고, 에이전시마다 편차가 있을 것이므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그저 참고만 하라고 말하자면, "50만 원 미만 시 강연료의 20%, 50~100만 원 시 강연료의 25%, 150만 원 이상 시 별도 협의"라는 조건이면 어느 정도 합리적이지 않나 생각된다. 그러나 수임 대행료는 얼마든지 협상이 가능하니 적정 수준에서 당신이 먼저 제안해보라. (단, 당신이 신인 강사라면 협상의 칼자루는 에이전시가 쥐고 있다는 것도 알아두라. 이런 상황을 이용하여 강사에게 갑질 하는 에이전시들은 모두 반성해야 한다.)
그런데 강연을 하다 보면 에이전시의 소개로 한 차례 강연을 하였던 기관에서 직접 연락이 오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땐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다. 모 보험사에서 나와 몇 차례 강연을 진행하였던 강사가 나에게 연락이 왔다. "보험회사로부터 직접 연락을 받았는데 오대표님 통해서 이야기하라고 했어요." 그 말을 듣자 나는 이렇게 문자를 보냈다. "그쪽 사업부가 워낙 많으니 다음부터는 강사님이 직접 하셔도 돼요. 원래 보험업계가 한번 소문나면 여러 군데서 문의가 많거든요.".. 그러나 나처럼 생각하는 에이전트도 있는 반면 업계 전반에서는 에이전시로부터 연결된 강의는 차후에도 에이전시를 통하는 것이 상례이다. 왜 그럴까?
언젠가 십수 년간 에이전트를 하고 있는 업계 선배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는 방송에도 종종 나오는 유명인의 전담 매니저였는데 강연장에서 만난 그에게 내가 말했다. "매니저님. 오늘은 제 소개를 받고 하셨지만, 직접 연락이 오면 바로 하셔도 됩니다." 진심이었다. 그러자 그는 손사래 치며 이렇게 말했다. "에이. 그렇게 하면 일이 더 꼬여요. 담당자와 에이전시의 인간적인 관계도 있는데 무턱대고 욕심 부리다 보면 에이전시와도 일이 끊기는 등 오히려 더 많은 걸 잃을 수 있거든요."... (때문에 일부 에이전트는 강사와 계약을 맺을 때 “개인의 연락 홍보를 필히 금한다. 명함, 강의 PT 개인 연락처 등”이라는 문구를 넣기도 한다.)
한편, 국내에서는 강사들이 전속계약을 맺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고 보면 된다. 왜냐하면 어느 정도 알려지고 나면 강사에게 직접 문의가 많이 들어와 굳이 계약에 묶여 있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간혹 포털 사이트에 무슨 무슨 회사 소속이라고 나오는 강사들도 있지만 대개는 이름만 걸쳐 놓은 것임을 나는 안다.
끝으로, 강연 에이전트의 길을 걷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까 몇 자 적는다. 사회에 이미 알려진 사람을 컨텍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새로운 사람을 발굴해내는 것이 우리 에이전트의 역할이다. (방송국 피디를 떠올리면 된다.) 즉, 아직은 유명하지 않지만, 숨은 원석과 같은 강사를 계속 발굴하면서 함께 성장해나가는 것이 경쟁력 있는 에이전트로 가는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