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 강사의 입장에서 정치성향을 드러낸다는 것
강사는 정치적이면 안 될까? 그것은 강사 개개인이 결정할 문제이다. 그러나 당신이 정의감에 넘쳐 정치성향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대중 강연을 한다면 그 열정만큼 프로 강사가 될 가능성은 줄어든다고 나는 믿는다. 즉, 당신이 강사라는 타이틀을 정치인이 되는 중간단계로 여기지 않는다면, 가급적 청중 앞에서 정치 이야기는 하지 말 것을 권하고 싶다.
나는 실무에서 정치색이 짙은 강사들과 종종 일할 때가 있다. 언젠가 어느 금융회사 특강을 맡게 된 외부강사가, 역사적으로 평가가 엇갈려 논란의 소지가 될 수 있는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맹비난을 퍼부은 적이 있었는데 순간 임직원들의 야유 섞인 탄식이 터져 나와, 강연을 준비한 내내 식은땀을 흘린 적이 있었다. 그날 교육 담당자가 강연 도중 나에게 보낸 문자 내용. "대표님 끝나고 말씀 좀 나누시지요. 진짜 좀 답답하네요.."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강연 에이전시와 일을 하지 않기로 유명한 어느 강사를 대기업 담당자의 요청으로 아주 아주 어렵게 섭외했는데, 며칠 후 담당자가 연락이 와서 다짜고짜 강연을 취소하는 것이 아닌가? 정말 어렵게 섭외한 강사였던 만큼 나는 매우 당황하였는데 담당자에게 자초지종을 묻자 왠지 대답을 얼버무리는 것이었다. 며칠 후, 원인을 파악하고자 재차 물어보았더니 담당자로부터 돌아온 대답. "그 강사가 저번 정권 사람이라 윗선에서 다른 사람으로 교체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내가 지금 말하려는 것은, "당신이 아무리 강연을 잘해도, 정치성향으로 인해 억울한 일을 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저 사람 보수잖아. 저 사람 진보잖아 식으로 정치색을 가지고 당신의 전문 분야를 삐딱한 시선으로 규정해버린다면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평소 정치적 발언을 세게 하는 연예인들은, 담당자가 강사 선정 과정에서부터 기피한다. 실화: 거래처 중에 이승만 동상을 세운 대학이 있는데 언젠가 담당자가 내게 했던 말. “강사는 좌파 성향이 없는 분으로만 추천해주세요.”)
한편, 한국 ABC협회가 공개한 '전국 159개 일간 신문의 2014년도 발행, 유료 부수 현황'자료에 따르면, 실제 판매량인 유료 부수에서 1위는 조선일보(129만 4931부), 2위는 중앙일보(79만 5209부), 3위는 동아일보(73만 7053부)로 보수 언론인 조중동이 1,2,3위를 차지하였고, 진보 성향의 한겨레는 -발행부수(24만 4830부)가 워낙 적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겠지만- 유료 부수가 총 19만 8931부로 집계되어 7위에 머물렀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까. 당신에게 강연 기회를 주는 담당자와 강연에 참석할 청중의 십중팔구는 조중동을 읽고 있다는 뜻이며, 만약 당신이 진보성향의 강사라면 우리 사회가 이런 식으로 편성되어 있는 것을 모르고, 섣불리 정치 이야기했다가 당신만 손해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어느 여성강사는 조선일보에 기사 실린 이후로 강연이 부쩍 늘었다고 나에게 말한 적도 있다.) 마찬가지로, 당신이 보수성향의 강사라 조중동에 대해서만 해박하고, 한겨레의 논조에 전혀 무지하다면 당신은 사회 전체를 통찰하는 시야가 좁은 외눈박이 강사에 그칠지도 모른다. 가장 이상적인 강사는 어느 한쪽에 휘둘리지 않고, 균형된 시각을 지닌 강사가 아닐까?
결론적으로, 당신이 대중 강사가 되고자 한다면, 정치 이야기는 가급적 하지 말라. 정치 이야기만큼 설득도 되지 않고, 공허함과 손해만 따르는 일도 없다. 스타 강사들도 정치 이야기만큼은 진실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절대 입 밖에 내지 않는다. 그렇게 하는 것이 대중 강사로서 '롱런(long-run)'하는 방법임을 경험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당신도 이러한 점을 절대 잊지 말고, 정치 이야기로 손해 보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주의하자.
(사족 : 어느 정도 인지도가 쌓인 스타 강사가 되면 정치권에서 러브콜이 오기도 한다. 내가 아는 유명강사 몇몇은 아직도 선거 때만 되면 특정 정당의 윗선에서 연락이 온다고 하였는데 실제로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되거나, 정부 산하 교육기관의 단체장이 되는 경우도 나는 보았다. 정치인이 되는 것이 당신의 꿈이라면 대중 강연을 통해 인지도를 쌓는 것도 나쁜 방법은 아니다. 한편, 정치권의 제안을 거절하는 강사들의 이유로는, 체질이 맞지 않아서, 가족의 반대, 강사 생명이 끊길까 두려워서 등으로 다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