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있다가도 어느 순간 불쑥 튀어나오는 청춘
이 나이에 덕질이라니 - 잊고 있다가도 어느 순간 불쑥 튀어나오는 청춘
원유 저 / 21세기북스 / 이원종 서평
‘덕질’이라 하면 아마도 그 어원은 ‘오타쿠’로부터 시작 되었을 텐데, 이 말은 무언가에 집착하여 그것을 수집하는 사람을 주로 뜻하는 일본어이다. 그런데 이들은 대부분 사회성이 결여된 경우가 많아서, 그다지 좋은 인상을 주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오타쿠로 시작해 ‘오덕’ ‘덕후’ 등을 거쳐 생겨난 ‘덕질’이라는 단어가 흔히 쓰이게 되었고, 여러 분야의 덕질 중 주로 아이돌 스타에 대한 덕질을 뜻하게 되었으며, 방송에서는 연예인들이 자신에게 ‘입덕’하라고 포인트를 홍보할 정도로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런 ‘덕질’이란 것을 저자는 10대 때에도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40대에 접어들면서 뒤늦게 시작하게 되었을까.
19년차 야구 전문 기자이자 두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인 저자는 어느 날 회사 단톡방에서 ‘강다니엘’
이 실검 1위에 올랐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호기심에 직업정신까지 발동하여 조사를 하다 보니 어느새 그의 매력에 빠져 ‘덕통사고’를 당하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큰 키와 넓은 어깨에 잘생긴 외모 등등 뭐 하나 빠지는 것이 없지만 가장 큰 입덕 포인트는 ‘웃는 게 너무 예뼈서’라고 한다.
굳이 ‘덕밍아웃’을 해서 주위로부터 이런저런 잔소리를 듣는 게 싫을 법도 한데, 저자는 가족과 친척, 직장 동료들에게 매일 강다니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적극적으로 홍보를 한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대단한 용기다. 지금은 인식이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중년의 아이돌에 대한 덕질은 우리나라에서 그리 쉽게 인정받는 분위기는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일본의 한 아이돌 그룹은 극단적인 상업주의의 표본이라 할 만하다. 어린 여아이돌 가수들이 ‘악수회’와 같은 행사를 통해 원하지 않을지도 모를 스킨십과 포즈요청을 받아주어야 하고, 그 상대가 대부분 재력 있는 4,50대 중년이라는 현실을 보면 이걸 아무리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 해도 받아들일 만한 논리가 없었다. 그리고 나이와 상관없이 ‘아이돌 덕질’을 현실에서 불가능한 연애를 가능하게 해주는 ‘
유사 연애’로 생각하는 팬들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런 면들이 때로는 순수한 팬심을 왜곡하기도 하지만 저자를 포함한 많은 아이돌 팬들의 진심이 무엇인지 몸소 느껴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바로 저자 역시 바쁜 와중에도 본방사수를 위해 애썼던 ‘프로듀스
101’ 시리즈이다. 101명의 연습생들이 치열한 경쟁을 통해 최종 데뷔조인 11인 안에 드는 과정을 방송한 것인데, 그 당시 시청률과 화제성이 워낙 높아서 관심 없는 사람들이라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어른들의 사회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방송 포맷과 ‘악마의 편집’은 많은 시청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지만, 그 와중에도 늘 빛났던 것은 연습생들의 순수한 열정이었다. 치열한 경쟁의 반복, 탈락의 아쉬움, 기약 없는 연습생으로의 복귀와 같은 잔인한 현실을 겪어내면서도, 늘 동료들에게 진심어린 축하와 위로를 건네고 서로의 꿈을 응원해주는 모습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와는 달랐다. 그들도 역시 자신들이 서 있는 무대가 상업주의와 이기심에 물든 어른들이 짜놓은 판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한계를 어른들이 상상할 수 없었던 꿈을 향한 순수한 열정만으로 정면돌파해 나가는 모습을 보며 많은 시청자들이 열광했던 것이다. 그런 감동과 꿈을 응원하는 마음에는 나이가 아무 상관이 없었고, 실제로 이 시리즈를 통해 평생 덕질이 뭔지도 몰랐던 삼촌, 이모들이 저자와 같은 마음으로 첫 덕질을 시작했다.
스트리밍과 다운로드 횟수를 통해 줄을 세우는 요즘의 음원시장에서는 차트에 진입하기가 정말 어렵다. 그래서 팬덤들은 더 조직적으로 움직이는데, 상대적으로 삼촌, 이모 팬들은 그런 것에 익숙하지 않다보니 ‘스밍’이 뭔지, ‘총공’이 뭔지 검색해가며 요즘 아이돌 용어 학습에 여념이 없다. 저자는 그렇게 하나하나 배워가며, 직캠 동영상을 검색하며, 굿즈와 포스터를 구입하기도 하면서 행복한 덕질을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팬사인회나 콘서트, 음방에도 다녀와서 그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들려주었으면 했지만, 거기까지는 무리인가보다. 그 영역부터는 더 젊은 친구들에게 맡긴다고 한다.
한동안 ‘욘사마’ 열풍이 불었던 때, 일본 중년 여성의 그 열광은 무엇이었을까 무척 궁금했었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명작 ‘20세기 소년’의 표현을 빌어 저자가 묘사한 문장이 딱 와 닿아서 그 마음을 대변해 주는 듯하다. 지금의 중년은 대부분 20세기에는 소년 또는 소녀였다. 그 중년들이 21세기의 소년, 소녀를 바라보며 느끼는 것은 잊고 있던 청춘의 기억일 것이다. 아이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순수한 부모의 마음으로 지켜보지만, 어느새 그 청춘을 바라보는 나 자신 역시 20세기의 소녀, 소년으로 돌아가서 그들의 꿈과 열정을 교감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 어차피 마주할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가끔은 과거의 나로 돌아가 마음속부터 게워내고 싶은 때가 있다 HOT는, 혹은 먼훗날의 강다니엘은 그 방아쇠만 되어주면 된다. 그것으로 그들의 역할은 다한 것이다. (233쪽)
- 청춘이란 것이 그렇다. 잊고 있다가도 어느 순간 불쑥 튀어나와 사람 마음을 아리게 한다. 그래도 아직은 청춘이라고,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242쪽)
글쓴이 : 이원종
저자이자 독서경영 전문가로 활동 중인 이원종님은 중앙대학교 수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이지리더 독서경영 연구소 대표와 오간지프로덕션 북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입니다. 명지대, 한성대, 오비맥주,인천/안산 CEO아카데미 등 주요 기업체 특강 등을 통해 ‘책만이 살 길이다’, ‘독서경영을 바탕으로 한 성공의 길’ 등의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주)세계화전연구소 성공칼럼니스트, YES24 스타 블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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