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큰 중국집 하림각 회장의 성공비결과 인생이야기
[서평] 나는 오늘도 희망의 자장면을 만든다, 남상해
나는 오늘도 희망의 자장면을 만든다 / 남상해 지음 / 이원종 서평/ 명진 출판
세계에서 가장 큰 중국집을 운영하고 있는 하림각의 남상해 회장이 직접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이 책이 이미 12년 전에 출판된 것이라 지금도 하림각이 잘 운영되고 있는지 검색해 보았더니, 세상에서 가장 큰 중국집이란 표현에 걸맞게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동시 수용인원이 3,000명에 주차시설만도 1,500대가 가능할 정도라고 한다. 우리가 흔히 먹는 짜장면 한 그릇에 큰 의미를 두는 경우는 별로 없을 것이다. 그저 한 그릇 맛있게 먹었으면 기분좋은 것이고, 어쩌다 맛없게 먹었어도 짧게 불평 한 마디 정도 하고말 것이다. 그런 짜장면 하나에 그가 어떻게 승부를 걸어 이렇게 멋진 성공을 이루었는지 들여다보았다.
남상해 회장은 1938년에 경남 의령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아버지를 따라 일본 북해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해방이 되고 나서 다시 한국으로 귀국하였다. 너무나 어려운 집안사정으로 인해 장사를 했으나 남가집성촌이었던 동네 사람들에 의해 가문의 체면을 깎아먹는다고 멸시당하며 쫓겨나다시피 충남 보령으로 이사를 하게 된다. 그 곳에서는 당장 살 집이 없어서 '병막'이란 곳에서 지내게 되었는데, 병막은 전염병이나 나병환자들이 죽기 전에 보내지던 곳이라 한다.
그의 가족들은 거처를 옮길만한 곳이 없어 거의 매일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 식구들 역시도 너무나 굶주린 나머지 여동생, 형, 막내까지 세 사람이 한 달새에 굶어죽었는데, '흰 쌀밥 한 공기만 먹고 죽었으면 소원이 없겠다'던 바로밑 여동생의 죽음은 특히 그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평생동안 짊어져야할 마음의 짐이기도 했으나, 한편으로는 게을러지지 못하고 끊임없이 노력을 하게했던 원동력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묻을 곳 없는 여동생의 시신을 공동묘지 안의 아무 곳에나 묻기 위해, 밤에 아버지와 산을 오르다 발을 잘못디뎌 언덕 아래로 시신과 함께 굴러떨어지고, 그 시신을 끌어안고 오열하는 장면은 글로 듣는 이야기이지만 너무도 처참함이 느껴졌다.
그런 현실을 두고보다가는 가족 모두가 굶어죽겠다고 생각한 남상해 회장은 고작 열 살의 나이에 서울로 올라가서 어떻게든 이 현실을 벗어나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무작정 무임승차를 하고 승무원과 숨바꼭질을 벌이며 올라가느라 보령에서 서울까지 가는데 이틀이나 걸렸다. 열 살 소년이 아무 연고도 없이 처음보는 세상 서울에 왔으니 얼마나 막막했을까. 서울역에서 자다가 몇 살 많은 소년에게 얻어맞으며 서울의 첫날을 맞이했던 남상해는 오히려 얻어맞았던 그 소년이 돈벌이로 하고 있던 신문팔이를 하며 돈을 벌게 되었다. 그렇게 신문팔이에서 신문배달로, 신문배달에서 구두닦이로 자신의 생계수단을 조금씩 확장시켜 가며, 종로구 창신동의 한 야산에 굴을 파고 지내게 되었는데 열악하기 그지없지만 자신의 집으로 삼았던 것이다.
돈을 더 벌기 위해 무작정 취직시켜달라고 사정해서 간신히 들어간 중국집이 지금의 성공발판이 되었다. 타고난 부지런함으로 주인의 눈에 띄었고, 까막눈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작한 공부를 통해 39세에 대학 졸업장을 받기도 했다. 그는 그 모든 일을 해내기 위해 하루에 2~3시간밖에 자지 않았다 한다. '줄일 수 있는 시간은 잠자는 시간밖에 없었다'고 하니. 그렇게 30살에 처음으로 자신의 중국집을 개업하고, 지금의 하림각을 세우고나서 대형중국음식점의 성공신화를 쓰기까지, 그가 습득하고 깨달았던 노하우들을 전해주고 있다. 이른 바 '자장면으로 30억을 번 비결'인데, 이미 12년이 더 지났으니 아마 수백, 수천억을 번 비결이겠다.
1. 대통령 앞에서도 절대 기죽지 마라- 그는 일본의 한 상원의원에게 초대를 받아 유명 일식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런데 국회의원이 갔는데도 주방에서 나오지 않고 자신의 일에 열중하던 음식점 주인을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자 그 의원이 그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동경법대 출신으로서 그 식당을 경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중에 그 주인에게 왜 판검사를 안 하고 음식점을 운영하느냐고 묻자, 자신은 200년 동안 대대로 이어어고 있는 이 음식점을 경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며 자신의 아들이 일본 수상이라 할지라도 그는 아들에게 이 음식점을 물려줄 것이라고 하였다. 그때부터 남상해 회장은 중국음식을 만드는 자신의 일이, 아무나 할 수 없는 중요한 일이라 생각하게 되었고 자신만의 독특한 요리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게 되었다. 또 음식을 만드는 일에 자부심을 가지게 되니 또한 그것을 즐길 수 있었고, 그것이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가장 큰 깨달음이이었다 한다.
2. 사업을 시작할 땐 항상 장사가 안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라-- 중국집을 개업하기 위해 그에게 어떤 사람이 조언을 구하였는데, 그 곳에서 장사를 하지 말라는 조언을 무시하고 개업을 했던 그 사람은 결국 장사가 안 되어서 망하게 되었다. 가게를 비싼값에 넘기기 위해 일부러 사람을 동원했던 전 주인에게 당했던 것이다. 장사를 시작하려면 그 동네의 세대수, 남녀 성비, 외식을 할 수 있는 잠재고객의 수등 여러가지를 치밀하게 살펴봐야 하는데, 막상 사업주에게는 자신에게 유리한 것들만 보이고 잘 안될 가능성, 위험에 대해서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아주 신중하게 생각을 해야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판단하고 조언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3. 음식재료를 구하기 위해 항상 새벽에 시장으로 출근하라- 재료에 대해 알지 못하면서 음식을 만든다는 것은 말이 안 되기 때문에, 항상 좋은 재료를 고르는 방법을 연구하고, 선점하기 위해 일찍 시장에 나가야 한다. 상인들에게 그런 인식을 주고 친분을 쌓아야 더 좋은 정보도 얻을 수 있다.
4. 배달원에게도 항상 위생복을 입혀라.
- 가끔 청결하지 못한 환경이나 음식 상태를 보면 다시는 그 집을 찾지 않게 된다. 남상해 회장은 그걸 잘 알기에 11평 규모의 작은 중국집이라 하더라도 항상 주방이 훤히 보이게 했고 배달원들에게까지 위생복을 입혀 청결에 신경을 쓰게 했다. 일견 우스워보이기도 하겠지만 믿을 수 있는 식당이란 인식을 고객에게 주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일이다.
5. 바쁠때 일수록 더욱 친절하라.
- 평소에 친절하기는 쉽지만 바쁜데도 불구하고 고객에게 웃는 얼굴로 친절하게 대하기란 쉽지 않다. 종업원 입장에서는 하루에 수백명씩 상대하는 고객이지만, 고객 입장에서는 그 식당에서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하는 식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아무리 바쁘고 힘들지라도 한 명 한 명의 고객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리고 그럴 때 고객도 감동할 수밖에 없다.
6. 고객 이전에 종업원을 먼저 감동시켜라.- 사장이 종업원에게 잔소리만 해대면서 그들이 고객에게 웃는 얼굴로 최선의 서비스를 해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지적할 일이 있으면 바로 말하지 않고 나중에 회의를 통해 안건으로 처리한다고 한다. 항상 종업원의 고충과 건의사항, 아이디어를 듣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그런 경영자의 의식적인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종업원이 가장 소중한 고객이란 말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상의 조언들은 물론 음식점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지침이 되겠지만, 사람을 상대하고 경영을 해야하는 모든 일들에 각자 적용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항상 주어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도, 그는 매일 꿈을 꾸는 일만은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신문배달을 할 때는 신문사 사장이 되는 꿈을, 구두닦이를 할 때는 구두공장 사장이 되는 꿈을, 그리고 짜장면 배달을 하면서는 세상에서 가장 큰 중국집의 사장이 되는 꿈을.
글쓴이 : 이원종
저자이자 독서경영 전문가로 활동 중인 이원종님은 중앙대학교 수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이지리더 독서경영 연구소 대표와 오간지프로덕션 북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입니다. 명지대, 한성대, 오비맥주,인천/안산 CEO아카데미 등 주요 기업체 특강 등을 통해 ‘책만이 살 길이다’, ‘독서경영을 바탕으로 한 성공의 길’ 등의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주)세계화전연구소 성공칼럼니스트, YES24 스타 블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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