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상익 Dec 18. 2018

(책소개)『스무 살』김연수

쉽게 잊혀지지는 않을 거야

스무살 - 쉽게 잊혀지지는 않을 거야
김연수 / 문학동네/ 이원종 서평



- 열심히 무슨 일을 하든, 아무 일도 하지 않든 스무 살은 곧 지나간다. 스무 살의 하늘과 스무 살의 바람과 스무 살의 눈빛은 우리를 세월 속으로 밀어 넣고 저희끼리만 저만치 등 뒤에 남는 것이다. 남몰래 흘리는 눈물보다도 더 빨리 우리 기억 속에서 마르는 스무 살이 지나고 나면, 스물한 살이 오는 것이 아니라 스무 살 이후가 온다. (9쪽)



책의 처음 몇 문장을 읽었을 뿐인데, 그것이 너무 강렬해서 다음 문장으로 눈을 뗄 수가 없게 만든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면, 스무 살의 기억은 언제나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 이후의 기억들은 아주 특별한 경험이 아닌 이상, 언제 뭘 했는지 분명하지가 않고 연도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소설에 나오는 여러 스무 살의 경험들 중에서도 특히 ‘스무 살’이란 제목의 이 글은 자신의 경험이 아니면 이렇게 쓸 수 없었을 것이란 확신이 들게 한다. 누구에게나 빛났을 한 해인 스무 살의 기억은 분명 평생 동안 특별하게 남아서 그 이후의 삶 전체와 비교하게 된다. 우리들 대부분은 그렇게 ‘스무 살 이후’를 살고 있는 것이다. 

소설 속 어디에서도 화자인 주인공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그는 동부 이촌동의 한 부잣집에서 공부라고는 전혀 할 마음이 없는 학생을 가르치며, 아니 실제로는 스스로 미적분 문제를 풀고 영어문장을 외우며 시간을 때우고 불로소득처럼 느껴지는 과외비를 받았다. 그 다음 아르바이트로 상도동에서 편의점의 입지조건을 따지기 위해 지나가는 통행인의 수를 세는 일을 했고, 그 다음으로는 합정동의 홀트 아동복지회에서 여는 바자회를 도와주는 일을 하게 된다. 여기서 알게 된 괴팍하고 고집 센 재진이라는 친구조차 쉬는 시간에 소주를 같이 마시기 위해 한강변에 앉아있던 주인공을 부르면서 그저 “어이!”라고 외쳤을 뿐이었다. 조금 각색되었을 지는 몰라도 이 이야기는 저자의 경험이 분명하다. 


- 여기 참 좋지 않니? 나무 사이로 지나가는 바람이 온통 연둣빛이야.“ 

- “<사랑해요>?”

“응. 아마 앞으로도 그 노래만 들으면 여기가 생각날 거야. 쉽게 잊혀지지는 않을 거야.”

녀석이 다시 내게 소주병을 건넸다. 쉽게 잊혀지지는 않을 거야. 나는 그 말이 너무나 좋았다. (31쪽)






주인공은 재진이가 불편했다. 그전에 과사무실에서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과정에서 재진이의 말도 안 되는 고집 때문에 일을 그르칠 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무 사이를 지나가는 바람이 연둣빛이라고 말할 수 있는 감성을 가진, 법학도의 길을 걷고 있지만 원래는 클래식 기타리스트가 꿈이었다는, 그러나 두 손가락이 없어서 그 꿈을 접었다는 재진이의 다른 면을 보게 된다. 결정적으로 둘이 함께 있었던 지금 이 장소와 시간이 쉽게 잊혀지지는 않을 거라는 재진이의 말에 마음이 풀려버렸다. 

주인공이 느꼈던 그 감정이 그대로 전달된다.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응원하게 되면 흔히들 ‘언제까지나 영원히 함께 하겠다’고 말하고는 한다. 그렇게 듣기 좋은 말은 쉽게 할 수 있지만, 슬프게도 그 영원할 것만 같았던 마음은 시간이 지나면서 시들기도 하고 변하기도 한다. 그래서 재진의 말은 더 가슴에 와 닿는다. 언젠가 잊혀질 수도 있고 그걸 막을 수도 없겠지만, 그래도 그리 쉽게 잊혀지지는 않을 거라는, 그런 솔직한 말이어서 더 믿음이 간다. 그런 마음으로 서로를 생각해준다면 우리들의 모든 관계가 더 오래갈 수 있지 않을까. 



뭔가 더 강렬한 체험을 원했던 주인공의 스무 살은 그렇게 지나갔다. 흔히 말하듯 평범하다면 평범하고, 특별하다면 특별하게 말이다. 우리들 각자의 스무 살 역시 그러할 것이어서 그 경험들을 이 소설에 나오는 인상 깊은 구절들과 껴 맞추어 가며 추억해 볼 수 있다. 마지막 문장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들 각자의 스무 살과, 각자의 그들을 떠올리며, 그들의 안부를 물으며 저자와 함께 ‘스무 살 추억하기’를 마무리 지어본다. 


- 생에서 단 한 번 가까워졌다가 멀어지는 별들처럼 스무 살, 제일 가까워졌을 때로부터 다들 지금은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 이따금 먼 곳에 있는 그들의 안부가 궁금하기도 하다. 이 말 역시 우스운 말이지만, 부디 잘 살기를 바란다. 모두들. (44쪽)






글쓴이 : 이원종

저자이자 독서경영 전문가로 활동 중인 이원종님은 중앙대학교 수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이지리더 독서경영 연구소 대표와 오간지프로덕션 북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입니다. 명지대, 한성대, 오비맥주,인천/안산 CEO아카데미 등 주요 기업체 특강 등을 통해 ‘책만이 살 길이다’, ‘독서경영을 바탕으로 한 성공의 길’ 등의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주)세계화전연구소 성공칼럼니스트, YES24 스타 블로거


오간지프로덕션 콘텐츠「강연의 시대」바로가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