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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상익 Jan 16. 2019

(서평)『건투를 빈다』김어준 지음

김어준의 정면돌파 인생매뉴얼

건투를 빈다 - 김어준의 정면돌파 인생매뉴얼 / 김어준 지음 / 푸른숲 / 이원종 서평


 저자 김어준의 글을 몇번 읽어본 적은 있지만, 언제 이런 고민상담까지 했었는지는 몰랐다. 그런데 그 고민들은 거의 다 예전에 겪었거나, 지금 하고 있거나, 혹은 주위에서 겪었음직한 내용들이라 더욱 흥미롭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변들은 다소 상식을 거스르는 듯도 하지만, 본질을 꿰뚫고 있어서 명쾌하다.  


나, 가족, 친구, 직장, 연인 등 우리가 인생에서 겪는 문제들의 카테고리를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누어 Q/A 형식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벌써 나이 서른인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한 내가 하찮은 사람 같아요', '작은 키 때문에 늘 우울합니다' 와 같은 제목들이 어딘가 답답한 가슴 한 켠을 건드리는 듯 하다. 우리라면 이런 질문에 대해 시원한 답을 던져줄 수 있을까?  



- 수 많은 고민들 접하는 와중에 나름 발견한 대한민국 고민 일반의 최소공배수가 몇 있다. 개중 꼭 언급하고픈 거 하나. 많은 이들이 자신이 언제 행복한지 스스로도, 모르더라. 하여 자신에게 물어야 할 질문을 남한테 그렇게들 해댄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그런 자신을 움직이는 게 뭔지. 그 대가로 어디까지 지불할 각오가 되어 있는지, 그 본원적 질문은 건너뛰고 그저 남들이 어떻게 하는지만 끊임없이 묻는다. 오히려 자신이 자신에게 이방인인 게다. 안타깝더라. (저자 서문)



그에 덧붙여 '세상사 결국 다 행복해지자는 수작 아니더냐'는  말에 이르면, 이 책의 주제는 분명해진다. 자신의 행복을 자기 안에서부터 찾으라는 것. 그렇게 할수 있도록 도움을 주겠다는 것. 그런데, 책을 읽어가다보면 또 한 가지,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다. '우리는 언제부터 어른이 되었을까'라는. 법적 성인 기준인 만 19세가 넘었다고 해서 아이에서 어른으로 바뀌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군대를 갔다온다고 해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 해서, 나이 서른이 넘었다 해서, 경제활동을 시작한다고 해서 어른이 되는걸까?


실제로 저자는 조언 중 때때로 '이런 것을 깨달아야 진짜 어른'이 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미 어린 시절의 '순수한 행복과 환상'이 깨져버린 시점에서, '행복해지는 것'과 '진정한 어른이 되는 것'은 묘하게 그 방법이 일치한다는 것을 이 책을 읽는 내내 깨닫게 된다. 어쩌면 나이와 상관없이 우리는 아직도 가족과 친구와 연인에게, 사회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어리광'을 부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


놓치지 말아야 할 첫번째 키워드는 '자존감'이다. 수시로 '줄타기 방송'을 하기도 하는 저자이지만, 어떤 말과 행동을 하더라도 그에게서는 넘쳐나는 자존감이 느껴진다.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하고 주위로부터의 실망에 힘들어하는 학생에게, '남의 기대를 저버리는 연습'을 할 것을 조언하는데, 우리나라엔 남의 욕망에 복무하는 데 평생을 다 써버리고 자기 공간은 텅텅 빈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남의 기대를 저버린다고 자신이 하찮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니, 제 욕망의 주인이 되어 자기만의 노선을 찾고 거기서 자존감을 되찾아야 한다. 냉정하기만 한 이야기가 아니라 여기게 되는 '서울대에 못가 참 다행이다'라는 칼럼을 일부만 소개한다.


- 고백 하나 하자. 학창 시절, 나, 공부 좀 했다. 서울대, 당연히 가는 줄 알았다. 연고대는 공부 못하는 학생이 가는 곳인 줄 알았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나도 재수 없다. 하지만 그땐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다 결국, 못 갔다. 억울했다. 내가 획득한 학력고사 점수만큼만의 사람이란 걸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해서 이런 저런 핑계도 찾았다... (중략)
 
하지만 그런 후에도 여전히 피곤했다. 언제나 사람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되는지를 실제로 입증해 보인 다음에야, 내가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정도의 평가를, 아니 그 절반만이라도 받을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배낭여행을 그리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다. 여행을 떠나 세계를 만나면 만날수록 내가 살던 동네가 얼마나 비좁은 공간이었는지 절감할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를 통해 내가 겪은 실패라는 게 사실은 대단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세계는 겨우 학력고사 점수 따위로 성공과 실패를 논하기엔 너무 컸다.
 
하지만 내가 그 우울과 피로를 완전히 떨쳐버릴 수 있게 된 건 서른이 넘어서다. 서른 초반의 어느 봄날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중략) 그날 문득 난 내가 참 즐겁게 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하고 싶은 건 뭐든 하고 살고 있었다. 누구의 승인도 받지 않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그저 그 일을 하면 재미가 있겠는가 하는 것만이 기준이었다. 그 일로 돈을 얼마나 벌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은 후순위였다.
 
그리고 그럴 수 있었던 건 부모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 공부 잘하는 아이였던 시절 내게 걸었던 기대들을, 어느 순간부터 저버렸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 역시 알게 되었다. 난 더 이상 부모나 주변 사람들의 기대나 평균적인 사회 인식을 내 행동의 기준으로 삼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고 의식적으로 그렇게 노력한 건 아니었다. 그저 그런 것들을 잊고 살았던 게다. 그제야 비로소 서울대에 떨어진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진심으로 깨닫게 되었다. 이 말은 해본 적이 없다. 자기합리화로 여길 테니까. 하지만 아니다. 자존감 덕분이다.  
 
자존감은 자신감과는 또 다르다... (중략) 난 다른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날 입증해 보이려 했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이 내게 기대했던 것들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 바동거렸다.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승인을 다른 이들로부터 따내려 했다. 하지만 그날 난, 내가 가진 자산과 능력과 상태 모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리고 거기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내가 가진 것들이 백 점짜리여서가 아니다. 부족해도 그게 있는 그대로의 나이기에. 내가 나 아닌 누군가가 될 수는 없기에.
 
자존감이란 그런 거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부족하고 결핍되고 미치지 못하는 것까지 모두 다 받아들인 후에도 여전히 스스로에 대한 온전한 신뢰를 굳건하게 유지하는 거. 그 지점에 도달한 후엔 더 이상 타인에게 날 입증하기 위해 쓸데없는 힘을 낭비하지 않게 된다.
 
만약 내가 서울대에 갔더라면 분명 그렇게 살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의 수많은 가치 중 겨우 공부 하나 잘하는 걸 가지고 스스로 존재 자체가 우월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어린 시절의 편협하고 유치한 멘탈리티, 그걸 결코 완전히 내려놓지 못했을 게다...
 
난 이제 자신이 온전히 자기 욕망의 주인이 된다는 게 얼마나 힘이 드는 것인지 안다. 그래서 이제 누구나 기대를 저버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대를 저버리는 연습 없이는, 평생을, 남의 기대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쓰고 만다. 단 한 번밖에 없는 삶에 그만한 낭비도 없다. (26~29쪽)



둘째로는, 작은 키 때문에 늘 우울하다는 고민의 근본해결책으로 제시한 '삶에 대한 장악력'이다. 물론 이것도 자존감이 우선되어야 할 조건이겠다. 어설픈 위로보다는 키가 작은 것은 불리한게 맞다는 '진실'을 못박고 있지만, 진정으로 그 사람을 왜소하게 만드는 것은 키 자체가 아니라 그 키로 인해 위축되는 자신이라는 진실 역시 일깨워주고 있다. 나폴레옹과 마오쩌둥, 마라도나등의 예에서 불 수 있듯이, 자신의 삶을 자신의 기준으로 장악해나갈 때 뿜어져 나올 아우라는 '뼈의 길이'가 줄 수 있는 인상 따위와는 결코, 비교할 수 없다.

우리의 인생에서는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알 수 없다. 이런 삶의 불확실성을 해결할 특별한 비법은 없을 것이다. 그것을 삶의 당연한 부분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삶을 긍정하는 것은 자기기만이다. 삶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두려움을 갖는 건 불완전한 인간으로선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오히려 불완전한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삶의 공포와 마주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자신의 삶에 대해 갖출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라고 저자는 말한다. 두려운 삶의 문제들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인정하고, 그것을 무언가에 의지하여 해결해주기를 바라는 것보다는 스스로 대처하겠다는 결의, 이것이 삶에 대한 장악력이다. 그게 있는 자는 외모와 상관없이 섹시하다는 말, 동감한다.



세번째로 들 수 있는 것은 '자기객관화'이다. 그리고 이에 이르는 가장 유용한 방법인 '밖에서 보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열등감 때문에 여친에게 학력과 집안배경 등을 속이는 거짓말을 했다는 고민에 대해 뜬금없이 '여행을 가능한 한 많이 하라'는 해결책을 내놓은 것도 이 때문이다. 비교우위를 통한 자신감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긍정하는 절대적 자신감은 바로 이 '자기객관화'에 이르렀을 때 가능하다.

저자는 이탈리아 여행 중 숙소 삐끼에 대한 대응이 인종마다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분명 고객의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상대가 백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동양인들은 저자세가 된다. 그러나 동남아의 나라들을 방문할 때는 동양인도 안 그런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백인인 상대가 나쁜 의도를 가진다면 동양인인 나를 압도해 내 의지에 반하는 불이익을 줄 수도 있다는' 백색 공포가 삐끼 앞에서조차 위축된 태도를 만들기 때문인데, 실제로 그 상황을 생각해보면 그럴만도 하다. 따라서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만나기 위해서는 잘 사는 나라에 가서 위축되지 말고 어려운 나라 가서 유세 떨지 말자고 한다. 그래야 있는 그대로의 여행을 통해 제대로 자기객관화를 할수 있을테니까.

그 외에 여러가지 에피소드들과 기발한 고민과 답변들이 있지만, 모든 해결책들의 근본이 이 세 가지 정도로 압축된다고 본다. 이것을 깨우쳐 진정한 어른이 되지 않는 한, 끊임없이 비슷한 고민들이 꼬리를 물고 인생 앞에 나타날 것이다. 이 정도면 '남의 삶에 주석 다는 건방을 떨만'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중간중간 재미와 뼈가 동시에 있는 칼럼들이 많아서 '10대들에게 고백함' 중 일부를 적어본다.  


- 말 나온 김에 딴것도 고백하자. 공부 열심히 하면 훌륭한 사람된다? 거짓말이다. 우리나라 공교육 열심히 따라가면 시험 잘 치는 사람 된다. 그럼 시험 잘 치면 훌륭한 사람 되나? 아니다. 시험 잘 치면 점수 잘 나온다. 하지만 점수와 훌륭한 사람과의 상관관계, 없다. 그럼 판검사나 의사들은 다 훌륭하시게. 그 양반들 중 안 훌륭한 분들도 무척 많으셔. 단, 점수 높으면 연봉 높을 확률, 상대적으로 높다. 그건 맞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건 또 아니다. 돈 버는 능력과 공부 능력, 별개다. 그럼 왜 어른들이 공부 공부 하나. 불안해서. 공부 외에 어떻게 훌륭한 사람 되는건지 어른들도 모르니까. 아니 보다 근본적으로는 어떤 사람이 훌륭한 사람인지, 어른들 모른다. 물론 공부 잘하면 좋다. 유용하다. 하지만 공부와 훌륭한 사람, 관계없다. (43쪽)




글쓴이 : 이원종

저자이자 독서경영 전문가로 활동 중인 이원종님은 중앙대학교 수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이지리더 독서경영 연구소 대표와 오간지프로덕션 북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입니다. 명지대, 한성대, 오비맥주,인천/안산 CEO아카데미 등 주요 기업체 특강 등을 통해 ‘책만이 살 길이다’, ‘독서경영을 바탕으로 한 성공의 길’ 등의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주)세계화전연구소 성공칼럼니스트, YES24 스타 블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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