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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상익 Apr 22. 2019

(서평)『사기 열전』사마천 지음

악의 열전 – 약소국의 운명을 바꾸고자 했던 사마천

사기열전 : 악의 열전 – 약소국의 운명을 바꾸고자 했던 사마천 / 민음사 /이원종 서평


 한 많은 인생의 굴곡 속에서도 사마천은 불굴의 집념으로 불멸의 역사서인 '사기'를 완성했다. 그가 당했던 궁형(고대 중국에서 실행하던 5가지 형벌 중의 하나)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선대로부터 이어온 역사서의 저술을 완성하기 위해 선택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으며, 치욕과 생존 확률의 이중고를 감내해야했던 사마천의 운명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가혹했을 것이다.


사기는 130편의 글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70편을 차지하는 열전은 주로 제왕과 제후를 위해 일한 인물들의 전기를 다루고 있으나, 자객 열전, 골계 열전, 화식 열전 등 인물을 분류하는 데 특정한 기준을 두고 있지 않은 점이 더 재미있다. 그 중 '악의(樂毅)열전'은 조금은 생소하게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삼국지에서 제갈량은 종종 자신을 관중과 악의에 비교했다 할 정도로 특출한 인물인 것은 분명하다. 관중이야 중국 전 역사를 통틀어서도 손가락에 꼽힐 만한 영향력 있는 인물이고, ‘관포지교’의 일화나 제환공을 도와 춘추시대의 첫 패업을 이룬 일 등이 유명하지만, 상대적으로 악의는 '생몰 연대'도 미상이고 서술된 분량도 많지 않아 알려진 바가 많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갈량은 어떤 이유로 관중과 더불어 악의를 롤모델로 꼽은 것일까. 



전국시대 연(燕)나라의 명장, 악의


악의는 위(魏)나라 사람으로 여러 곳을 떠돌다가 연(燕)나라의 소왕에게 중용되어 활약했는데, 연나라는 중국 최북방에 위치한 약소국으로서 북쪽의 오랑캐들과 남쪽의 강대국들 사이에서 시달렸던 형국이 지금의 우리나라와 비슷한 면이 많다. 훗날 삼국시대 촉나라의 처지와도 비슷해서 제갈량이 많이 참고하지 않았을까. 악의가 위나라에 있을 때 연나라에서 난이 일어난 틈을 타 제나라는 연나라를 정벌했다. 연나라 소왕은 제나라에게 당한 수모를 씻고자 전국 각지에서 인재를 구하기 시작했다. 이에 천리마의 일화로 유명한 곽외를 먼저 중용하는데, (그 일화란 어떤 사람이 죽은 천리마의 뼈를 사왔더니 그 소문이 퍼져 짜 천리마 세 필을 얻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말한다.) 그러니까 곽외는 자신을 천리마의 뼈에 빗대어, 그를 먼저 예우해주면 각지에서 인재들이 그 소문을 듣고 찾아올 것이라 한 것이다. 그의 말대로 연소왕에게 많은 인재들이 찾아왔으며 악의도 그 중 한명이었다. 


연소왕의 동상

연소왕은 악의에게 제나라를 칠 방법에 대해 조언을 구했다. 악의는 냉철한 현실파악을 통해 연나라의 국력으로는 -한 때 춘추시대의 첫 패업을 이루기도 했던- 강대국 제나라를 제압할 수 없다고 말하고, 주변의 진,조,위,한,초나라와 연합하여 결국 제나라의 70여개 성을 함락시켰다. 제나라는 멸망직전까지 이르렀는데, 여기서 악의와 연나라에 있어 통한의 사건이라 할 '연소왕의 죽음'을 맞게 된다. 연소왕의 뒤를 이은 연혜왕은 오래전부터 악의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는데 거기에다 제나라 '전단'의 이간질에 넘어가서 악의를 불러들이고 '기겁'을 대신 전쟁터로 보내고 만다. 연나라로 돌아가면 죽게 될 것이라 생각한 악의는 조나라에 투항했는데 조나라에서는 그에게 관직을 주어 받들었다. 


반면 '기겁'은 무능한 사람이어서 제나라에게 빼앗았던 땅을 다시 모두 잃게 되었다. 연혜왕은 악의가 망명한 조나라가 자신의 연나라를 치지 않을까 두려워 악의를 꾸짖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자신의 잘못된 명령에 대한 사과를 담은 서신을 보냈는데, 악의는 그에 대한 장문의 답장을 적어 다시 연혜왕에게 보냈다.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보연왕서(報燕王書)'로서 제갈량의 출사표와 더불어 중국문학사의 명문으로 꼽히며, 두 문장은 비슷한 점이 매우 많다고 한다. 이 글을 통해 악의는 자신의 어쩔 수 없었던 선택에 대한 해명과 한 때 은혜를 입은 연나라에 대해 복수를 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뜻을 동시에 전했다. 연혜왕은 그의 아들 '악간'에게 관직을 주어서 대접했고, 조나라와 연나라는 한동안 우호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는데, 이는 난세였던 춘추전국시대 치고 드문 일이다.




 중국역사에 큰 획을 그을 기회를 연나라에 안겨주었던 악의였지만, 늘 문제는 믿을 사람을 끝까지 믿지 못하고 이간질에 놀아나는 리더의 오판인 듯 하다.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았던 악의에 대해 지조가 없다고 비난했던 사람들도 많지만, 그는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자신이 떠나온 연나라를 비방하지 않았다. 허울뿐인 명분에 얽매이지 않았던 그의 처세와 진심을 담은 문장은 후세 사람들로부터 감동과 존경을 이끌어내고 있다.  


- 신이 듣건대 “옛 군자는 사람과 교제를 끊더라도 그 사람의 단점을 말하지 않고, 충신은 그 나라를 떠나더라도 자기 결백을 밝히려고 군주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는다.”라고 합니다. (506쪽, 보연왕서 중)







글쓴이 : 이원종

저자이자 독서경영 전문가로 활동 중인 이원종님은 중앙대학교 수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이지리더 독서경영 연구소 대표와 오간지프로덕션 북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입니다. 명지대, 한성대, 오비맥주,인천/안산 CEO아카데미 등 주요 기업체 특강 등을 통해 ‘책만이 살 길이다’, ‘독서경영을 바탕으로 한 성공의 길’ 등의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주)세계화전연구소 성공칼럼니스트, YES24 스타 블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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