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완성은 아상을 죽이는 것
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 - 지혜의 완성은 아상을 죽이는 것
도올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이원종 서평
자신의 신앙과 판단에 따라 한국신학대학에 입학했던 도올 저자는 1년 후에 신학대학을 떠나 고려대 철학과에 편입했다. 여러 철학사상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불교학에 대한 이해 또한 깊어졌는데, 실제로 스님이 되어 불교를 체험해보지 않고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다.
그래서 휴학을 하고 고향인 천안의 광덕사에 스스로 머리를 깎고 스님 옷을 구해 입고 스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열심히 좌선도 하고 철학서적도 읽고 스님들과 대화도 나누며 지내던 중 어느 날 변소에서 반야심경이 쓰여진 종이쪽지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한학의 소양이 어느 정도 있었던 저자는 매일 같은 장소에서 한 문장 한 문장 그 의미를 추론하게 되었고 그 종합적 의미를 발견한 순간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고 밝히고 있다.
260자로 이루어진 반야심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불교사의 지식이 필요하고 우리나라 불교의 흐름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그는 그의 도반 중 한 명인 명진 스님을 ‘진짜 중’이라고 일컫는데, 진짜와 가짜의 기준을 구분하기 어렵고 이런 표현이 많은 반발을 부른다는 사실 역시 알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걱정에 매여 주저하는 것을 명쾌하게 짚어주고 있다. 복잡하게 근거를 들이대지 않더라도 상식선에서, 혹은 본능적으로 진짜와 가짜가 무엇인지 우리는 어렵지 않게 구분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 불교는 심한 핍박을 받았지만 그런 핍박 속에서도 임진왜란으로부터 나라를 구해낸 명장으로 서산대사를 꼽는다. 저자는 그에게 이순신 장군과 같은 무게를 부여하고 있다. 실제로 당시 승병의 활약은 대단했다. 스님들은 출가한 사람이라 가족에 얽매이지 않았고, 좌선과 무술은 같은 정신수양법이기 때문에 체력과 무술실력을 갖춘 사람들이 많았다. 계율을 지키는 스님들의 조직력과 상하명령계통의 질서와 기동력, 정신력 등 그들의 활약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한 가지 의문이 들 수 있는 것은 살생을 금하는 불교의 계율이다. 그러나 살생을 목적으로 남의 나라를 침략한 왜구를 죽이는 것은 살생의 개념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논리가 너무나 자명하다. 지나치게 계율에 얽매이거나 잘못 적용하는 것 역시 문제겠지만 거기까지 갈 것도 없는 것이다.
- 스님은 기본적으로 민중의 시주에 의하여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 민중이 살해당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민중을 보호하고 구해야 하는 업무입니다. 시주(施主)를 보호하는 것이야말로 스님들의 자비행인 것입니다. 왜군을 쳐부수는 것이야말로 스님들의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자비였습니다. (31쪽)
승군을 이끌고 평양성과 한양 수복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그리고 학문과 사상으로도 높은 경지에 올랐던 서산대사와 더불어 그 맥을 이은 한국불교의 거목 경허 스님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는데, 그와 관련된 일화를 소개하며 그 일화가 저자 자신의 평생에 영향을 지배했다고 한다. 일화에 따르면, 경허가 어린 사미승을 데리고 탁발에 나섰는데 한 여인이 경허에게 자신을 업고 개울을 건네 달라고 부탁했다. 사미승은 스님이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냐며 그 여인에게 화를 냈지만, 그 여인은 수고비를 준다고 하며 거듭 부탁했다. 경허는 곧바로 그 여인을 업고 개울을 건넜다. 그러나 품삯은 필요하지 않다며 대신 그 여인의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철썩 때렸다. 그게 무슨 짓이냐며 따지는 사미승에게 돈으로 뭐든 할 수 있다고 믿는 것들은 그렇게 버릇을 고쳐줘야 한다고 답하고 나서 그 둘은 절로 돌아왔다. 그런데 사미승이 잠을 못 이루고 뒤척이다 경허에게 그 날 있었던 일에 대해 따져 물었다. 요지는 계율을 지켜야 할 스님이 왜 젊은 여자를 등에 업고 엉덩이까지 쳤냐는 것이다. 그러자 경허는 그 사미승을 이렇게 꾸짖는다.
“나는 그 여인을 개울가에 내려놓았다. 어찌하여 너는 아직까지 그 여인을 등에 업고 있단 말이냐?”
“예에?”
“내가 만약 환갑 넘은 할머니를 등에 업어 건넸다면 네가 아직도 그 할머니를 가슴에 품고 잠을 못 이루겠느냐?” (74쪽)
이것은 ‘방하착(放下着)’에 관한 일화이다. 흔히 방하착이라고 하지만 여기서 저자는 ‘방하저’라고 읽는 것이 바른 읽기라고 한다. 어쨌든 이 말은 ‘내려놓음’을 의미하는데, 그 사미승을 괴롭혔던 것은 여인이 아니라 여인에 대한 의식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냥 내려놓으면 되었을, 아무 문제도 일으키지 않는 짐이었던 것이다. 그냥 내려놓은 데에는 어떤 조건도 도움도 필요하지 않다. 그저 내려놓으면 될 일을 우리는 짊어지고 점점 더 키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일화는 흔히 나오는 선문답 같이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선불교의 나라인데도 불구하고 민중들은 선사들의 어록 같은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것은 깨달았다고 잘난 체 하는 사람들의 “개구라”에 불과한 것이어서, 선사들의 싯구절이 와닿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사랑하는 책은 오직 금강경과 반야심경, 이 2권의 경전인데, 이 둘은 모두 대승불교의 정수를 담고 있는 반야경전 그룹에 속하며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불교에 관한 교리는 ‘삼법인’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 열반적정의 ‘사법인’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것이 불교의 전부라고 할 수 있지만 그 하나하나를 깨닫는 것은 많은 공부를 요한다. 실제 이 책의 반야심경 주해 역시 몇 페이지 되지 않는다. 저자는 금강경과 반야심경을 관통하는 주제로서 ‘무아(無我)’라는 가르침을 강조한다.
- 불타나 예수나, 그들의 역사적 인간으로서의 위대성은 단 하나! “아상(我相)”을 지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중략) 불교가 무한한 혁명을 수용할 수 있는 것은 그 최초의 원초적 핵심에 불교가 이래야만 한다는 ”아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지혜의 완성“ ”지혜의 배를 타고 피안으로 고해를 건너가는 과정“이라는 것은 바로 아상을 죽이는 것입니다. (192쪽)
글쓴이 : 이원종
저자이자 독서경영 전문가로 활동 중인 이원종님은 중앙대학교 수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이지리더 독서경영 연구소 대표와 오간지프로덕션 북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입니다. 명지대, 한성대, 오비맥주,인천/안산 CEO아카데미 등 주요 기업체 특강 등을 통해 ‘책만이 살 길이다’, ‘독서경영을 바탕으로 한 성공의 길’ 등의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주)세계화전연구소 성공칼럼니스트, YES24 스타 블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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