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책을, 어떻게 쓸까?
많은 강사들은 국가나 민간단체에서 주는 자격증을 따기 위해 열을 올린다. 대부분은 자격증이 있으면 뭔가 더 유리한 상황에 놓이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이지만, 실제로 적지 않은 강사들이 계속해서 새로운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을 보면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교육 담당자가 볼 때 자격증은, 관련 분야에 전문성이 증가되었음을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이기는 하다.)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이지만 자격증이 주는 가장 큰 이점은 프로필에 한 줄을 보탤 수가 있고, 교육 담당자로 하여금 이러이러한 자격증도 땄는데 설마 강연을 엉망으로 하겠어?라는 안도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럼 지금부터 자격증의 종류에 대해 먼저 알아보자.
기본적으로, 자격증은 "국가자격증"과 "민간자격증" 두 가지로 나뉜다. 국가자격증은 다시 "국가기술자격(국가기술 자격법에 의해 규정된 국가자격으로 한국산업인력공단, 대한상공회의소 등의 기관에서 정부로부터 위탁받아 시행, 예 : 경영지도사. 청소년 상담사 등)"과 "국가 전문자격(각 개별법에 규정된 자격으로 면허적 성격이 강하며 정부부처에서 주관, 예 : 변호사, 평생교육사 등)"으로 나뉘는데 아무래도 공신력 있는 국가자격증이 민간자격증보다는 취득하기 어려운 편이다. 그렇다면 전문 강사인 당신에게 어떤 국가자격증이 도움이 될까? 간단하다. 당신의 커리어를 살릴 수 있는 자격증을 찾아서 취득하면 되는데 예를 들어 평생교육이 전공인 강사는, 교육부가 주관하는 평생교육사 자격증을 취득한다거나, 청소년 코칭을 주로 하는 강사는, 한국산업인력공단의 청소년지도사 자격증을 따는 식이다.
민간자격증이란, 국가기관이 아닌 협회나 단체 등 민간업체에서 시행하는 자격증으로 특별한 심사과정 없이도 등록이 허용되다 보니 현재 지나치게 많은 자격증들이 난립하고 있다. 국무총리 산하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 직업능력개발원에 따르면, 2015년 대한민국의 민간자격증의 수는 17,289개에 달한다고 하는데,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교육 담당자들도 강사들이 취득한 민간자격증에 대해서는 그저 참고만 할 뿐이지 크게 인정해주지는 않는 실정이다.
한편, 이러한 상황을 악용하여 마치 국가자격증 인양 위장하여 자격증 장사(?)를 하는 곳도 많은데 이런 이상야릇한 자격증에 현혹되지 않으려면 자격증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한국 직업능력개발원의 민간자격정보서비스(https://www.pqi.or.kr)에 접속하여 공인된 자격증인지를 확인하는 것인데, 이 곳에 등록되지 않은 자격증은 효력이 없으니 주의해야 한다. (자격증과 수료증을 동등하게 생각하는 강사들도 의외로 많은데, 수료는 말 그대로 교육을 수료했다는 의미이지, 해당 교육에 대한 자격의 증명이 결코 아니다.)
자격증을 가진 강사들이 늘어남에 따라, 강사들 간의 경쟁도 더욱 치열해지고, 그 결과 자격증에 대한 효용가치는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데 강사인 당신이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시장이 원하는 강사는 훈장과 같이 많은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는 강사가 아니라, 강연을 탁월하게 잘하는 강사라는 사실이다. 나는 강사들이 불필요한 자격증을 따기보다는, 그 노력으로 책을 쓰라고 권하는 편인데 지금부터는 책을 쓰는 것이 강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아보자.
자격증보다는 책을 써라
나는 "강사 세계에서 학력은 얼마나 중요할까"항목에서 저자가 되면 석사 학위에 맞먹는 위력을 발휘한다고 한 적이 있다. 왜 그럴까? 당신의 이름으로 쓴 책이 나오면, 당신은 그 순간부터 강사가 아닌 저자로 대접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론에도 알려지며 한건, 두건씩 강연도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러나 당신이 유명한 저자가 아니라면 출판사가 대대적인 홍보를 해주지는 않는다.)
먼저 책을 쓰면 좋은 점으로는, 당신의 전문성이 축적된다는 것이다. 얇은 책을 한 권 쓰는 것도 관련 분야에 대한 공부는 필수다. 즉 당신이 책을 쓰는 과정에서 저절로 공부가 되기 때문에 자연스레 관련 분야에 대한 지식의 폭이 넓어진다. 또한 책을 쓰면 강연장에서도 한 권의 책을 쓴 저자로서 서는 것이기 때문에 청중도 훨씬 귀를 기울인다. 책은 아무나 쓸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 사실을 청중도 잘 알고 있다.
둘째, 책을 쓰면 저자라는 타이틀이 생겨 후광효과를 얻게 된다. 당신의 학벌과 경력이 빈약하다고 한 번 가정해 보자.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실무자는 당신을 강사로 섭외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실무자가 조심스럽게 당신의 프로필을 상사에게 내밀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대체 무슨 근거로 교육을 이 강사에게 맡기느냐’며 상사가 불호령을 내린다. 하지만 당신이 책을 쓴 저자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실무자 입장에서는 "이 강사가 이러이러한 책을 쓴 저자입니다."라고 하면 보고하기도 좋고, 한 사람의 저자로서 일단은 그 분야의 전문성만큼은 인정받게 된다. 즉, 당신의 빈약한 프로필을 어느 정도는 책으로 커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책을 쓰면 다양한 홍보채널을 통해 강연 기회가 주어진다. 출판사의 출간기념회, 신문 지면 광고 등을 통해 당신의 책이 세상에 노출되면서 언론 인터뷰도 하게 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TV에도 등장하며 유명세를 누리기도 한다. 당연히 강연 요청도 그때 가장 많이 들어온다. 최근에는 백화점과 문화센터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기관에서 "북포럼"이라는 형식으로 이제 막 신간이 나온 저자들을 초청해 강연을 듣는 모임도 많아졌는데 이렇듯, 당신의 이름으로 된 책을 한 권 쓰면 강력한 홍보도구로 활용할 수 있는 무기가 된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당신이 책을 쓰면 네이버에 ‘작가’로 인물검색 등록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등록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교육 담당자는 강사를 섭외하기 전에 인터넷을 검색해 강사의 지난 이력과 강연 정보를 살펴보는데 당신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찾아볼 수 없다면 어떻게 당신을 신뢰하겠는가? 하지만 당신이 저자가 되면 당신의 프로필도 등록이 되고 강사로서 공신력도 생겨 다른 강사들에 비해 나름대로 유리한 고지에 서게 된다.
무슨 책을, 어떻게 쓸까?
책을 출간하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출판사와 정식 계약을 맺는 것과 자비로 출간하는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당신이 원하는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출간하는 것이겠지만 매일 수많은 원고가 도착하는 출판사 입장에서 볼 때 당신의 글이 특출 나게 매력적이지 않다면 책을 내주지는 않는다. (당신이 아직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꼭 책을 내야겠다면 자비 출간도 고려해보라. 실제로 그런 책은 의외로 많이 출간되는데, 해당 출판사에 원고를 넘기고 비용을 지불하면 책을 제작해주는데 나중에 책을 건네받아 주변 지인이나 거래처에 배포하는 식으로 영업을 하면 된다. (요즘에는 출판사에서 ISBN(국제표준 도서번호) 등록도 해주고, 대형문고 매대에도 깔아준다.)
책을 쓸 때는 당신의 커리어와 관련된 책을 쓰는 것이 아무래도 좋다. 요즘 젊은 강사들은 자신의 독특한 경험이나 청춘에 대한 단상을 책으로 많이 내는데, 별로 추천하는 방식은 아니다. 왜냐하면 한시적으로 그러한 부류의 강연은 많이 들어오겠지만, 길게 보았을 때 본인의 커리어에 별반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설사 팔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자신의 분야와 관련된 책을 자꾸 내놓아야 강사로서의 몸값이 높아진다고 나는 믿는다.
한편, 관련성이 없는 여러 주제를 다루는 저자가 있고, 한 분야만 전문적으로 파는 저자도 있는데 만약 저자가 출간한 책의 주제가 산만하다면, 즉 관련성 없는 주제를 이것저것 다루고 있다면 책의 깊이는 좀 덜 할지 몰라도 강연 에이전트인 나의 입장에서는 가장 반기는 강사다. 왜냐하면 강사로서 활용도가 높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A라는 스피치 강사가 '이미지 관리'에 대한 책도 썼다면, 나는 그를 스피치뿐만 아니라 이미지 강사로도 추천할 수 있게 된다. 즉 강사 입장에서도 자신이 강연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이 넓어지는 셈이다. (그래서 거미줄처럼 여러 분야에 걸쳐 수십 권이 넘는 책을 쓰는 강사들도 나오는 것이다.)
책을 쓰는 저자의 특성으로는, 단 기간에 몰아쳐서 책을 쓰는 강사도 있고, A4 2매씩 매일 꾸준하게 집필하는 강사도 있다. 당신이 아침형 인간이라면 방해받지 않는 새벽에 쓰면 가장 좋겠지만 각자의 처지와 여건이 다르니 당신에게 가장 적합한 시간대를 찾아 쓰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한편, 대필 작가나 윤문 작가도 많은데 기업의 CEO라든지 정치인들의 자서전은 대개 이들이 손을 많이 본 책이다. 물론, 유명강사들 중에도 더러 있다. 대필 가격은? 나는 몇백만 원에서부터 2천만 원까지는 들어봤는데 내 전문분야가 아니라 잘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당신이 직장인인데 대체 언제 책을 쓰냐고? 내가 아는 어느 대기업에 다니는 강사는 마케팅 분야에 10여 년간 몸담았는데, 주말 시간을 몽땅 바쳐 마케팅과 관련된 책을 내었다. 그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에 먼저 책을 낸 직장인 강사들뿐만 아니라 직장 상사에게도 인정을 받았다고 하였는데 지금은 꽤 많은 강연을 주말을 이용해 다니고 있다고 한다. 직장인들이 극복해야 할 것은 ‘고과 관리’와 ‘주변의 눈치’ 일 것이다. 하지만 기필코 책을 써야겠다는 강한 열망으로 자신의 책을 써낸 직장인들을 나는 한두 명 본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 수준에 무슨 책이냐고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책을 쓰면 활자화가 되어 평생 남을 텐데 좀 더 내공을 쌓고 내겠다고? 아주 틀린 생각은 아니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오만일 수도 있다. 언젠가 “인간이 아무리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도 신에 대해 알 수 없고, 지렁이가 아무리 열심히 땅을 기어도 하늘을 나는 새만큼은 세상을 볼 수 없는 법이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마찬가지로 사람이 죽을 때까지 이 세상에 대해 얼마나 알고 죽을까? 아마 한참이나 시간이 흘러도 당신에게 완벽한 책을 쓰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그저 자신의 20대 혹은 30대에 가진 생각들을 담담하게 정리하여 나가고, 나중에 4,50대에 재수정해가면서 그렇게 와인처럼 무르익어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첫 술에 배부르랴? 책도 마찬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