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위로가 되는 사실은 상처만 가지고 있는 사람도 없다는 것.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상처를 가지고 태어난다.
평생 동안 지워지지 않을 그런 상처를 말이다.
그 상처가 뭐냐고?
아래 복부의 중간쯤, 덩그러니 놓여있는 동그란 모양에 상처.
바로 배꼽이다.
배란일 이후, 대략 266일 동안 엄마 뱃속에서 머물다,
세상 밖으로 나온 첫날.
그날 우리는 평생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몸 중앙에 떡하니 새겼다.
내가 처음 세상 밖으로 나온 그 날.
그날은 물론 나와 우리 가족들에게 있어 경사스럽기 그지없는 날이었겠지만,
동시에 내가 처음으로 상처를 입고, 또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게 된 그런 날이기도 하다.
평생 지워지지 않을 큼지막한 상처를 새기면서 태어난 그 순간 이후로,
나는 상처를 참 많이 받기도, 그리고 주기도 했다.
피딱지가 생기는 그런 상처뿐만 아니라, 마음 깊은 곳을 후벼 파는 그런 상처까지 말이다.
나는 상처를 자주 입는 사람은 아니었다.
신중하다기보다는 그냥 느린 편의 사람이라
넘어져도 크게 다치지 않았고,
예민하다기보다는 그냥 덤덤한 채로 있는 그런 사람이라
속상한 일을 자주 겪지도 않았다.
상처는 잘 생기지 않지만
뭐, 그래도 한번 생긴 상처는 아무는데 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그런 사람이랄까.
하지만 한심스럽게도, 나는 상처를 받기만 하는 사람은 못 됐다.
모진 말로 상대방의 마음을 후벼 파고,
뭐든지 내 위주로 생각하고,
때로는 절대 넘어오지 못하도록 가차 없이 선을 그어 버리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상처를 이겨낼까?
하루에도 몇 번씩 새기기도 하고, 새겨지기도 하는 그런 상처를.
그저 상처를 받기만 했더라면, 나는 절대 지금까지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상처에 둔감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지만,
지금까지 내 몸에, 그리고 내 마음에 생긴 상처들은 적잖이 쓰렸으니까.
나에게 있어서 상처를 해결하는 방법은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내가 그만큼 단순한 사람이라는 사실의 방증이었겠지.)
몸에 생긴 상처들이야말로 더없이 다루기 간단한 일이었다.
대충 봐서 나을만한 상처는 치료해 버리고,
그렇지 못한 상처들은 대충 숨겨버리면 그만이니까.
그렇다면 마음에 생겨버리는 상처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마음에 생기는 상처라고 별다를 게 있겠냐마는,
마음에 생기는 상처에는 몸뚱이 생기는 그런 상처들에게 보다는,
조금은 더 민감하고 세심하게 다가갈 필요가 있었다.
몸에 생기는 상처들과 달리 마음에 생기는 상처는 겉으로 잘 보이지 않고,
나도 모르게 일어나는 자기방어에 의해 꼭꼭 가려져,
상처가 아닌 척 나 몰라라 하는 경우가 다반사일 테니.
나의 경우에서 생각해보면, 마음의 상처를 가장 잘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여행이었다.
여행은 나에게 있어서,
주로 상처를 받는 곳에서부터 벗어나는 도피였고,
소소하고, 또 거대한 행복으로 지친 마음을 치유하는 '힐링'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꼭 여행을 떠나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여행은 철저히 나의 경우에서의 치료법이었으니까.
자신이 좋아하는,
생각하기만 해도 입가에 옅은 미소가 띠는
그런 일들을 해보라는 말이었다.
그 일들은 꼭 대단하거나 거창한 일은 아니어도 괜찮다.
아주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그런 일들 역시
내 마음에 생긴 상처들을 치료하기에 부족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상처받는 것을 피할 수 없다면,
우리는 반드시 상처를 이겨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꼭 거창한 방법은 아니어도 상관없다.
출근길에 신나는 노래 듣기,
밤늦게까지 좋아하는 책 읽기,
사랑하는 사람들과 만나 수다 떨기 같은 사소한 일들이
마음 깊은 곳에 새겨진 상처를 치료하는 유일한 치료제 일 수도 있으니까.
짧지 않은 글을 장황하게 이어가다 보니,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났다.
내가 그녀의 마음을 후벼 파며 상처를 줬던 일들은 비단 한 두 번의 일이 아니었을 텐데.
그리고 그렇게 시도 때도 없이 상처를 새기는 자식들이
그녀에게는 한, 두 명도 아니고 무려 넷이나 있었는데.
엄마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그냥 하는 그런 말이 아니라 정말로 말이다.
엄마에게도 상처를 해결하는 엄마만의 방법이 있었겠지.
물론 여러 가지 방법이 있었겠지만,
문득 개중 하나는 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녀에게 무수히도 많은 상처를 줬겠지만,
동시에 무수히도 많은 상처를 치료해줬더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였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결정했다.
상처를 주는 것을 멈출 수 없다면,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그런 사람이 되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