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대할 때는 조금 더 차분하게.
병원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 병원을 좋아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마는, 나는 유독 병원을 싫어한다. 두려움이나 걱정 같은 단순한 이유 때문은 아니다. 병원의 분위기, 죽고 사는 것이 무덤덤한 일상이 되어버린 그 분위기가 싫은 것이다.
어쨌든, 그 날은 친구의 병문안 차 대학병원에 들렀다. 몇 년을 나도느라 몰랐는데 친구가 아주 아프단다. 매번 그랬던 것처럼 눈 딱 감고 모르는 척할까 하다가, 누군가 대못으로 양심을 꾹꾹 누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서둘러 짐을 챙겨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에 다 와서는 곧장 옥상으로 올라갔다. 병원에서 유일하게 활기가 느껴지는 장소가 옥상 정원이었기 때문이다. 우중충한 회색빛의 병실로 들어가기 전에, 이미 곯다 못해 바싹 메말라버린 조붓한 복도를 걷기 전에 내 마음을 안정시킬 필요가 있었다.
규모가 큰 병원이라 그런지 정원에는 사람이 꽤 있었다. 나는 병원 안에서 처음 듣는 웃음소리를 배경으로 먼지 묻은 벤치 위에 앉았다. '아, 이렇게 바싹 말라붙은 병원에도 사람이 살긴 사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벤치에 앉아 노트북을 꺼내고 사진을 정리하는데, 뒷자리에서 이야기 소리가 들려왔다. 다른 이의 대화 소리를 엿들을 때면 왜인지 모를 죄책감이 들곤 하는데, 오늘은 애써 무시했다. 이 잿빛 건물 안에서 생기를 느낄 수 있는 것은 사람이 유일하니까.
하던 일을 멈추고 조용히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아직 뒤를 돌아보지 않아서 말하는 사람이 누군지는 알 수 없었지만, 듣기로는 건강이 안 좋은 환자가 그의 친구에게 푸념하는 것 같았다. 이야기는 따분한 조언에서 시작해 죽음까지 이르렀는데, '죽음'이라는 단어가 들려오자 나는 노트북을 덮고 정신을 모두 말소리에 집중했다. '죽음'이란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으래야 두지 않을 수가 없다. 항상 다른 사람의 이야기 같다가도 눈을 뜨면 내 앞에 와있고, 내 이야기 같다가도 정신을 차리면 떠나가는 그것이 죽음이었다.
그들의 대화 내용은 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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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저번 달에 죽을 뻔했잖아.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로."
"아, 정말 고생 많았네."
"됐어, 뭐 별거라고. 처음 병원에 왔을 때는 눈앞이 까매지면서 머리가 멍했는데, 시간이 약이더라고. 운도 좋았고."
"큰일 한 거야. 진짜 큰일..."
"만약 진짜 죽는다고 해도, 차분하게 하면 되는 거였어. 차분하게 준비하고, 차분하게 받아들이고. 그거면 되는 거였는데 내가 처음이라 그걸 몰랐네. 다음번에는 제대로 해보려고."
"농담이라도 그런 소리 하지 말어. 퇴원하면 찐하게 소주 한 잔 때려야 하니까 그거나 미리 준비해. 차분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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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의 내용은 간결하고 매끈했지만, 그 안에는 가시가 있었다. 그리고 그 가시는 나를 콕콕 찌르며 계속해서 괴롭혔다. 나는 한동안 '차분한 죽음'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차분한 죽음'
죽음만의 무게를 따지자면 그것은 0에 가깝겠다. 하지만 찢어지게 아프고 쓰린 그 과정의 무게를 모두 더한다면 죽음은 이 세상 그 무엇보다 무겁지 않을까 싶다. 당장 죽는 일, 아니 크게 아픈 일만 생각해도 손발이 저릿하며 심장이 쿵쿵 뛰는데, 그것이 과연 가당키나 한 이야길까.
그들이 떠난 후에도 나는 계속 자리에 앉아 있었다. 차분한 죽음을 이야기한 그의 얼굴을 한 번 보고도 싶었지만, 정신을 차려 보니 그는 이미 가고 없었다.
죽음을 차분하게 대할 수 있는, 또 그 과정을 차분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그는 얼마나 대단한 사람일까.
그 이야기가 사실일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 세상에 뿌려둔 미련을 죽기 전에 차분히 거둘 수 있는, 또 모든 미련을 거두고도 마지막에는 홀연히 떠날 수 있는.
내가 이래서 병원을 좋아하지 않는다.
평생 어리고 싶은데, 항상 철없고 싶은데 병원은 계속해서 나를 성장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