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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illness Jul 07. 2020

그럴싸한 여행을 위한 3단계.

마시기, 쏟아내기, 떠나가기.

하노이에 있었다.


카메라를 손에 들고, 지폐 몇 장만을 주머니에 꽂아 넣은 채 성 요셉 성당을 향해 걸었다. 어쩌면 베트남에서 가장 잦은 빈도로 소매치기가 출몰하는 성당 근처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성당 앞에 다 와서는 주변을 쓱 둘러보고 약간은 지저분한 노점 카페로 들어갔다. 바로 길 건너에 콩 카페가 있었지만, 2,000원이 넘나드는 꽤 비싼 가격의 코코넛 커피는 나에게 사치였다.

노점에서 카페 쓰어다를 한 잔 주문하고 목욕탕 의자 위에 앉았다. 대충 한 시간 정도가 지나니 다리가 조금씩 저려왔다. 저릿한 느낌이 다리를 반쯤 마비시켰을 때,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를 한 잔 더 주문했다. 다리 저림쯤이야, 커피의 가격을 생각하면 충분히 감수할만하다.


비좁은 의자에 앉아 성당 앞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내가 성당을 매일 찾아오는 이유에는 성당 그 자체가 아름다운 것도 한몫했겠지만, 그 핵심에는 사람이 있다. 아마도 이 근방이 하노이에서 가장 유동인구가  많을 것이다. 넘치도록 많은 행인과 여행자들.

자리에 앉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교차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것저것 섞인 꿉꿉한 사람 냄새를 한껏 들이마신 듯한 기분이 든다.


지난번 러시아에서 만난 한 여행자는 내게 관음증적 성향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며 타박했지만, 내가 생각하는 여행의 본질은 '훔쳐보기'에 있다.

사람 그리고 그 너머를 훔쳐보는 것. 그것이 아니면 과연 여행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카페에 들어온지도 어느새 2시간이 지났다.

따분한 마음에 호수 앞으로 자리를 옮기려는 그때, 낯익은 모습의 세 사람이 지나갔다. 어제는 호찌민 묘소였고, 그제는 응옥썬 사당과 한기둥 사원이었다. 분명 거기서 그들을 만났다.


아무 생각 없이 모두를 훔쳐보고 있자면, 둔감한 내 시선을 확 사로잡는 어떤 사람 혹은 사물을 만나곤 하는데, 그들이 그랬다.

아무 감성 없는 따분한 여행자의 모습을 하고,

기가 막힌 아름다움 앞에서 서로의 인증샷만을 남긴 후, 

택시를 불러 떠나간 그들의 모습.

그 모습이 내 마음속에 찐하게 남았다.

주제넘지만,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웃었으면,

사진보다는 마음으로 장면을 담았으면,

때로는 혼자 하는 시간도 가졌으면.


물론 짧은 기간 내에 최대한 많은 것을 담고 싶은 그들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는 바이다. 간신히 짬을 내어 온 여행에서 허튼 곳에 시간을 써버릴 수는 없을 테니.

눈보다는 카메라로 장면을 담아내고, 사람 냄새보다는 택시 안 방향제의 냄새로 기억하는, 어쩌면 그것이 가장 효율적인 형태의 여행일지도 모르겠다. 얼핏 봐도 군더더기 하나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땅따먹기 식의 여행에 얼마나 많은 의미를 담아낼 수 있겠는가.

우리는 충분히 지치고 힘든 일상을 피해서 여행을 떠나지 않았는.

여행을 단순한 업무의 일환으로 그저 해내기만 한다면, 애써 만든 여독을 제외하면 우리에게 무엇이 남는가.




여행이 집에서 보내는 일상보다 더 뛰어난 가치의 무엇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일상을 여행처럼 보낼 수만 있다면 그것은 여행만큼, 혹은 여행보다 더 아름다울 테니.


하지만 그럴 수 없어 여행을 떠나 왔다면,

간신히 돈과 시간을 내어 먼 곳까지 찾아왔다면,

조금은 더 편안하고 낭만적인 방식으로 여행을 대해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그럴싸한 여행을 위한 3단계.


1. 마음을 활짝 열고 모든 것을 마시기.

사람 냄새를 마시고,

이곳을 지나쳐간 모든 흔적을 마시고,

마지막으로는 지금의 분위기를 마시기.


2. 모든 것을 다 마시고 폐포가 잔뜩 부풀어 터질 듯한 느낌이 들 때면, 웃음과 눈물로 쏟아내기.


3. 어지간히 비워내고 미련만을 잔뜩 남긴 채 떠나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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