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정신은 꼰대의 다른 말
이 될 수도 있다는 뭐 그런 이야기.
by sangillness Jul 13. 2020
2018년 7월 말, 마지막 예약을 끝으로 상업사진을 그만뒀다.
내가 찍어내는 사진에 대한 회의감 때문이었다. (당시 사진을 찍는다기보다는 그저 마감 기한에 맞춰 공장식으로 사진을 만들었기에 '찍었다'가 아닌 '찍어냈다'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모든 사진에는 목적성이 존재한다는 의견에 크게 공감한다.
아무리 하찮은 사진, 심지어는 실수로 찍은 사진에도 촬영자의 목적이 담겨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기도 하다.
다만, 그 목적이 돈이 돼버리는 순간 사진은 한낱 불완전한 기록의 수단으로 전락해버린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때의 나는 그랬다.
"촬영자의 목적에 따라 사진의 결이 결정된다."
내가 자주 했던 표현이다. 지금도 저 짧은 문장에는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지만, 당시 나의 표현에는 뾰족한 가시가 숨겨져 있었다. 이를테면, '당신네가 찍어내는 상업사진과 앞으로 내가 찍을 지극히 순수한 사진은 철저히 결이 다르며, 물론 내 사진이 더 나은 사진이다.'와 같은….
한동안 내가 뭐라도 되는 양 그럴싸한 사진을 찍기 위해 전 세계를 오갔다.
살아있는 삶을 느끼기 위해 태국의 빈민촌에 들어가 생활했고, 노동자 처우에 관한 씁쓸한 현실을 고발하겠다며 위험한 공장과 공사현장을 드나들기도 했다. 그때 찍은 사진은 정말 좋은 사진들이었다. 어떤 사진은 가슴속에서 작은 떨림이 일게 할 만큼 감동적이었고, 또 어떤 사진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며 뻥 터질듯한 아찔함을 자아냈다.
다만 그것이 문제가 되었다.
내 사진의 스펙트럼은 무척이나 좁았다. 단순히 내가 찍어내는 사진의 스펙트럼이 좁았다면 그것은 아무 문제 될 것이 없다. 지금 찍는 사진도 넓은 다양성을 보여주지 못하니까. 하지만 당시에 나는 사진을 이해하는 데에도 좁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인정하는 사진작가는 지극히 소수였으며, 몇몇의 사진을 제외하고는 그저 아무 의미 없는 CCTV의 캡처본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심지어는 그 사진에도 어느 정도의 의미가 담겨있을 텐데 말이다.
예술의 다양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사진을 깎아내렸으며, 내 사진에도 예외는 없었다. 당시 내가 마음에 안 든다며 날려버린 사진도 수십만 장이 될 터인데, 지금도 그때 삭제한 사진을 생각할 때면 복장이 '빵'하고 터지며 저 우주까지 날아가 버린다.
흔히들 말하는 장인정신에 매몰됐던 것이다.
그렇다고 세상 모든 장인분들을 비하 혹은, 비판하려는 의도는 없다. 그냥 내가 그때 빠져있던 '장인정신'이란 녀석은 그 정도로 못나고 또 한심했다는 이야기다.
내가 몇 년을 좇던 목표는 한낱 꼰대로 가는 길에 불과했고, 사실 나는 이미 그 꼰대의 세계에 발을 담근 후였다.
이 사실을 인지한 순간 -너무나 당연하게도- 나는 깊은 슬럼프에 빠졌다.
'당장 사진을 접을 것인가'와 '그래도 꾸역꾸역 사진을 찍을 것인가'사이에서 수도 없이 고민했다. 일어나자마자 그 고민을 떠올렸으며, 심지어는 자는 동안에도 생각했다. 당연히 나는 전자를 선택했지만, 떠올렸던 생각의 두께를 떠올려 본다면 그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상업사진을 그만둔 것도,
순수한 사진을 찍겠다며 나돈 것도,
또 그것마저 그만둔 것도.
그리고 모든 것을 그만둔 후에 남은 것은 내 모자람에 대한 깊은 성찰과 반성뿐이었다.
사진에 대한 부담과 심지어는 주인의식까지 떨쳐낸 후, 나는 너무나도 보잘것없고 하찮은 사진을 찍으며 지낸다.
사진 속에 깊은 메시지를 담으려 하지도 않고, 사진을 찍는 데에 부담을 느끼지도 않는다. 아무 의미 없이 그냥 숨 쉬듯 사진을 찍는 것이다. 그래도 깊은 장인정신 속에 빠져있던 그때의 사진보다 지금의 사진이 더 좋게만 느껴지는 것은 내 가치관이 변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이점을 미루어 보았을 때 그때의 나는 더욱더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사진을 찍는 본인마저도 이렇게 쉽게 변할 것을 알았다면, 나는 그토록 힘겹게 사진을 찍었을까.
장인정신.
그거 정말 대단한 일이다. 한 우물만 판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일까.
다만 너무 장인정신에만 몰입해 버리면, 내가 나를 스스로 가둬 버리면 그때 남는 것은 독성이 강한 고집뿐이다. 그리고 그 고집이 생긴 이후에는 주변을 잘 둘러보지 못한다. 또, 이 일련의 과정은 사람과 그 사람의 작품을 도태되게 만든다.
적당함이 필요하다.
내가 집중하는 일에 철저히 몰입하면서도 주변을 둘러볼 줄 알아야 한다.
그렇다고 주변의 영향에 쉽게 휩쓸려서도 안 된다. 장인은 자신의 길만을 걸어야 하며, 때로는 그 경로를 알맞게 바꾸기까지 해야 한다.
이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 일인가.
어쩌면 내가 사진을 그만둔 것은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