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ngillness Oct 25. 2020

관음증(觀淫症)이 아닌 관인증(觀人症)

블라디보스토크 역이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종착지, 블라디보스토크 역. 그곳에서 출발한 설렘은 몇이나 되며, 그곳에 도착했을 때의 안도감은 얼마나 일까. 반평생 동안 자유로운 상상마저 억압했던 나로서는 그것을 헤아리기조차 쉽지가 않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지낸 이 주간은 매일 기차역에 들렀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기 위함은 아니었다. 여행 둘째 날 갑자기 카메라가 고장 났기 때문이다. 그까짓 기차야 내년이고 내후년이고 내가 원할 때 타버리면 그만이지만, 카메라와 사진이 없는 여행은 얼마나 쓸쓸하고 안타까운가. 그리고 막상 지내보니,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굳이 기차를 타지 않아도 되었다. 거대한 대륙을 가로지르는 짜릿한 설렘을 산산이 깨뜨려도 괜찮았다. 기차역이 있어서, 기차가 있어서, 하루에도 몇 번씩 기차를 타고 내리는 사연이 있어서였다.


모든 기차에는 사연이 있다. 모든 자동차와 비행기 심지어는 자전거에 까지도 갖가지 사연이 들어찼겠으나, 단순한 생각으로는 사람이 가장 많이 타는 기차에 더 많은 사연이 실려있지 않을까 싶다. 사무치게 쓰리고, 동시에 반가운 사연들을 가만히 앉아 훔쳐보는 행위에는 내 글솜씨로 감히 다 설명하지 못할 거대한 낭만이 있다.


그 시절 나는 그 변태적 낭만에 중독되어 있었다. 얼마나 그 정도가 심했는가 하면, 어느 날(아니, 솔직히 조금 자주)은 해 뜰 무렵 루프탑 카페에 올라가 해가 완전히 다 질 때까지 지나는 사람들의 모습을 훔쳐본 적도 있었다. 그런 나를 보고 어떤 떠나간 사람은 관음증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내가 생각해봐도 나에겐 썩 그런 구석이 있어서 아무 답도 하지 않았는데, 내 증세는 보통의 관음증과는 조금 달랐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관음증(觀淫症)이 아닌 관인증(觀人症)에 시달렸던 것이다. 사람을 자세히 훔쳐보다가 어떻게든 너와 비슷한 구석을 찾아내고, 얼마간 너를 생각다가 많이 앓고 마는, 그 일련의 과정을 멈출 수 없었던 것이다.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던 그 날도 아침 일찍 기차역으로 향했다. 느지막이 일어나 대충 아침 겸 점심을 먹고 한없이 느즈러지고 싶었는데, 마음속에는 굉음을 내뿜으며 나아가는 기차만 가득이라 하릴없었다. 곧장 역사 들어가서 중앙에 있는 시계 앞에 섰다. 내가 역에 도착한 시간은 아홉 시였으나, 시침은 무심하게도 오전 두 시를 가리켰다. 그리고 두 시간 후 밖으로 나갈 때는 네 시를, 저녁을 먹고 여덟 시에 기차역에 들렀을 때는 한 시를 가리켰다. 이 모든 혼란은 역 안에 있는 시계가 블라디보스토크의 시간이 아닌, 모스크바의 시간으로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그 손바닥만 한 시계는 매번 나에게 웅장함을 안겨줬다. 같은 나라에 살면서 11시간의 시차를 공유한다는 것이 어디 흔한 일인가.


얼마 되지 않는 짐을 검색대 위에 올려놓고 잠시 의자에 앉았다가, 곧 있으면 내가 탈 기차가 도착하는 양 밖으로 나갔다. 쌀쌀하다 못해 쓸쓸한 바람이 두 뺨을 마구 스쳐 지났다. 그 느낌이 나쁘지 않아서 바람을 맞으며 기차역의 끝과 끝을 여러 차례 오갔다. 플랫폼에는 나와 '쌔앵쌔앵'지나는 바람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잠시 숨을 멈췄다가 다시 뱉어냈다. 숨을 멈추는 동안에는 시간까지 멈춘 듯했고, 숨을 다시 내쉴 때는 살아있음이 느껴졌다. 명상이라기보다는 공상에 빠져있으니 저 끝에서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곧 있으면 수많은 사연들이 기차에서 내린다.


10여 분간 무질서가 계속되었다. 말 그대로 그 상황이 무질서하기도 했다마는, 해일처럼 밀려오는 수백 가의 사연은 나를 어질하게 만들 만큼 혼란스러웠다. '터벅터벅' 몇천 개의 발소리가 지나고, '위잉위잉' 약해진 바람도 기차역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정적. 완전히 고요한 상태가 되었다. 이제는 사람도, 미약하게나마 사람에게서 느껴지던 온기도 없다.


곧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졌다. 카메라를 윗옷 안에 숨기고 떨어지는 비를 가만히 맞았다. 머리를 흥건히 적신 물방울이 이마를 타고 흘러, 안경에 가득 내맺혔다. 쓸쓸한 바람이 불자 시린 빗방울이 자꾸 뒤통수를 자꾸 할퀴었다. 귀가 새빨갛게 얼어붙으면서 가슴께가 뜨거워졌다. 그리고 '펑'. 좋지 않은 감성이 차오르다 못해 터진 소리였다. 빗방울과 함께, 사람들이 사라짐과 함께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사람이 든 자리에는 포근함이 느껴지지만, 난 자리에는 한기가 느껴진다. 모두가 떠나버린 그때가 그랬고, 하필이면 그때 떠오르는 생각이 그랬다. 감정은 격해지고 움직임은 굼떠졌다. 시간은 바람을 따라 멈췄다가 흐르기를 반복했다.


한숨이 조금씩 깊어질 때쯤, 반대쪽 플랫폼에서 기차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수많은 사연이 올라탔다. 나는 기차가 떠나기 직전, 빈 좌석 어딘가에 내 사연을 묶어 실으며 희미해져 가는 너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때, 기차가 덜컹거리는 소음을 내뿜으며 앞으로 달렸다. 오늘의 관인증(觀人症)은 그렇게 끝이 났다. 사람을 보다가 너를 떠올렸고, 잠깐 앓았다. 너를 거의 다 그렸는데, 내 손으로 깨부수기만 하면 됐는데, 그 소음과 함께 모든 것이 흩어졌다. 내일도, 모래도 나는 너를 떠올릴 예정이다. 그리고 많이 아플 예정이다.


블라디보스토크 역에서 생긴 일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