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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인 Apr 24. 2022

내일이 알고싶어

쉽게만 살아가면 재미없지만

운세 어플을 깔았다. 3일 연속인지 그 이상인지 매일인지 격일인지, 아무튼 밤샘의 행렬 속이었고 새벽이었다. 번쩍 운세 어플을 깔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일이 몰려서 바쁜 것은 그렇다치고, 막바지에 복구가 불가능한 사고가 터지지는 않을까 불안했던 것 같다. 운세가 딱히 해결해줄 수 없는 영역이다만 어쩌다 오늘의 운세까지 생각이 넘어갔는지 정확한 의식의 흐름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원래 지속적인 밤샘은 충동성을 강화한다. 어플을 설치한 날 오늘의 운세 총점은 100점 만점에 67점. 대인관계와 말실수와 업무과실을 주의하라고 했다. 정신이 몽롱해서 그럴 법한 날이었다. 우연인 것을 알면서도 어플에 대한 신뢰도가 괜히 올라갔다. 별자리니 행운의 색깔이니 하는 영역은 아예 믿지 않는데도 막상 운세 어플을 깔고 나니 별자리 운세조차 한 번씩 눌러보게 된다. 2주 전에는 사주를 보러 갈 예정이었다. 예약에 실패해서 5월로 미루었지만, 상반기 안에는 꼭 사주를 볼 것이다. 사주를 풀어주는 사람들도 사주는 경향성일 뿐이고 맹신하지 말 것을 당부하지만은 뭐 어떤가. 비과학을 통해서라도 마음을 다스려야지.


나는 요행과 매우 거리가 멀다. 앞으로도 멀 예정이다. 극적인 추가합격이나 낮은 확률을 뚫은 당첨은 물론이고, 꽤 높은 확률로 뿌리는 경품도 당첨이 안 된다. 차라리 로터리에만 운이 없으면 다행이지만 인생 전반의 성취에서 예상을 뛰어넘는 요행이 있었던 적이 없다. 안 될 것 같은 건 안 되고 될 것 같을 때까지 준비하면 된다. 우리 가족은 꼼수나 요행의 기운이 매우 약하다는 것이 언니와 나의 지론이다. 그렇기에 남들 하는 만큼은 기본으로 깔고 더 많이 노력해야 겨우 성취 비슷한 것을 얻을 수 있다. 이런 팔자려니 하고 살아서 크게 불만은 없었다만, 노력과 별개로 풀릴 생각을 하지 않는 일도 세상에는 많아 나를 둘러싼 기운이라도 있는지 열어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이를테면 며칠 전 중요한 분석결과 수신과 발표를 앞두고 오늘의 운세를 열어봤다. 가만히 있으면 정해진 시간에 나올 결과인데 괜히 마음의 준비를 하고싶었다. (물론 결과는 오늘의 운세를 따라가지 않았다) 실망할 준비를 해야 한다. 좋은 점괘가 나와도 기대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은, 점괘따위에 휘둘리지 않으려는 의도보다는 기대했다가 실망하는 과정이 아프기 때문이다.

흐린 날의 망망대해

"인생은 언제나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다." <아르미안의 네 딸들>에 등장해서 자주 인용되는 대사이다. 예측불허. 이 중립적인 단어는 어느 쪽으로 해석되어야 할까. 내게는 예측의 바깥을 튀어나간 시점에서 충분히 부정적이다. 의외성으로부터 내일을 기대하는 경험을 한 이들에게는 긍정적 의미로 읽힐 것이다. 돌발 상황이 내게 요행 혹은 새로운 기회로 다가온 경험은 분명히 있다. 모든 성취가 노력에서 100% 비롯되었다는 자신감은 굉장히 오만하다. 하지만 요행의 존재를 알면서도 어쩐지 그런 경험은 떠오르지 않고, 돌발 상황에서 심장이 쥐어짜이던 감각만이 구체적인 형태와 함께 먼저 찾아오는 것이다. 책을 읽을 때 팽팽한 긴장 상태에서는 가끔 마지막의 몇 장을 읽고 스스로 스포일러를 했다. 아무리 돌고 돌아도 결국은 해피엔딩인 것을 안다면 편안한 마음으로 책장을 넘길 수 있다. 사주를 보러가는 이유와 비슷하다. 실망이 뭐고 후회가 뭐라고, 기대 이상만이 실현되는 인생은 불가능하다고 애써 말하지만, 악화일로를 걷고 있어도 해소되는 시점을 알아야 버텨나갈 힘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낙하를 피할 수 없다면 안전망의 존재는 알고 낙하하고 싶다. 그러나 큰 흐름의 존재는 안전인 동시에 한계가 될 것이다. 버려도 다시 돌아오는 길은 행복일지, 불행일지. 지금은 미래의 무엇도 예측할 수 없는 어린 날이기 때문인가. 예측 가능한 나날에 질릴 때쯤, 돌발 상황이 나를 살렸음을 돌이켜서 알게 될 때쯤 예측불허가 생의 의미라고 진심으로 말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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