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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인 Mar 25. 2022

이불빨래

세미어른의 자취

220215.

미루던 이불빨래를 드디어 돌렸다. 3시간 반 정도 잔 상태에서 빨래를 넣어놓고 나니 드럼세탁기 안에서 사정없이 돌아다니는 이불을 멍하니 보게 된다. 세제를 적정히 넣은 것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사실 과보호하는 부모님과 가까운 거리 덕에 의류 빨래도 많은 부분을 본가에 맡기고 있다. 아마 내가 오늘 이불빨래를 한 사실도 부모님에게 말한다면 ‘얘기하면 다른 이불 갖다줬을 텐데’라는 말을 들을 것이다. 본가와 자취방은 차로 30분, 대중교통으로 70분가량 소요된다. 집이 가깝지 않냐고 묻던 친구들도 이 말을 하면 대부분 자취의 이유를 납득한다. 자취를 시작하며 연구실까지 도보 5분이라는 경이로운 시간단축을 이루었다.


3년 전에도 잠시 자취(정확히는 하숙)를 한 적이 있다. 꽤 노후한 건물이어서 오염 카테고리는 결벽에 가까운 내 성정으로 잘도 1년 가까이 지냈구나 싶다. 얼마 전 그 당시 방의 화장실을 찍어둔 사진을 발견해서 든 생각이다. 당시 화장실은, 세면대와 벽 사이의 간격이 50 cm는 됐으려나? 내가 조금 더 체격이 있었다면 샤워를 못 했을 크기였다. 그리고 수도관 근방의 벽은 완전히 주황 녹으로 변색되어 있었다. 화장실 빼고 다른 조건은 나쁘지 않아서 그때는 큰 불만 없이 지냈던 것 같다. 서울 한복판 대학가에서 부가금액 및 보증금 없이 45만원에 단기거주 가능, 하루 세끼 식사제공, 개인화장실이 있는 방은 쉽게 구하기 어려운 조건이다. 방에서 취사가 불가한 대신 아예 식당이 있었고 상당히 큰 규모로 삼시세끼 식사준비를 해주시는데도 벌레가 없었던 점이 큰 메리트였다. 본업으로 큰 농장을 한다는 집주인 부부도 좋은 분들이셨다. 식당에는 제철과일이 항상 넉넉하게 쌓여있었다. 타이밍이 좋으면 먹었던 갓 지은 밥과 국은 지금도 종종 생각난다. 건물 연식 치고는 나름대로 잘 관리되었다만 지금 다시 살라면 못 산다. 세탁기도 아주 크고 오래된 세탁기를 공용으로 썼다.


그때는 전기요금이니 가스요금이니 하는 부가요금을 내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야 처음으로 고지서를 통해 요금을 납부해봤다. 그때나 지금이나 계약기간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그 하숙집 방은 잠시 머무르는 곳이지 내가 가꾸어서 관리할 곳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거슬리는 부분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했고 뜯어고칠 여력도 없었다. 이번에는 1년을 채워서 원룸계약을 했다.  애초에 깔끔하게 리모델링된 방이어서 그런지, 더럽히지 않고 깔끔하게 관리하리라 결심했다. 매우 비위가 약하기 때문에 미래의 나를 위해 화장실과 싱크대 배수구 청소까지 구석구석 했다. 어느 정도로 비위가 약하냐면, 배관이 양호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상기하는 것만으로 소름이 끼친다. 청소하는 순간에는 더더욱 참담하고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선택지가 없었다.

눈오는 아침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어른의 일’이었던 영역에 발을 걸치고 있노라면 묘한 기분이 든다.  나는 드디어 내 화장실도 관리하고 이불빨래도 한다, 전기요금 가스요금도 내는 어른이라고 어딘가에 괜히 자랑하고 싶다. 또 한편으로는, 앞으로 주거에 관해 얼마나 자질구레한 의무와 변수가 내 기운을 빼놓을지 알 것만 같아 축 처진다. 사실 스무살, 혹은 그 이전부터 자취방이나 기숙사에서 살아온 친구들이 듣는다면 코웃음칠 이야기다. 나는 지금의 독립도 뭣도 아닌 애매한 상태가 마음에 든다. 원룸에 돌발상황이 닥치더라도 핸드폰만 달랑 들고 갈 곳이 있다는 점에서 홈그라운드의 무게도 느낀다. 그래서 지금은 본가에 적당히 의존하며 독립 체험판 정도를 실행해보는 기분이다. 이르면 1년 뒤에는 정말 타지에서 생활해야 할지도 모른다. 조만간 싫어도 속성으로 어른이 되어야 할 테니, 지금의 semi-어른 상태를 누리자.


20대 초반에는 돈만 모이면 독립해서 살거라며 큰소리쳤으나 지금은 완전한 독립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안다. 쾌적한 생활을 위한 품이나 자금만 해도 무겁지만, 스스로를 돌보는 일이 더없이 무겁다. 인스타그램 요리 계정을 따로 만들 만큼 본가에서는 요리를 잘 하고 좋아했다. 그러나 자취방에 입주하는 순간 알았다. 요리를 시작하는 순간 얼마나 많은 부업이 따라오는지. 제때 음식물쓰레기를 처리하는 것은 물론이요 싱크대 청소부터 남은 신선식품 처리까지. 아예 자주 요리를 한다면 모를까 집에 붙어있는 시간은 거의 자는 시간뿐이다. 감당할 자신이 없어 시작하지 않았다. 왜 많은 자취생들이 ‘집밥’을 찾아다니는지 백번 이해했다.


어떤 일요일 밤은 ‘집에 와서-옷 갈아입고-바닥청소-샤워-수면’의 기본적인 일과조차 처리하기 버거웠다. 겉옷만 걸어두고 온돌바닥에 그대로 엎어져 한참을 멍하니 시간만 보냈다. 불편한 옷으로 바닥에 엎어져 있어도 아무도 잔소리하지 않는 점이 1인가구의 장점이라지만, 동시에 아무도 내게 왜 그러고 있냐고 물어보지 않는다. 내가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일으켜세워야 한다. 그래서 가끔은 무섭다. 나를 일으키던 끈이 어느날 툭, 끊어지는 상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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