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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진 Dec 21. 2023

지는 해

하늘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보다 저녁에 사라지는 태양이 더 뜨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초등학교 때를 생각해 보면 만남과 시작이 어렵지 않았다. 처음 만나는 친구와 금세 즐겁게 놀 수 있었고, 새로운 걸 알고 느끼게 되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순간마다 신기하고 가끔은 마냥 즐거웠다. 해가 뜨는 시간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당연히 졸업을 할 줄 알았던 학교에서 전학을 가게 됐다. 처음으로 헤어짐이란 걸 경험했던 순간이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멍했지만 알 수 없던 감정과 떨어진 눈물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또다시 해가 뜨고 지는 게 반복되고, 시간은 나에게 가르침을 줬다. 언젠가는 모든 게 끝이 난다는 것이다. 지는 태양이 가끔은 갑작스럽게, 가끔은 견딜 수 없이 뜨겁게, 유한함을 깨닫게 했다.


해가 사라지고 어둠이 찾아오는 게 싫어진 이후로 문 밖을 나서기가 어려웠다. ‘어차피 사라질 태양이라면 처음부터 아예 만나지 않겠어’라는 마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태양 아래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동안 뜨고 지는 태양을 보느라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이다. 흐르는 구름과 산이 보였고, 노래하며 나는 새와 나비가, 그리고 그 아래 발을 구르는 사람들이 보였다. 이 모든 걸 한눈에 보았을 때, 태양보다 강렬한 뜨거움이 느껴졌다.


이제 지는 해가 아닌 다른 것들에 눈길이 향했다. 밤과 낮 사이에는 아름다운 것들이 충분히 많았다. 더 이상 사라지는 태양이 원망스럽지 않았고 더 많은 것들을 만나고 싶어졌다.


그럼에도 해질 무렵은 섭섭하다. 아쉬움과 미련이 제일 강해지는 때이기도 하다. 그러나 두 눈을 감아버리기엔 빛 덕분에 볼 수 있는 것들이 너무 많지 않은가.


해 지는 이 시간에 오늘 봤던 것들을 떠올린다. 만났던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인사를 건네고, 내가 있던 자리들에 고마움을 전한다. 내일 해가 뜨고 또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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