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가에서 나와 산지 벌써 6개월이 되어간다. 꿈에 그리던 독신 생활은 혼란스럽던 나날을 평화와 행복으로 바꿔놓았다. 하루하루가 이리도 재미있을 수가 있을까.
혼자 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던 건 1998년,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였다. 당시 최고 시청률을 자랑했던 '보고 또 보고'가 방영했던 해였는데, 거기서 안무가로 나왔던 허준호는 부모님과 사는 형 정보석과 달리 오피스텔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퇴근 후 차키를 탁자에 툭 던지고 소파에 앉는 모습을 보고 먼 훗날 직장인이 되어 저렇게 살면 참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 마음도 모르고 아버지에게 나중에 어른이 되면 혼자 살고 싶다는 말을 별 생각도 없이 했고, 그 말을 들은 아버지는 얌마 혼자 살려면 돈 많이 벌어야 돼 라고 한마디 툭 던졌을 뿐이었다. 애지중지 키우던 막둥이가 막상 집을 나가는게 꿈이라는 말을 내뱉었으니 사춘기의 시작이라 할지라도 꽤 섭섭하셨을 것이다.
중1 중간고사를 망친 후 시청이 금지되었다.
그 후로부터도 참 많은 드라마, 영화, 만화 등의 매체를 접하며 살아왔는데, 그중에 혼자 사는 캐릭터에 대한 것들은 하나하나 기억하고 있었다. 미스터 빈, 프렌즈의 로스, 심지어 톰과 제리까지.
이때부터 독신의 로망이 점점 커져갔다.
'작업의 정석'에서 책으로 가득 찬 송일국의 집에서 로망은 절정이 되었고(자판기까지!)
인생시트콤 프렌즈, 이때부터 혼자 살 집의 인테리어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그 꿈을 실현하는데 20년이 걸렸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직장인이 된 뒤에도 '완전히' 혼자 사는 길은 요원해 보였다. 이전 글에도 말했다시피, 이미 서울에서 한달의 반을 혼자 살고 있었고, 나머지 반은 고향에 있던 어머니가 올라와 있었다. 그런데 이건 혼자 사는게 아닌 건 확실하다. '나의 집'이라는 것은 내가 안방을 차지하고 있을 때 그 의미가 있는 것.
"보통 그런 걸 어머니와 같이 산다고 말하는 거죠, 혼자 사는게 아니에요." - 어떤 여성 지인의 말, 마치 그 나이에 엄마랑 사냐 이 얼간아 라고 들렸다.
아무튼 시간은 흐르고 흘러 드디어 집을 나오게 되었다. 참 씁쓸한 점은 많은 어른들이 떠나고, 고향 재산을 처분하고, 친척들과의 갈등 속에 파국을 맞이한 후에야 나의 오랜 꿈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인생은 이래서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것인지.
혼자 살게 되면서 그동안 로망이었던 것들을 하나하나 실천하기 시작했다. 별다른 것 없이 수수한 것들이었다. 혼자 사는 것에 대한 단상은 또 다른 글에서 정리하기로 하고, 대표적인 로망 중 하나는 홈바를 꾸미는 것이었다. 이 역시 매체의 영향을 받았는데, 고등학교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이 때는 내가 술이 약한지도 모르던 때였다). 순풍 산부인과를 보면 오지명의 집 한켠에 바가 만들어져 있고 거기서 한잔하는 모습이 그렇게 멋있어 보일수가 없었다. 프렌즈에서는 모니카의 전남친인 리처드가 자신의 아파트에 홈바를 차리고 혼술을 즐긴다. 나도 저렇게 집 안에서 술과 시가를 즐길 수 있는 바가 있다면 참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술담배는 해본 적도 없는 고딩이었는데 말이다(모두 대학가서 처음 해봤다).
"하여튼 본 건 있어가지고" - 인생을 한 문장으로 축약했을때
문제는 스카치는 커녕 맥주 한캔도 근성을 발휘해야 거의 마실 수 있는 알콜고자라는 것이다. 담배는 끊은지 10년도 넘었고.
대학 OT에서 마신 소주잔 수와 동일한, 아니 그 이상의 토를 하고 나서야 나의 꿈이 헛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술을 즐기기엔 유전자가 허락을 하지 않는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다시 태어나는 수밖에 방법이 없었다.
로망을 로망으로 남겨둔 채 끝내기에는 너무 아쉬웠다. 주량이 어떻게 되건 간에 홈바는 혼자 사는 남자에게 꼭 필요한 것만 같았다. 허세도 이정도면 중증. 고민을 거듭하던 찰나, 에이 뭐 어때 까짓거 물 타서 내가 즐기고 싶은 만큼 즐기면 되는거지 뭐! 그렇게 홈바 구성을 시작했다.
자그마치 12년 전, 저 말도 안되는 가니쉬를 보라. 그냥 주스파티.
전 글에서 말한 것처럼, 이미 홈바 비스무리 흉내를 내보았던 것은 대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누나가 사놓은 셰이커 하나 가지고 마트에서 제일 싼 베이스 주를 사다가(학생이 돈이 있을리가..) 친구들을 불러 이것저것 만들어본 게 시작이었다. 칵테일은 커녕 에탄올 섞인 거라고 내놓으면 그저 좋아라 먹던 시절이었으니 그냥 주스섞은 술파티였다.
이딴 쓰레기를 주스랑 섞어 내놓았으니 마치 캪틴큐를 마시면서 양주마셨다고 자랑하는 격이다. 병당 만원이 안넘는다. 시중 바에서는 많이 쓴다. 싸니까.
주정에 양주향을 입힌 전설의 양주맛 화학약품
시간은 흐르고 흘러, 30대 중반이 되었고 난 여전히 싱글이다. 대딩과 다른 점이 있다면 돈을 좀먹는 존재에서 벌어들이는 존재로 바뀌었다는 것 정도, 현질의 먹이사슬에 천적이라고는 나 자신뿐이다. 문서 기안자이자 결재권자인 상태, 마트에서 베이스 주류(보드카, 데킬라, 진)와 오렌지와 레몬주스, 토닉워터 등을 구입하고, 인터넷에서 라임주스와 그레나딘 시럽을 샀다. 이 정도만 돼도 꽤 많은 종류의 칵테일을 만들 수 있다.
인생은 30대부터
(왼쪽 위부터) 마가리타, 김렛, 데킬라선라이즈, 스크루드라이버
이렇게 혼자, 때로는 친구들과 놀다보니 좀 더 전문적으로 해보면 자기계발의 측면에서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조주기능사 취득을 결심하고 책을 구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