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상캥 Mar 28. 2020

주량이 약하다는 것

'취하는 것' 이란 무엇일까

술값이 별로 들지 않는 인생은 좋은 것이다. 콩나물국밥 집에서 국밥 한 그릇에 모주 한잔을 걸치면 얼굴이 벌개진채로 귀가할 수 있을 정도니 말이다.


어렸을 때 아버지와 중국집에 가면 아버지는 짜장면 한 그릇에 이과두주를 한 병씩 드셨다. 어렸을 때 그 광경을 보면, 나도 어른이 되면 저런 낭만을 즐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땐 몰랐었다. 내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건 직모 머리카락 뿐이었다는 걸.


한 숟갈 정도는 먹을 수 있다. 티스푼.


대학 OT에서 처음 접했던 소주라는 것은 세상에서 먹은 것 중에 가장 맛없는 물건이었고, 이제 어른의 시작이구나 하면서 억지로 받아먹은 결과 다른 친구들보다 더 빠른 시간에 화장실을 빈대떡 반죽으로 채웠다. 정작 그때는 술을 떳떳하게 먹는 나이로서 마땅히 거쳐야 할 의례라고 생각했지. 그러나 술에 취하는 즐거움은 느끼지 못한 채 졸업할 때까지 술자리는 그저 맨 정신으로 웃고 떠드는 자리였고, 신기하게도 술을 먹지 않고도 취한 놈처럼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위약 효과가 이상한 곳에서 발현되었다고나 할까.


공대, 군대, 그리고 신입사원 회식까지. 많은 술자리를 경험한 후 음주라는 취미를 깔끔하게 포기했다. 군대에서는 단체로 외출 후 맥주 한잔을 하고 복귀한 적이 있었는데 혼자 빨개진 채로 들어와 같이 나갔던 친구들과 나란히 일주일 동안 근신을 당했다. 정작 근신을 받고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아 일주일 간 잠만 잤지만. 또 부대 내에서 조촐하게 치맥파티를 한 적이 있었는데 종이컵으로 몇 잔을 먹었을 뿐인데 사방으로 토를 해대서 후임들이 토를 치우느라 고생했다. 자연을 벗 삼아 살아서 알코올을 접할 일이 없는 군인이 오죽했겠는가.


세상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늘지 않는 게 있으니 그것은 바로 내 학점과 주량이었다. 미국 여행 중 잭다니엘 위스키 공장 견학을 하다가 오크통 창고에 들어갔다 나왔을 뿐인데 만취 상태가 될 정도였으니. 아마 내가 평생 경험하지 못할 감각이라면, 그것은 여성의 오르가즘과 술이 취하는 과정에서 오는 쾌감이겠지. 아직도 사회에서 만나는 몇몇 사람들은 술은 마시면 마실수록 는다고 주장하지만 대놓고 의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무안을 줘봤자 소용없으니 웃으면서 그래도 잘 안되네요 허허 하면서 넘어갈 수밖에 없다.


술로 돌아가고 술로 움직이는 세상, 어째 배우려는 노력을 안 해봤을까. 몸에 맞는 술을 찾아 많은 공부를 했다. 텍스트와 이미지로 공부했던 향기롭고 예쁜 색을 가진 술들은 눈으로 보며 즐겨도 그저 좋았다. 테킬라는 다육식물의 한 종류인 용설란으로 만들고, 럼은 항해 중에 썩을 수 있는 식수 대용으로 선원들이 즐겨 마셔 많은 바다영화 특히 해적물의 클리셰가 되었다. 폴란드에는 스피리터스라고 부르는 90도가 넘는 보드카가 있으며, 러시아인들은 보드카를 피클과 같이 즐긴다. 스크루 드라이버는 보드카와 오렌지를 섞어서 만드는데, 이는 노동자들이 일하면서 몰래 술을 먹기 위해 보드카에 오렌지주스를 타서 가지고 있던 드라이버로 급히 저어 만들어 스크루 드라이버라는 명칭이 붙었다. 내게 있어 술은 마시지는 못하지만 너무나도 흥미로운 소재였다. 수많은 이야기와 사랑과 우정과 용기와 분노와 시기와 인내와 역사가 술과 함께한다. 짐승도 발효된 과일을 씹으며 취하는 것을 즐기고, 죄수들도 쌀을 빼돌려 감방에서 술을 담근다. 그러나 내게 술은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그런 요원한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 몸에 맞지 않으면 어때, 내가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약하게 만들면 되지! 그렇게 해서 대학생 때는 칵테일도 만들어보고, 혹여 독주라도 몸에 잘 맞지 않을까 해서 위스키-진-보드카-럼, 그리고 테킬라까지. 결과적으로 알아낸 것은 호로요이 반 캔에도 빨갛게 익어버리는 몸, 최선을 다하면 끝낼 수 있는 아사히 한병. 그리고 아직도 외우고 있는(써먹을 일도 없을) 칵테일 레시피들.


칵테일 배운다고 설치던 시절, 말만 칵테일이지 그냥 주스 파티였다.  사이다 좀 그만 넣으라는 친구들의 잔소리는 덤.


시간이 지나 이젠 혼술조차 하지 않는 30대 중반의 저녁, 가끔 시도하지만 즐거움을 느끼기에는 아직도 한없이 멀다. 이렇게 추억을 소환하며 적어  내려가는 감성에 취하는 것이 오히려 더 나을 수도 있겠다.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고 살찌는 안주도 필요 없으니.



더 이상은 주량에 목을 매지 않는다. 성인이 된 지 20년도 지나지 않았지만 사회의 시류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술을 강권하는 세상도 아니요. 인사불성이 될 때까지 마시는 분위기도 아니다. 풍류라는 이름 아래 한국사람들은 술에 의해 얼마나 스스로 천박해지며 살았는지. 시간의 흐름이 좋은 이유는 나 자신의 의지대로 살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는 것도 있지만, 사회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뀌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내 삶에 있어 술과 함께하는 풍류는 느낄 수 없겠지만, 아무렴 어떤가. 경험하지 않고도 깨달을 수 있는 진리가 있듯이, 느끼지 않고도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내게 있지 않은가. 한잔의 좋은 술 같은 사람이 되어 사람들이 기분 좋게 취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 애주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술에 취하는 사람들을 가슴으로 이해해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가족을 잃는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