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상캥 Aug 05. 2020

내가 쓴 글 하나가 다음 메인에 올라갔다

좋았지만 씁쓸한 후기

브런치 이전까지는 네이버 블로그에 읽은 책에 대한 감상이나 소소한 이야기들을 적었다. 이따금 밀려드는 여러 생각들을 정리하는 공간이 있는 것은 좋았지만 꾸준함은 생각처럼 오래가지 않았다. 좋아하는 일이라고 해도 꾸준히 하는 것은 쉽지 않았는데, 블로그에 주절거리는 말이 아닌 뭔가 정식으로 생각을 정리해서 글로 남겨보고 싶었다. 그렇게 할까 말까 간만 보다가 2020년이 시작되었을 때 글쓰기 플랫폼을 운영해보기로 결심했다. 새해를 맞이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본인도 2020년이 시작되자마자 운동도 공부도 모두 새로운 마음으로 열심히 하고자 결심했다. 목표는 실현 달성 가능한 걸로 잡는 편인데 자랑을 좀 섞자면 달성하지 못한 해는 거의 없었다. 


2020년의 목표는 1. 그림 배우기, 2. 글쓰기 플랫폼 운영하기, 3. 모차르트 소나타 or 베토벤 소나타 한 곡 완주하기였다. 그림은 펜드로잉을 연초에 배우기 시작해 벽에 걸만한 그림 하나를 완성하고 흥미를 잃어버렸고, 글쓰기 플랫폼은 티스토리를 할지, 브런치를 할지 고민을 했었다. 눈곱만큼이라도 용돈을 벌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광고 배너도 보기 싫고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는 재미는 브런치가 월등히 좋았다. 그래서 예전 대학생 때 글쓰기 과제였던 자서전(27쪽 분량)에서 아버지 이야기를 하나 가져왔고, 다른 두 개 글을 새로 작성해서 브런치 심사단에게 보냈다. 나머지 두 개 글의 주제를 뭘로 할지 고민하다가 내가 좋아하는 철학 이야기를 다루기로 했다. 애초에 브런치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지금껏 읽었던 여러 권의 철학 서적을 정리해서 나만의 이야기로 보관하고자 하는게 목표였다.





그렇게 준비한 글들을 심사단에 보냈고 얼마 후 승인 메일이 왔다. 딱히 어렵진 않은 일이었다.

취직했을때 데자뷰..까진 아니고


그렇게 소소하게 7~10일 주기로 하고 싶었던 얘기를 올렸다. 글쓰기 플랫폼에선 메이저지만 우리나라 인터넷 사이트 전체를 보았을 땐 마이너하기에 월평균 600명, 하루 20명 정도가 내 글을 읽었다. 처음 시작할 때 싸이월드 방금 시작했던 때가 떠올라 이런거에 목매지 말고 하고 싶은 얘기나 잘 정리하자라는 다짐을 해서 그저 내 글을 읽고 라이킷으로 공감하는 몇몇의 사람들을 보며 그래도 죽은 글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지냈다. 



근데 3개월 차, 일이 터졌다. 어머니의 시집살이와 큰집에 대한 얘기는 집안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고 그리고 친척들과의 사담까지 나오게 되는 터라 꽤 오래전부터 고민했던 소재였다. 그런데 앞으로의 에세이에 있어서 꼭 필요한 소재이기도 했고, 지금까지 작성한 개인적인 얘기를 모두 연결하는 측면에서 다뤄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덤덤하게 큰집에 대한 시각에 대해 글을 썼다. 그리고 작성한 지 두 시간도 되지 않아 알림이 왔다. 



평균 15~40명 언저리던 조회수가 갑자기 1,000 단위를 뚫더니 폭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 분명 어딘가 메인으로 걸렸구나. 방문 출처의 90% 이상이 브런치가 아닌 다음 모바일 홈페이지인 것으로 보아 어디 가족 관련 테마에 걸린 것 같았다. 내친김에 폰에 다음 어플을 깔고 찾아보았다. 


다음 모바일의 홈&쿠킹 탭에 올랐다.


다음 메일도 갖고있지 않던 터라 평소에는 네이버와 네이트만 깔고 있었는데 다음 어플은 좀 생경했다. 탭을 넘기다 보니 홈&쿠킹 탭에 글이 올라와있었다. 어떤 기준으로 올라가는지, 운영자가 올리는지 시스템이 올리는지 아무 정보도 없는 상태인데 글을 올린지 몇 시간도 되지 않아 탭에 올라가는 건 좀 의아했다. 


평소 방문하는 사람들(좌)과 글이 다음 메인에 뜬 날(우)



사실, 퇴고를 마치고 글을 올리면서 어느정도 예상은 했다. 뭔가 많이 볼 것 같은 글을 쓴 것 같다. 살다보면 참 예상을 많이 하게 되는데 내 삶에 있어서 주식을 제외하고 예상은 거의 빗나간 적이 없는 것 같다. 그게 좋은 예감이든 안 좋은 예감이든 마찬가지다.


고부간 갈등, 시댁 갈등, 시누이 갈등은 한국 사회에서 가히 3대장이라 부를 수 있을 만한 갈등의 형태이다. 이를 다룬 소설, 만화, 드라마가 한 트럭이고 거기에 남녀갈등까지 더하면 아주 나라 하나를 작살낼 수 있는 분열의 씨앗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사람들이 볼 글의 소재로 매우 매우 적합하다.


글에 있어서 글감이라는 것은 참 중요하다. 현재 사람들이 관심있어하는 소재를 선택하는 것, 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질만한 제목으로 유도하는 것(유도의 질이 나쁠 경우 이것을 어그로라고 부른다), 그리고 모두가 공감할만한 내용의 글을 쓰는 것이다. 


글감에 신경쓰지 않고 하고 싶은 얘기만 하면서 오로지 소소한 재미만을 가지고 브런치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래서 별로 이 상황이 기쁘지가 않았다. 



철학에 대해 글을 쓸 때는 여러 서적과 이론서를 정독한 후 상황에 맞게 정리하여 올렸다. 작성이 오래 걸리는 만큼 글을 쓰는 재미도 있었다. 애정은 덤으로. 그에 반해 에세이 글은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단시간에 써 내려가는 편이라 어투도 다르고 비속어도 간간히 나온다. 개인적으로는 철학에 대한 글을 더 많이 쓰고 싶은데 말이지. 


그런데 다음 메인에 올라간 상황을 직접 보니, 나에게나 신기한 일이지 다른 사람들의 시각에는 지금껏 내가 그런 것처럼 포털을 무심코 뒤지다 나올 수 있는 하나의 글에 지나지 않았다.  

사람들이 읽으라는 글은 안 읽고...


활발한 소통도, 폭발적인 구독도, 이렇다 할 피드백도 없었다. 그저 일회성 소비에 그칠 수밖에 없는 글 하나였을 뿐이다. 그런데 애초에 나도 그렇지 않았는가. 포털에서 여러 정보든 얘기든 한번 읽고나면 그걸로 끝이었다. 사람들은 텍스트의 홍수에서 살면서도 텍스트를 읽지 않으면서 산다.


오히려 브런치 메인에 올라간 게 더 좋았다.


다음 메인에 올라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브런치 인기글에도 올라가게 되었다. 대략 1~2일 정도 머무른 것 같은데 오히려 이때가 더 좋았던 것 같다.


3일 간의 조회수 변화, 메인에서 내려가고 브런치에서 올라가는 게 보인다.



이렇게 광란의 5일이 끝나고 나니, 결국 사람들의 손이 가게되는 글감을 위주로 쓰면 조회수와 라이킷, 구독이 늘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갈등 양상인 글만 쓰면서 접근을 노리는 게 스스로를 위한 길은 아닌 것 같다. 


조회수가 단기간에 늘면서, 그 여파는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메인에 올라간 글뿐만이 아닌 다른 글의 조회수도 대폭 늘었고, 라이킷과 구독은 느리게나마 꾸준히 생기고 있다. 그런데 이게 좋은 것은 아닌 것 같다. 


앤디 워홀이 실제로 이런 말을 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연초에 글쓰기 플랫폼을 운영하기로 결심한 것은 내가 좋아하는 소재로 글을 쓰고 하고 싶었던 얘기들을 하고자 함이었지, 세상을 평가하고 갈등 상황에 대해 논하고자 함은 아니었다. 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많이 읽는 것들은 현재 이슈가 되는 사항이나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소재들, 그리고 여야, 남녀, 좌우 등 정치 사회적 갈등 양상에 대한 글이었다. 


다시 돌아가서 내가 하고싶은 얘기만 쓰기로 했다. 관심과 돈을 원했으면 티스토리를 갔겠지, 초심으로 돌아가서 소소한 얘기를 나누면서 유유자적한 글쓰기 생활로 돌아가기로 했다.


싫진 않았지만 말이지.


아직 하고 싶은 얘기는 많이 남아있다. 나에게 그럴 꾸준함이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커피 스노브의 시비 걸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