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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캥 Apr 09. 2020

커피 스노브의 시비 걸기

플라넬 드립 라떼 들여다보기

스노비즘(Snobbism)이란 나무위키에 따르면 얕은 지식으로 허세를 부리는 눈꼴사나운 태도를 말한다. 사실 어떤 분야던지 방금 입문한 사람에게서 제일 많은 정보가 나오고(신뢰도는 둘째 치고), 또 그만큼 수도 많다. 웬만큼 깊게 들어가기 전에 적당한 수준에 머무르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입문자의 가슴이 늘 설레는 이유는 이제껏 알지 못했던 분야에 대해 알아가는 기쁨, 그리고 그 앎의 축적으로 인해 기술로의 도약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꾸준함이 장기간 지속되면 곧 장인이 되어가는 것이고.


커피에 대해 나름 취미를 가지고 공부하다 보니 재미있는 점을 적지 않게 보게 된다. 우연히 얻게 된 매X유업의 플라넬 드립 라떼를 한번 들여다보자.


악당 출현


일단 제목을 보자. '플라넬 드립 라떼'

정석에 목매는 스노브라면 제목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카페라떼(Caffe Latte)는 기본적으로 에스프레소에 우유를 탄 커피를 말한다. '드립커피'에 우유를 탄 커피는 '카페오레(Cafe au Lait)'라 부른다. 이것은 물론 법으로 정해진 사항은 아니다. 그저 일반적으로 알려진 '우유를 탄 커피'를 일컫는 말일뿐, 애초에 Latte나 Lait이나 각각 이태리, 불어로 우유를 뜻하는 말이니까. 따라서 드립 라떼라는 말은 말이 안 될 것 까진 없지만 뭔가 어색한 기분이 들 수 있다. 남성용 브래지어, 여성용 콘돔을 보는 기분이라고 할까(둘 다 실제로 있다).


사실 계피가루만 없어도 카페라떼와 카푸치노를 구별하기 쉽지 않다


아무튼, 다시 스노브적인 시각으로 돌아가 보자. 우리 스노브들은 육고기에는 레드와인, 생선에는 화이트 와인을 마셔야 하며 스테이크를 웰던으로 먹으면 안 되고 생선회에는 간장을 찍어야지 초장을 찍으면 안 된다. 개인 취향을 존중하기에는 일단 정석을 외우고 있어야 되는 것이니.


90년대, 미국에서 스파게티를 스푼을 이용해서 먹는 것에 대해 본고장인 이탈리아에서 ‘진지하게’ 분개하던 때가 있었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3개의 바리스타의 룰이 있다.


Rule 1. 100% 싱글 오리진 엘살바도르 SHG

일단 싱글 오리진 커피는 하나의 단일 품종을 로스팅한 커피를 뜻한다. 반대 개념으로 2~4가지 커피를 특성에 맞게 조합한 블렌딩 커피가 있다. 와인도 그렇고 커피도 그렇듯이 의외로 블렌딩한 커피에서 더 깊은 맛이 난다. 예를 들어 에스프레소용으로 브라질 산토스 +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 베트남 로부스타 커피를 블렌딩한다고 가정하면,


1. 브라질 커피는 큰 특색 없이 다른 커피와 잘 조화하여 베이스용으로 쓰인다.

2. 에티오피아 예가체프는 화사한 향과 과일의 풍미가 특징으로 산미가 강하다.

3. 베트남 로부스타는 고급 품종은 아니지만 중후한 쓴맛으로 에스프레소의 크레마와 균형을 잡아준다.


이러한 특징들을 조합하여 맛있는 커피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런데도 싱글 오리진 커피를 사용한다는 건 100% 그 커피 품종의 맛 만을 강조할 가치가 있는 고급 커피라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우유를 부어 파는 것이고... SHG나 SHB는 커피 등급을 말하는데 여기까지 파고들면 너무 복잡해지니 그냥 넘어가자.



'COE 농장주의 원두를 사용'이라 쓰여 있는데, 먼저 COE는 Cup of Excellence의 약자로, 엄격한 커피 심사에서 최고 등급을 받은 커피를 가리킨다. 뭐 이 원두를 정말 사용했다면 정말 뛰어난 커피가 맞겠지만 맘에 걸리는 건 'COE 농장주의 원두', COE를 키워낸 농장의 COE 원두인지, COE를 키워낸 농장의 다른 원두인지는 사실 알 방법이 없다.


나 괜찮은 거겠지?


아무튼 이 귀하디 귀한 COE 원두에 우유를 부어 팔다니 매X유업의 패기가 돋보이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COE 라떼라니 튜닝한 벤틀리를 보는 기분이다.


Rule 2. 미디엄 풀시티 더블 로스팅 & 플라넬 드립

더블 로스팅은 말 그대로 로스팅을 두 번 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미디엄으로 한 번, 그리고 미디엄으로 로스팅된 원두를 한 번 더 풀시티로, 일반적으로 커피의 팽창률을 높이기 위해 쓰이는 방식으로 우리나라에선 생소한 로스팅 방법이다.



풀시티로 로스팅을 했다는 것은 커피의 산미를 억제하고, 쓴맛을 강화시키는 건데 보통 라떼용으로 많이 쓰이는 로스팅이다. 싱글 오리진을 드립으로 마실 경우 보통 미디엄, 신맛이 부담스러울 경우 하이-시티 로스팅으로 내리게 되는데 이는 아라비카 고유의 산미를 즐기기 위함이다. 풀시티-프렌치까지 가면 아라비카나 로부스타나 구별이 별 의미가 없을 만큼 쓴맛만 남게 된다. 그래서 베트남에서는 로부스타 커피의 쓴 맛을 중화하기 위해 연유를 넣은 카페 쓰어(càphê sữa)가 인기가 많다.


연유를 괜히 넣는 게 아니다


그리고 플라넬 드립보다는 사실 '융드립'이라는 말이 더 일반적이다. 종이 필터를 사용한 핸드드립 커피와 다른 점은 '융'을 사용하기 때문에 커피의 유분이 그대로 통과하여 보다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반면 깔끔한 느낌을 원하는 쪽은 종이로 된 일반 드립커피를 선호한다.


융드립(좌)와 일반 핸드드립(우), 필터의 재질이 다르다.


결론은,  미디엄 풀시티 더블 로스팅 & 플라넬 드립에서 둘 중에 하나만 했으면 그나마 성공적이라는 것이다.

이름이 '라떼' 니까 라떼에 맞게 풀시티 로스팅만 쓰든지, '드립' 커피에 맞게 풍미를 온전히 즐길 수 있는 미디엄 로스팅 & 플라넬 드립을 쓰든지. 이도 저도 아니고 좋은 문구를 다 집어넣다 보니 이런 혼종이 나오는 것이지.



Rule 3. 전통 핸드드립 방식으로 내려 향이 깊은 라떼

이건 짧게 설명할 수 있겠다. 대량 생산하는 제품에서 전통 핸드드립 방식으로 내리는 것은 기대도 안되고(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지만), 진짜 가능하다 해도 맞는 크기의 융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리고 라떼에서 깊은 향이 난다고 하는 것도 별 기대는 안 되기 때문에.



꽤 진지를 잡숫고 들여다보았지만 사실은 맛있었던 커피 우유였다. 일반적인 시선에서 보면 꽤 좋은 재료를 꽤 멋있는 방법으로 만든 제품이니 마케팅의 승리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한 때 유행하던 '보그체'를 보는 기분이라 할까. 그래 맛있었으면 됐지. 어차피 스노브의 참맛은 별 것 아닌 정보로 아는 척하는 데에 있지 않은가.


잡지 보그(Vogue)에서 기원한 보그체. 비슷한 개념으로 지큐(GQ) 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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