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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권 Jul 10. 2022

여름의 기억

더위가 없었으면 수박의 달콤함을 알았을까. 두 번째 손가락으로 튕겨 그 울림의 파장의 굵기에 따라 잘 익었는지 알아낸 그 수박은, 시원한 냉장고 안에서 두 시간만 잠가 놓았다 꺼내면 그 완성된 여름 과일을 뽐내게 된다. 나무 도마 위에 올려놓고 큰 칼을 살짝 올려만 놓았는 데도 수박은 "쩍" 하고 갈라진다. 그 속살을 들여다보니 얇은 굵기의 하얀 설탕이 뿌려져 있는 듯 수박의 빨간색과 하얀색의 조화는 이미 맛을 알고 있는 듯 자태를 드러낸다. 그렇게 한 입 배어 물은 수박에서 떨어지는 꿀이 섞인 듯한 국물을 아끼며 달콤함을 이 여름에 겪어보지 못하면 언제 느껴 볼 것인가.


나는 여름을 좋아한다. 차디찬 골방의 시림을 겪어봤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추운 것보다는, 또 애매한 따스함 뒤에 꽃샘추위를 품은 봄보다는, 들판을 황금빛으로 물들인 풍요와 아쉬움의 계절인 가을보다는, 나는 여름을 좋아한다. 젊음의 계절이라서 그럴까. 아니면 기나 긴 밤 떨어지는 별 빛을 그리도 사랑했기에 그 여름을 좋아하는 건가. 덥다는 핑계는 나에게는 그렇게 대단하지가 않다. 그저 사랑할 수 있는 수박이라는 과일이 있고, 소원을 빌어볼 별 빛이 숨겨져 있는 여름밤을 정말 좋아한다.


내가 살던 작은 집 앞에는 초등학교가 있었다. 물론 나도 그 학교에 다니고 이었고, 사실상 우리 집 앞마당의 역할을 할 정도로 가까이 있었다. 그 운동장에서는 여름방학이면 전국에서 모여든 보이스카웃(걸스카웃) 캠핑이 열리곤 했다. 잘 다려진 제복을 입고 노란색 스카프를 하고 있는 그 학생들이 나는 그렇게도 멋있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왜 나는 저 학생들과 다르다고 생각했을까. 나도 저런 거 하고 싶어, 그리고 저런 캠프에 참가해보고 싶어... 혼자서 학교 담 넘어에서 펼쳐지는 캠프파이어를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그런 기억... 그날이 생각나는 여름은 나에게 추억이면서도 부러움을 느껴본 꼬마 아이의 초롱초롱한 눈빛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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